중국에 종속되는 북한 경제
지난해 11월 23일 북한의 서해 연평도 포격은 중국 대륙에도 큰 파장을 일으키며 많은 중국인에게 충격과 우려를 안겼다. 한국 정부의 천안함 사태에 대한 책임 규명이 국제사회에서 공감을 얻기 위한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못하고 중국 정부 당국은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히기 꺼리는 상황에서 북한의 연평도 포격은 중국의 젊은 지식층을 당황스럽게 만들었다.연평도 포격이 한국과 북한 간의 긴장 국면으로 발전하고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가 조성될 때 필자는 한 저녁 모임에서 포브스(Forbes) 잡지의 중국어판 편집장을 만났다.
그는 중국의 관영 방송 CCTV가 연일 방송한 연평도의 포염을 상기시키면서 그 자리에 참석한 한국인들에게 북한 사회가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 연이어 물었다. 필자를 포함한 한국인은 외국인인 편집장에게 한민족의 아픔을 고스란히 나타내기 싫어 적당한 선에서 답변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 편집장은 북한 정권의 후계자로 지목된 김정일 위원장의 삼남 김정은에 대해 “김 씨가 스위스에서 교육을 받았으니 북한 정권을 이어받은 후 북한의 개혁을 위해 노력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필자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 그 편집장의 말 때문에 중국의 젊은 지식층이 북한 사회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더욱 궁금해졌다.
중국은 1961년 북한과 조·중 우호협력 및 상호 원조에 관한 조약을 체결했다. 조약에는 일방이 무력 침공을 당하거나 전쟁 상태에 놓이면 상대방이 지체 없이 군사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쌍방이 수정 또는 폐기할 것에 합의하지 않는 한 조약은 계속 유효하도록 돼 있다.
결국 어느 일방이 이의를 제기하더라도 동의하지 않는 한 효력이 존속한다. 이 조약은 한국의 보수 진영에서 종종 논란이 되고 있지만 중국의 젊은 지식층은 50년 전에 체결된 조약의 내용을 잘 알고 있지 못하며 더욱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낮다고 보는 것 같다. 남북 관계 경색으로 北의 中 의존도 심화
중국의 외교정책은 덩샤오핑 시대에 정립된 ‘도광양회(韜光養晦)’가 오랫동안 기조를 이루고 있다. 도광양회는 직역하면 ‘칼날의 빛을 칼집에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는 뜻이다.
‘삼국지연의’가 원전으로 유비가 조조의 식객으로 있으면서 자신의 재능을 숨기고 은밀히 힘을 기른 것을 뜻하는 고사성어다. ‘자신의 재능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인내하면서 기다린다’는 의미다.
덩샤오핑은 대외적으로 불필요한 마찰을 줄이고 내부적으로 경제 발전을 도모하는 것을 외교정책의 기본으로 삼았다. 후진타오 시대에 들어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자신의 위상에 걸맞은 역할을 하기 위해 ‘화평굴기(和平堀起)’를 새로운 외교정책의 방향으로 정했다.
정비젠(鄭必堅) 중앙당교 상무부장이 2003년 10월 하이난 섬에서 열린 보아오 포럼에서 주창해 대외적으로 주목받은 화평굴기는 ‘내부적 조화, 외부적 평화’를 표방하며 국제사회의 주요 이슈에서 중국의 국익을 관철하는 외교 노선이 됐다.
중국의 화평굴기는 공교롭게도 한반도 정세를 실험 대상으로 삼아 부각됐다. 북한의 핵 문제를 해결하는 국제적 협의 틀인 6자회담에서 중국은 6개 참여국 중 하나였지만 그 존재감은 매우 컸다는 평가를 받았다.
북한의 핵 문제에 대한 중국 정부의 기본 정책은 한반도 비핵화, 평화적 해결이므로 중국은 6자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놓고 북한과 논쟁하고 평화적 해결을 두고는 한국·미국·일본과 갈등했다. 이 과정에서 북한은 중국과 불편한 관계를 형성했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듯이 북한은 6자회담에서 중국이 보여준 태도가 못마땅했을 것이다. 중국의 젊은 지식층 역시 북한이 핵 문제를 계속 제기해 국제사회의 긴장을 조성하면서 중국의 조언을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6자회담에서 탈퇴한 일을 불쾌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체면을 중시하는 중국인으로서는 6자회담에서 중국의 이미지가 많이 구겨졌다고 보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중국의 새로운 외교 노선인 화평굴기가 적어도 6자회담에서는 실패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2009년 4월 5일 북한이 위성을 발사한 후 4월 12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북한 제재를 결의할 때 중국은 찬성표를 던졌다. 그 후 북한은 6자회담 불참을 선언하는 등 중국에 대한 불만이 컸을 것으로 짐작된다. 물론 중국 역시 북한이 2009년 5월 2차 핵실험을 강행한 것을 결코 탐탁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중국은 북한과 핵 문제를 두고 때로는 갈등하면서도 북한에 대한 경제 원조와 경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더욱이 안보리의 경제 제재가 유효한 2009년 10월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는 북한을 방문, 2000만 달러의 경제 지원과 압록강대교 보수를 약속했다. 중국의 통계에 따르면 중국의 대북한 투자 진행액은 △2007년 6713만 달러 △2008년 1억1863만 달러 △2009년 2억6512만 달러로 매년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남북 관계가 경색되고 미국을 중심으로 북한에 국제적 경제 봉쇄를 강화하자 경제난과 식량 위기를 극심하게 겪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유일한 출구가 중국과의 경제협력이었을 것이다.
중국의 북한 투자 분야는 자원 에너지, 두만강 지역 나진선봉경제특구의 개발 사업, 압록강 하류의 위화도·황금평도의 개발 사업 등이다. 이 밖에 무역을 통해 중국산 전자제품과 생필품이 중국 단둥시에서 북한 신의주로 이동되고 있다.
한국 기업 北 경제특구에 우회 투자 가능
중국의 북한 투자가 증가하고 자원 에너지 분야에 대한 중국의 지배력이 눈에 띄게 커지자 국내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중국의 대북 경제적 영향력이 증대되는 것을 보고 ‘북한이 중국의 동북 4성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이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중국의 동북 진흥 정책을 살펴봐야 한다. 동북 진흥 정책은 랴오닝성·지린성·헤이룽장성의 동북 3성의 경제 개발이 목표다.
중국의 개혁개방이 연해 지역을 중심으로 진행되다 보니 전통적 중공업 지대였던 동북 3성은 개발이 정체·낙후돼 지역적 불균등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 정부는 동북 3성에서 창지투(창춘·지린·투먼:長吉圖) 개발 프로젝트를 전개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동북 3성의 경제 개발을 이끄는 핵심 사업으로 북한의 나진선봉경제특구와 연계해 진행하고 있다. 더욱이 중국은 동북 3성의 중국 기업에 나진선봉경제특구 개발 사업 참여를 유도하고 있는데, 이는 나진선봉경제특구 개발 사업의 성과로 장차 일본과 한국과의 경제 벨트를 형성하려는 것으로 이해된다. 또한 중국 정부는 한국과 일본의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있지만 아직 한국의 투자가 활발하지 않다.
중국이 북한에 투자와 경제 원조를 늘리면서 북한의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져 가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북한이 중국의 동북 4성이 된다고 걱정하고 우려만 하고 있어야 할 것인가.
중국의 북한 전문가는 이에 대해 반론을 제기한다. 첫째, 중국과 북한과의 관계가 역사적으로 주종 관계와 같이 중국이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둘째, 북한의 개혁은 한국에도 바람직하다는 점이다.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다. 한국으로서는 중국의 북한에 대한 경제적 영향력이 강화되고 북한의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져 가는 것을 마냥 우려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중국의 동북 진흥 정책을 이용해 한국이 창지투 개발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하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한국이 창지투 개발 사업을 발판으로 중국이 진행하는 북한의 경제특구 개발 사업에 참여한다면 북한이 중국에 종속될 것이라는 우려를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최정식 법무법인 지평지성 상하이대표처 수석대표
서울대 사회과학대 졸업. 중국 화동정법대학 법률진수생과정 이수. 사법연수원 제31기 수료. 대한민국 주상하이총영사관 고문 변호사(현). 차이나데스크(China Desk) 자문위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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