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직장에서는 매년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가 되면 여직원들이 남직원들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는 경우가 많다. 제과 업체의 상술로부터 시작됐다고는 하지만 나름대로 재미있는 기념일로 자리 잡은데다가 초콜릿을 주고받으며 직원들 간의 친목이 도모되는 점은 분명 좋은 것 같다. 나는 밸런타인데이가 되면 초콜릿을 제법 많이 받는 편이어서 매년 20개 정도는 받은 것 같다.

그럴 때마다 내가 직원들과 소통을 매우 잘하는 특별한 상관이라는 으쓱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대표이사가 된 후 상황이 달라졌다. 작년에는 5개로 줄더니, 올해에는 ‘충격적으로’ 한 개의 초콜릿을 받았다. 그나마 작년에는 전 직장 여직원들이 방문해 준 것이 대부분이었고 올해는 비서가 정성스레 만들어 준 유일한 것이다.

생각해 보면 초콜릿을 받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직원들이 비서가 지키고 있는 대표이사실에 찾아와 초콜릿을 주고 간다는 것은 쉽지 않다. 다른 직원들의 눈총과 오해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행히 초콜릿을 많이 받는다고 소통이 잘된다고 생각하는 분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상관이 아무리 소통을 열심히 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구조적으로 부하 직원이 접근하기 어려운 상황에 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초콜릿을 많이 받아야 한다면 기존 개념을 깨고 직원들과 떨어져 있는 임원실을 없애는 것이 우선 순서일 것이다.

초콜릿 숫자가 많다고 소통이 잘되는 것이 아니 듯이, 직원들과 회식 자리가 많다고 소통이 잘되는 것은 아니다. 음주를 잘하는 경영자들은 직원들과 격의 없는 술자리를 자주 하니 소통이 잘되고 있다고 믿는 경우가 많다.

회식 자리에 앉자마자 폭탄주를 제조해 돌리면서 “하고 싶은 얘기 다 해보자”라고 해 놓고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무용담을 혼자 떠들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직원들은 같은 얘기를 다섯 번은 더 들었을지 모른다. 2차 회식을 가면서 “안녕히 들어가시고 신용카드 좀 빌려 주세요”라는 직원이 있다면 친밀한 상관으로 인정받은 다행스러운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작년부터 불기 시작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열풍으로 많은 지도자들이 인터넷 소통에 나섰다. 나도 트위터를 열심히 한 덕에 이전에 만날 수 없던 여러 트위터 친구를 사귀고 있다. 하지만 SNS는 잠재 고객과의 대화에는 유용한 수단이 되지만 정작 자기가 속한 조직의 부하 직원들과의 소통에는 한계가 있다.

직원들이 상관이 남기는 글을 유심히 보기 때문에 상관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는 점에서는 분명 도움이 된다. 하지만 역시 윗사람과의 쌍방 대화가 이뤄지는 경우는 많아 보이지 않는다. 실제 SNS를 하는 유명 기업인들의 트위터는 대화라기보다는 팬클럽 식으로 일방적 대화가 이뤄지는 편이다. 그래서 나는 나와 SNS 대화를 나누는 직원들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를 포함해 많은 경영자들은 자신이 잘하지 못하고 있는 이상향을 부하에게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윗사람이 되면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10배는 낮아져야 소통이 시작되는 듯하다. 내가 소통을 ‘B급’으로 한다고 생각한다면 직원들은 나를 ‘C~D’로 평가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임원실에 앉아서 도저히 올 수 없는 직원들의 초콜릿을 기다리지 있지는 않은가. 마음속의 진솔한 캔디 보따리를 들고 직원들에게 찾아갈 준비를 해야 하는 3월이다. 소통을 위해 당신이 하고 있는 지금의 그것이 ‘최선입니까. 확실한가요?’
[CEO 에세이] 밸런타인데이의 추억
주원 KTB투자증권 대표이사 @ktbjuwon

약력 : 1963년생. 86년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1989년 뉴욕대 스턴MBA 졸업. 1989년 쌍용투자증권. 2000년 키움증권 상무. 2007년 유진투자증권 전무. 2009년 KTB투자증권 대표이사(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