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주가조작 수법 따라잡기
여의도 금융가의 암투를 전면적으로 다루고 있는 SBS 드라마 ‘마이더스’의 지난 3월 7일 방영분. 인진그룹의 후계자로 지목된 유성준(윤제문 분)은 자회사인 세진바이오의 주가를 조작하기로 한다.그룹 후계권을 빼앗으려는 유인혜(김희애 분)는 자문 변호사 김도현(장혁 분)에게 오빠의 작전을 역이용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유성준은 주식 매집을 시작하고 호재성 풍문을 시장에 퍼뜨린다. 그와 한통속인 주식 전문가는 증권 방송을 통해 일반 투자자들에게 매수를 권유한다.
상대편인 김 변호사 또한 주식을 대량 매집하면서 세진바이오는 연일 상한가 행진을 이어간다. 예상보다 주가가 많이 오르자 다급해진 유성준은 인진캐피탈의 자금 300억 원을 몰래 빼돌려 주식을 추가 매수한다.
유성준의 주식 매수가 끝나는 시점에 김 변호사는 일제히 주식을 매도하기 시작해 세진바이오는 연일 하한가 폭탄을 맞게 된다. 결국 유성준은 돈도 잃고 횡령죄로 검찰 조사를 받는 신세가 된다. 이 사실에 진노한 유필상 인진그룹 회장(김성겸 분)은 결국 그룹 후계권을 유인혜에게 물려주게 된다.
마이더스에서 보여준 ‘작전(시세조작)’의 방식은 최근의 트렌드를 잘 반영하고 있다. 단순히 대량 매수를 통해 주가를 부양하는 것뿐만 아니라 호재성 풍문을 퍼뜨림과 동시에 주식 전문가가 증권 방송에 나와 매수를 권유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옥에 티’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김도현 변호사 일행이 동일한 사무실에서 홈 트레이딩 시스템(HTS)을 이용해 동시에 대량의 주식을 거래하는 장면(사진)이다.
극적인 효과를 위한 장치이긴 하지만 이렇게 하면 100% 거래소 감시 시스템에 적발된다. 한국거래소 시장감시본부의 황의천 팀장은 “동일한 IP에서 거래한 것은 모두 추적이 가능하다”라며 극의 허점을 지적했다. SNS 통한 공모 늘어나
같은 장소에서 인터넷으로 대량의 주식거래를 하는 것은 “날 잡아가쇼”라고 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 거래 장소와 계좌를 분산시키는 것이 작전의 기본이다. 가장 유명한 사례가 바로 2007년 적발된 ‘루보’ 주가조작 사건이다.
당시 다단계 업체인 제이유(JU)의 부회장이었던 김모 씨는 다단계로 피해를 본 회원들로부터 일정 금액이 입금된 증권 계좌 3000여 개를 넘겨받아 현금 1500억 원을 동원해 주가조작에 나섰다. 주가조작 전력이 있는 기술자 10명도 동원됐다.
2006년 10월 본격적으로 주가조작이 이뤄지면서 1주에 1200원대였던 루보 주가는 2007년 4월 중순 4만 원 후반대까지 치솟았다. 초기에는 100만 원 단위 투자도 받았지만 중반 이후부터는 1계좌 단위를 1000만 원으로 인상했다. 그러나 검찰 수사가 이뤄지자 5만 원대까지 올랐던 주가는 2000원대로 폭락해 개인 투자자들에게 손실을 안겼다.
루보 사건처럼 가담자가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지면 꼬리가 밟힐 수 있지만 소수 정예에 의해 점조직 형태로 시세조작이 이뤄지면 적발하기가 쉽지 않다. 금융감독원 자본시장조사본부의 이원하 수석은 “경찰이 모든 범죄자를 다 잡는 것은 아니지 않나. 인력이나 시스템상의 문제도 있고 법규상의 허점도 있다”라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최근 주가조작에서 보이는 새로운 트렌드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가 범죄 공모에 새로운 수단으로 쓰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루보 사건 때는 다단계 판매 회원들을 대상으로 쉽게 공모자를 모을 수 있었는데, 이제는 SNS를 통해 불특정 다수가 하나의 목적을 위해 쉽게 모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는 것이다.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은 미스리 메신저. 비실명 가입이기 때문에 금융 당국의 추적이 어렵다. 금감원 시장감시본부 관계자도 “(미스리) ID의 회원 정보를 조회해도 텅 비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미스리가 가장 많이 쓰인다.
우리도 회사 측에 실명제를 권하지만 쉽지 않다”라고 얘기하고 있다. 이 밖에 증권 사이트의 주식 대화방, 심지어는 보도 자료 제공 사이트에 허위 보도 자료를 올려놓는 사례도 발견된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금감원이 검찰에 고발한 사례를 보면, 증권사 직원이 자신이 운영하는 인터넷 주식 대화방에서 알게 된 고등학생 및 일반 투자자와 함께 2010년 6월 S사가 자원 개발 수혜주라는 허위 기사를, 7월에는 F사가 암 백신을 개발했다는 내용의 허위 기사를 작성해 인터넷 보도 자료 등록 사이트인 ‘뉴스킹’에 게시해 포털 사이트에서 기사가 검색되도록 한 뒤 주가가 급등하자 주식을 처분해 이득을 얻었다.
또한 인터넷 증권 방송의 애널리스트 A 씨는 타 증권사로의 이직을 앞두고 자신이 관리하던 유료 회원들의 수수료 수입을 대체할 목적으로 회원들을 세력화했다. A 씨는 증권 방송을 통해 특정 종목의 매수 가격·시간·수량을 적극 제시하는 방법으로 시세를 조작했다.
사건이 적발되자 증권사 과장으로 이직했던 A 씨는 검찰에 고발됐다. 금감원 자본시장조사국에 따르면 “이 사건은 인터넷 증권 방송 유료 회원을 세력화한 첫 사례로, 세력화에 참여한 투자자들도 시세조작에 연루될 수 있으므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라고 당부했다.
2010년 말에는 증권회사 직원 B 씨가 자신의 ‘미스리’ 메신저 주식 대화방에서 알게 된 고등학생 등 일반 투자자 4명을 동원해 주가조작에 나섰다가 덜미를 잡혔다. 이들은 2010년 6월부터 상장사 7곳에 대해 ‘월드컵 기간 부부젤라 매출 급증’, ‘세계 최초 에이즈 백신 상용화’, ‘제4이동통신 지분 참여’ 등의 허위 풍문을 작성해 미스리·팍스넷·뉴스킹 등에 유포했다.
금감원 시장조사본부는 “200만~300만 원의 이익을 목표로 치고 빠지기를 하던 이들은 자신들이 허위 사실을 유포한 그 회사의 주가가 뜻하지 않게 폭락하면서 결국 손해를 봤다. 이른바 ‘시장의 복수’다”라는 후일담을 전했다. ELW도 주가조작에 이용돼
SNS의 이용과 함께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른 것은 파생상품이 ‘작전’의 주요 수단이 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주가 하락 시 이익을 낼 수 있는 포지션으로 선물·옵션 상품을 구축한 뒤 현물 대량 매도 또는 공매도를 통해 주가를 떨어뜨려 이익을 내는 방식이다.
지난해 11월 11일 도이치은행에 의해 이뤄졌던 시세조작도 도이치은행 본사, 홍콩지점, 한국지점이 역할을 나눠 선물 및 옵션을 매수하고 현물을 매도한 것이다.
더욱이 지난 2월 금감원이 검찰에 고발한 내용 중 주식워런트증권(ELW)을 통한 시세조작이 눈에 띈다. 대개 시가총액과 유통 물량이 적은 종목이 주가조작에 잘 선택되게 마련인데, 이론가보자 낮은 외가격 ELW는 좋은 먹잇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현물가격이 갑자기 급등락해야만 이익을 볼 수 있는 ‘외가격’ ELW는 일종의 로또처럼 여겨지기도 하는데, 가격이 급등하면 시장에서는 ‘세력’의 ‘작전’ 신호로 해석하고 추격 매수가 따라올 수 있다. 일반 투자자 C 씨는 홀로 ELW 20개 종목을 가장 매매, 허위 매수를 통해 가격을 13배까지 끌어 올렸다.
한편 금감원은 ‘시세조종꾼’이라는 용어를 자주 언급하고 있는데, 실제로 주가조작을 전문으로 하는 ‘꾼’들이 있느냐는 질문에 “다른 것(범죄)보다 단기간에 큰돈을 벌 수 있다 보니 한 번 (작전을) 해 본 사람은 계속 하게 된다. 더구나 경제 사범에 관대한 한국의 법체계상 계속 생겨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우종국 기자 xyz@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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