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nk B : 당신의 B-side를 경영하라

[CEO를 위한 상상력 교실] 주목받지 못한 ‘B면’은 상상력의 보고
‘시골의사’라는 다정한 닉네임으로 유명한 박경철은 증권사 직원에게 주식을 가르치는 외과 의사다. 안철수는 사람의 몸속에 침투하는 바이러스를 치유하는 의사에서 컴퓨터 안을 침투하는 바이러스를 치료하는 의사로 변신했다.

그리고 네덜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렘 쿨하스의 원래 직업은 시나리오 작가이자 기자였다. 이 사회에서 각광받는 창의적 인재로 꼽히는 이들은 자신의 원래 직업이나 전공이 아닌 분야에서 더 두각을 나타낸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여기에 슬쩍 숟가락을 얹자면 필자도 프랑스 시 전공자로 창의성 교육을 하고 있고 교육학을 전공한 교사와 교수들에게 창의·인성교육 컨설팅을 하고 있다. 필자도 어느 정도는 공자 앞에서 문자를 쓰며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1) A면과 B면이 있었던 레코드 시절

지금의 콤팩트디스크(CD)가 나오기 전 엘피(LP)판이나 카세트테이프에는 A면, B면의 구분이 있었다. 제작자들은 대체 어떤 기준으로 이런 곡들은 A면에 넣고, 저런 곡들은 B면에 넣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김수철의 2집 앨범 ‘젊은 그대’를 오랜만에 들어봤다. “젊은 그대 잠깨어 오라 아~ 아~사랑스런 젊은 그대….” 노래를 듣자마자 저절로 두 팔이 하늘로 올라가 으쓱으쓱하게 되는 이 대표적인 히트곡은 A면에 수록돼 있다.

그리고 ‘완성의 꿈’과 같은 놀라운 곡이 B면에 있었는데 ‘작은 거인’ 김수철 자신을 반영하는 듯 “스스로의 길을 걸어가는 운명”에 관한 이야기가 내레이션, 맑고 꽉 찬 다양한 사운드와 울림, 명연주로 14분 6초 동안 장대하게 펼쳐진다.

이런 특성은 다른 가수들의 앨범에서도 나타난다. A면은 대중성 있고 흥행에 성공할 수 있을 곡들로, B면은 실험적이거나 개인적인 애정을 담은 곡들로 채워진다.

이쯤에서 정리해 보자. A는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인정받는 영역, 대중들과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영역이며, B는 예술성, 개인의 잠재력을 내재한 영역이다. ‘경제 전문가’ 박경철, ‘컴퓨터 안티바이러스 개발자’ 안철수, ‘건축가’ 렘 쿨하스가 A면에 있으며 ‘젊은 그대’와 클라이언트들을 흡족하게 할 ‘A안’이 같은 영역에 있다.

중요한 것은 A가 빛나기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할’ B다. 인생을, 회사를, 크고 작은 공동체를 경영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비슷한 스펙을 쌓은 사람들 가운데 누구를 인재로 선택할 수 있을까. 나는 여기에 B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좋은 인재를 뽑고 싶거나 어떤 것이 좋은 안인지 채택하고 싶다면 반드시 B안이 있는지 물어보라. B안이 무엇인지 들어본다면 그 사람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알 수 있으리라. 훌륭한 인재가 되려면 B라는 전혀 새로운 체계를 만나야 할 뿐만 아니라 자기 안에 ‘B-사이드(side)’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훌륭한 경영자는 조직원들에게 B를 제시해 줄 수 있는 사람이다. 좀 더 적극적인 의미에서 B를 경영할 때다.

창의성 발현 기법 중에 B를 제시하는 기법이 있다. ‘강제 결합법’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두 사물이나 아이디어를 강제로 연결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는 발상법이다. 이 기법이 노리는 효과는 분명하다.

목표로 하는 A와 완전히 동떨어진 B를 제시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고정된 생각과 틀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것이다. 그 ‘B’가 궁극적으로 목표를 달성하고 A를 빛나게 한다. 월트 디즈니의 유명한 ‘허브 앤드 스포크’ 디자인은 테마 파크와 자전거를 강제 결합한 결과다.

자전거 중심축과 살의 형태대로, 중심에 만남의 장소를 두고 여기로부터 여러 놀이 활동들이 뻗어나가게 배치한 이 디자인은 테마파크 디자인에 혁신을 가져왔다. 기업의 구조 혁신이라는 A를 위해 B를 강제 결합할 수도 있다. 가령 회사 자체를 ‘자동차’와 강제 결합해 “우리 회사가 자동차라면 어떤 브랜드의 자동차로 비유될 수 있을까?”라고 질문해 보는 것이다.

사원들의 대답이 충분히 나올 수 있도록 유도하고 가급적 최고경영자(CEO)는 나중에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활발하게 토론하기 위해 도움이 된다. 아우디·BMW·사브·포르쉐·폭스바겐…. 다양한 답이 나올 텐데, 중요한 것은 어떤 브랜드를 선택했는지가 아니라 ‘왜’ 선택했는지에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자신의 회사가 개성적이고 개방적이며 인간적인 브랜드 폭스바겐을 닮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브랜드는 경차에서부터 최고급 세단, 스포츠카까지 만들어 내도록 성장했으니 자신들의 회사도 이러한 ‘멀티’한 부분을 전략화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낼 수도 있을 것이다.

‘아우디’라고 답한 사람이라면 모든 아우디 차량의 특징과 세부 사항에는 이유가 있다고 말하면서 ‘기술을 통한 진보’라는 믿음을 향한 전 분야의 협업을 강조할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토론하면 사원들과 CEO가 자신들의 회사 조직이 어떤 특성을 가진다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가질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힐 수 있다. ‘자동차’라는 강제 결합 항목이 없었으면 추상적이고 겉돌 수 있는 논의를 구체적인 이미지와 비유를 통해 소통하는 전략이다.

(2) 마임극 ‘게르니카’의 제작 일지에서 발견한 ‘B-side 비즈니스’

며칠 전 아주 멋진 공연을 하나 보았다. 피카소의 작품 ‘게르니카’를 마임극으로 바꾼 소극장 공연이었다.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1937년 스페인 소도시 ‘게르니카’에 쏟아진 독일군의 폭격으로 마을 사람들이 무참히 살해된 비극적인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스페인 소피아 미술관에서 이 거대한 그림을 보며 전율했던 생각이 난다. 아이를 잃고 절규하는 어머니, 빈사 상태로 혀를 뽑힌 것 같은 말, 두 팔을 하늘로 올리고 경악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그대로 마음에 와 박혔었다.

이 그림에서 출발한 마임극은 피카소의 작품을 우리 시대의 보편적인 폭력의 문제로 확대, 총 쏘는 게임을 하며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장면 등을 연출해 내고 있었다.

그런데 내게 더욱 흥미로웠던 것은 공연 팸플릿에 들어 있는 제작 일지였다. 여기에는 연출가가 이 극을 올리기 위해 배우들과 어떤 훈련을 했는지 상세히 적혀 있었다. 그중 인상적인 과정은 ‘게르니카’를 세로 351cm×가로 782cm의 거대한 원작 크기 그대로 배우들에게 직접 그려보게 한 훈련이었다.

벽면에 종이를 붙이고 빔 프로젝트를 이용해 원작을 띄우고 이를 베끼게 해서 그림이 태어나는 과정과 스케일을 온몸으로 체험하게 한 것이다. 연출가는 이 밖에도 조형예술과를 견학하게 했으며 어렸을 때 즐겁게 했던 놀이를 떠올리게 했다. 한마디로 연극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행위들을 지속적으로 시켰다.

이런 연출가가 바로 조직원들에게 B를 제시할 줄 아는 ‘훌륭한 경영자’다. 마임극 ‘게르니카’의 관건은 피카소의 작품에 충실하면서도 어떻게 이와 다른 자신들만의 ‘게르니카’를 보여줄 것인가 하는 사실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연출가는 원작에 가장 밀착되면서도 가장 멀어질 수 있는 훈련을 배우들에게 시켰던 것이다. 당장 볼 때에는 A를 해결하기에 아무 도움이 안 되는 B가 중요하다. 음악·문학·고전·한시·화학실험….

다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그저 다른 분야를 한번 경험해 보는 ‘체험학습’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눈앞에 보이는 현상에 집착하지 않고 그것이 가진 새로운 체계를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방법은 여러 가지다. 소극장 연출가의 트레이닝 방법을 경영에 접목하라. 시 전공자가 휴대전화 회사에 원서를 냈다면 직원으로 채용하라. 아이디어 회의에서 다수가 결정하는 A안을 잠시 유보하고 B안을 끝까지 밀어붙여 그 결과를 보자.

그리고 유명한 스포츠 선수들을 후원하는 것도 좋지만 사내 직장인 밴드를 제대로 키우고 후원해 보자. 사실 필자는 안철수만큼이나 안철수연구소의 사내벤처로 출발한 소셜 네트워크 게임 업체 ‘노리타운스튜디오’의 사례에 주목한다.

안철수연구소의 B-사이드였던(초기 시행착오로 수익을 전혀 내지 못했지만 안철수연구소는 끝까지 믿고 지원했다) 이 회사가 지금은 당당히 독립해 소셜 비즈니스 세계를 선도할 선구적 기업으로 성장해 나가고 있다.

그룹 앤트랙스의 ‘킬러 B의 침공’은 B면에 수록됐던 곡만을 모은 음반인데,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이 시대 곳곳에서 B-사이드 경영인들이 보여줄 역전의 힘을 기대한다.

조윤경 이화여대 교수·경기창조학교 멘토

이화여대 불문과 졸업. 프랑스 파리3대 프랑스 시 박사. 현재 이화여대 이화인문과학원 교수이며 경기창조학교 ‘종횡무진창조내비게이션’ 멘토, 저서로는 ‘미래를 만드는 새로운 문화 새로운 상상력’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