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를 맞는 네 가지 방법
‘사랑’, ‘화목’은 가족이라는 이름과 잘 어울리는 단어들이다. 무릇 가족이란 서로 사랑해야 하고 그 사랑을 바탕으로 화목해야 한다. 부모는 자녀를 사랑으로 대해야 하고 자녀는 존중하는 마음으로 부모를 모셔야 한다.이것이 우리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가족의 모습이다. 그러나 앞으로 고령화사회가 진행될수록 이런 이상적인 가족상은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2010년 8월 발간된 일본 요미우리신문사 계열의 시사 잡지 아에라(AERA)에는 ‘가족이 함께 사는 것이 행복이라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란 기획 기사가 실렸다.
제목만으로도 기존의 가족상에 대해 거칠게 도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획 기사의 첫 번째 내용의 제목은 더욱 섬뜩하다. ‘늙은 부모여 사라져 버려라.’ 왜 이런 도발적인 기사가 일본 잡지에 실렸던 것일까. ‘늙은 부모여 사라져 버려라’
일본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늙은 나라다. 고령화 과정에서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여러 가지 새로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가족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같은 유교 문화권인 일본도 자녀가 노인을 부양하는 전통이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노부모를 모시거나 생활비를 주고 있다. 그러나 반대편에서는 ‘무연(無然)사회’, ‘고독사’ 등의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늙은 부모를 둘러싼 각종 사회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 도발적인 기사가 실린 배경이다.
아에라의 기획 기사의 결론은 서글픈 현실을 드러낸다. 늙어서도 자녀와의 관계가 좋은 가족, 즉 다시 말해 사랑과 화목과 잘 어울리는 가족상이 유지되는 가정의 핵심적인 특징은 단 하나다. 바로 ‘돈’이고 좁혀 말하면 ‘연금’이다.
일본의 저명한 가족 사회학자인 야마다 마사히로 주오대 교수는 이 기사에서 “현시대에서 고령자가 사랑 받을지 미움을 받을지는 돈이 있는지 없는지에 달렸다”고 말하고 있다. 한마디로 가족 관계가 돈이라는 변수에 의해 결정된다는 얘기다.
이 잡지는 고령화에 따른 새로운 가족 관계에서 노인의 유형을 △사랑받는 노인 △연금 패러사이트(기생충) △홀몸노인 △무연사 예비군 등 4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사랑받는 노인은 부모가 돈이 있고 자식도 돈이 있는 경우다.
부모의 저축액이 많으므로 가족 간의 관계가 단절되지 않고 필요하면 유료 노인 요양원-일본에선 ‘노인 홈’이라고 한다-을 이용하면 되기 때문에 자녀의 부양 부담이 적다.
연금 패러사이트는 부모는 돈이 있지만 자녀는 돈이 없는 경우다. 부모가 꼬박꼬박 연금을 받기 때문에 부모에 기생해 사는 자녀들이 존재하게 마련이다. 우리나라도 얼마 전 문제가 됐지만 연금을 받는 부모가 사망해도 사망 신고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연금을 계속 받기 위해서다. 일본에서 120세, 130세 연금 수령자가 존재하는 것은 모두 이런 배경을 갖고 있다. 여기까지가 자녀와의 관계가 유지되는 부모의 조건이다.
‘사랑받는 노인’, ‘연금 패러사이트’에 해당되지 않는 나머지 두 가지 유형의 부모들은 ‘홀몸노인’이나 ‘무연사 예비군’으로 분류된다. 홀몸노인은 자녀들이 부모를 귀찮은 존재로 여기고 부모도 입지가 좁기 때문에 스스로 혼자 사는 삶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고령화 과정은 노년층의 빈부 격차를 확대해 양극화되는 과정을 밟게 되는데, 이 때문에 연금 격차, 소득 격차가 더욱 심해진다. 양극화의 아래쪽으로 몰린 노인들은 외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 마지막 유형인 ‘무연사 예비군’은 자녀와의 인연이 끊어지는 상황을 의미한다.
이 기사의 말미에는 한 여성 노인의 말이 실려 있는데, 그 내용이 서늘하다. “돈으로 좌우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제부터는 가족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자립심을 키워 나가는 방향으로 변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고령화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 이 기사가 보여주는 현실은 매우 생생한 우리나라의 미래 모습이다. 세상 그 어느 부모도 자녀와의 관계가 단절되는 것은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이 보여주는 현실은 사랑만으로는 그 관계가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면 무엇이 있어야 한다는 말인가. 앞서 살펴봤듯이 부모 자녀 간의 관계가 유지되는 유형은 부모와 자식이 모두 돈이 있거나 최소한 부모가 지속적인 연금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다.
여기에 해답의 실마리가 있다. 바로 ‘연금’이다. 한마디로 자식에게 손을 벌리지 않을 정도의 생활비를 연금으로 받는다면 사랑으로 키운 자녀와의 관계가 지속될 수 있는 필요조건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무엇보다 두둑한 연금이 효자다
필자의 생각으론 현재 우리나라의 30~50대는 일본의 노인들보다 더 어려운 환경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 일본의 재정 적자 문제가 심각하게 불거지고 있지만 일본은 국민연금·후생연금·퇴직연금 등 이 세 가지만으로 월 생활비 대부분을 충당할 수 있다.
국민연금은 우리의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연금이고, 후생연금은 기업과 근로자가 각각 50%를 부담하는 구조다. 퇴직연금은 퇴직금을 연금화한 것으로 우리나라도 2005년부터 도입된 제도다.
공적연금과 직장 생활을 하면서 불입하는 후생연금과 퇴직연금만 가지고도 노후 생활비의 70%가 해결된다. 30년 정도 직장 생활을 하면 매월 23만 엔 정도의 연금을 받게 되는데, 이는 퇴직 전 소득과 큰 차이가 없는 금액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개인이 스스로 연금을 준비하지 않고 직장 생활만 열심히 해도 노후 생활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사정은 사뭇 다르다. 국민연금에서 매월 받을 수 있는 돈은 대개 100만 원 안팎이고 퇴직연금에 대한 근로자의 인식도 낮은 수준이다.
심지어 중간 정산으로 퇴직금을 받아 부채 상환이나 자녀 교육비로 쓰는 일이 허다하다. 일본과 비교해 볼 때 개인 스스로 준비해야 하는 연금의 규모가 더욱 커져야 한다. 이런 현실을 인정한다면 하루빨리 인식을 전환해 연금이란 시스템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먼저 국민연금을 내는 것을 아까워하지 말고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해야 한다. 가정주부나 자영업자들도 이른 시간 내에 임의 가입자로 국민연금에 가입해야 한다. 근로자들은 퇴직금을 중간 정산받지 말고 퇴직연금 제도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기업들도 근로자들이 올바른 노후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퇴직연금에 대한 근로자 교육을 강화하고 그들이 효율적으로 자산을 운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직장을 옮길 때도 퇴직연금을 일시금으로 받지 말고 개인 퇴직 계좌인 IRA 제도를 이용해 정년 후에 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개인 스스로도 적극적으로 연금 상품을 이용해야 한다. 소득공제 혜택이 주어지는 연금 펀드 가입은 필수이고 돈을 아껴서 연금 상품에 적극 투자해야 한다.
흔히 연금이 효자라고 말한다. 고령화 선배 국가인 일본의 예를 보면 이 말이 현실이고 진실임을 알 수 있다. 만일 당신이 자녀들을 사랑하고 나이가 들어서도 자녀들로부터 사랑받고 싶다면 지금부터 당장 연금 투자액을 늘려 나가자. 이상건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상무 lsggg@miraeasset.com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한국경제TV, 이코노미스트 등 경제 전문 매체의 재테크 담당 기자를 거쳐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상무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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