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포인터랙티브 임정민·김보경 대표
스타트업 취재를 다니면서 왜 회사를 차리게 됐는지에 대해 다양한 말을 들었다. 그런 질문은 흔히 말하는 대기업에 다니다가 나와서 창업하는 분들에게 하곤 한다. 대답은 각양각색이지만 갑자기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는데 그걸 잘하는 회사가 없어서, 조직 생활이 맞지 않아서, 성과를 제대로 보상받지 못해서 등등 다양하게 나온다. 라이포인터랙티브를 창업한 김보경 대표는 그중 꽤나 특이한 케이스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를 처음 만난 날 왜 창업했느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이랬다. “집이 일산인데, 병특으로 강남에 있는 회사 사무실로 출퇴근했습니다.그렇게 계속하다 보니 출퇴근이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창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회사를 만들었죠.” 굉장히 특이한 이유다. 어쨌든 김 대표는 그렇게 창업했다.
한동대 전산학과 97학번인 김 대표는 전형적인 엔지니어다. 병역특례로 군복무를 대신했고 2005년 잠깐 학교에 복학하기도 했지만 2006년 위와 같은 이유로 회사를 차렸다. 회사 이름은 비비소프트.
김 대표는 약간 대범하다고 할까, 대인배적인 기질이 있다. 물론 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창업할 때 아주 심각하게 뭔가 대단한 것을 처음부터 하겠다기보다는 프로젝트를 외주 받아 하면서도 충분히 사업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의 이런 생각은 맞아떨어졌다. 아주 힘이 들긴 했지만. 그는 첫 창업 후 1년 반 동안 26개의 프로젝트를 하면서 돈을 벌었다고 한다.
사업가가 된 엔지니어와 벤처캐피털리스트
대외적인 대표 활동을 주로 담당하고 있는 임정민 대표는 카이스트 산업공학과 출신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 건너가 캘리포니아주립대 버클리캠퍼스(U.C.Berkeley)에서 산업공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이어 스탠퍼드대에서 경영공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임 대표는 이후 오라클 창업 멤버 2명이 만든 텐폴드(Tenfold)라는 회사에서 1년간 근무하고 휴대전화용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회사에서 일했다. 미국에서 계속 미국인이 만든 벤처기업에서 업력을 쌓아온 셈이다. 임 대표는 2006년 소프트뱅크벤처스에 입사하면서 한국에 들어왔다. 벤처기업에서 일하던 그가 이번에는 벤처기업을 발굴해 투자를 결정하는 업무를 맡게 된 것이다.
현재 라이포인터랙티브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두 사람의 살아온 경로를 여기까지 보면 별로 겹치는 부분이 없다. 둘 다 공학을 전공했다고 하지만 한 사람은 엔지니어로 시작해 창업가의 길을 밟아왔고 또 다른 한 사람은 공학과 경영을 접목한 공부를 하고 벤처 투자자의 길을 걸었다.
언뜻 보면 서로 다른 길을 걸었던 두 사람이 만나게 된 것은 한국 스타트 업계에서 거대한 인맥을 형성하고 있는 태터앤컴퍼니 네트워크 때문이었다. 태터앤컴퍼니의 창업자인 노정석 아블라컴퍼니 대표와 임 대표는 카이스트 동문이다.
김 대표가 2006년 첫 창업한 비비소프트는 2007년 태터앤컴퍼니에 인수됐다. 비비소프트는 자체적으로 운영 자금을 조달하고 사업을 영위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지만 규모를 키워 나가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개인 사업이었기 때문에 거창한 인수·합병(M&A) 방식은 아니었고 인적자원이 태터앤컴퍼니에 흡수되면서 회사가 정리됐다.
그리고 이때부터 김 대표는 태터앤컴퍼니에서 일하게 됐다. 태터앤컴퍼니와 노대표를 통해 임정민·김보경 두 사람이 만난다. 그리고 이후 태터앤컴퍼니가 구글에 인수된 뒤에 김 대표는 회사를 나와 창업을 준비했다.
아마 김 대표는 어떤 거대 조직에 소속되는 것보다 자신의 회사를 만들어가는 것에 더 큰 기쁨과 보람을 느끼는 사람인 것 같다.엔지니어로서 자신의 세계를 완성해 나가는 그의 스타일에도 맞는 방향이다.
김 대표는 창업을 준비하고 트레인시티를 개발하고 있던 중에도 임 대표와 계속 만났다고 한다. 당시 임 대표는 소프트뱅크벤처스에서 투자 심사역으로 일하고 있었다. “김보경 대표가 트레인시티를 기획하고 개발을 시작하던 초기 과정을 다 지켜봤습니다. 라이포의 엔지니어들과도 만났고요. 이 게임이 정말 잘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 투자하는 정도가 아니라 저도 같이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벤처캐피털리스트로서 일하면서 창업과 벤처기업에 대한 열망에 휩싸여 있던 임 대표는 결국 지난해 9월 라이포인터랙티브로의 합류를 결정한다. 그리고 두 사람이 힘을 합쳐 만든 소셜 게임이 지난해 말 세상에 모습을 보였다.
소셜 게임 ‘트레인시티’는 이름 그대로 기차를 테마로 한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도시와 도시 사이를 멋진 기차로 연결하면서 나만의 도시를 건설하고 확장해 나가는 게 주된 목적이다. 페이스북의 글로벌 회원들을 대상으로 서비스하고 있다.
트레인시티는 징가(Zynga)가 지난해 출시한 시티빌(CityVille)처럼 페이스북에서 인기 있는 도시 건설 장르의 게임이다. 전반적으로 게임을 해 나가는 방식이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도시 건설에 철로를 건설하고 기차를 운행하는 시뮬레이션을 결합했다. 구글앱엔진과 클라우드를 적용해 높은 확장성과 안정성을 가진 게 트레인시티의 특징이다. 기차를 테마로 한 도시, 트레인시티
트레인시티는 기차를 정말 좋아하는 라이포인터랙티브의 개발자가 처음 아이디어를 냈다. 그래서 그런지 해외 유저들로부터도 ‘정말 기차를 좋아하는 사람이 만든 게임이다’, ‘기차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라이포인터랙티브는 지난해 벤처캐피털사인 스톤브릿지캐피탈과 모바일 게임 업체 게임빌로부터 투자를 받았다. 라이포인터랙티브는 게임 개발 자금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전략적인 제휴 파트너도 얻는 성과를 이뤘다. 게임빌은 라이포인터랙티브에 투자하고 미국 시장에서 트레인시티를 서비스하는 역할도 맡았다.
지난해 말 트레인시티는 출시되자마자 20여 일 만에 15만 명이 가입했고 지난 2월에는 20만 명을 가볍게 돌파했다. 하루 이용자 수만 해도 3만 명을 웃돌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더욱이 영어 사용권 유저들이 깜찍하고 컬러풀한 그래픽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게임 쪽에 경력이 없는 두 사람이 힘을 합쳐 이뤄낸 성과로는 산뜻한 출발이다. 하지만 임 대표는 전혀 만족하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우리가 내심 기대했던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단 올해 안에 200만 가입자 돌파가 목표입니다. 250만 명을 넘어서면 페이스북 전체 소셜 게임 랭킹 100위 안에 진입할 수 있는데 게임이 좋고 사용자들의 반응도 좋아 중·장기적으로는 100위 진입도 가능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트레인시티는 올 상반기 중 한국에서도 출시될 예정이다. 지금 영어로 서비스되고 있는 트레인시티를 한국어로 서비스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흔히 생각하는 기존 트레인시티의 한글 버전은 아니다. 한국 온라인 게임 유저들이 게임에 적응하는 속도가 해외 유저들보다 훨씬 빠르다는 점을 고려해 사실상 새 게임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국내에 서비스될 트레인시티는 단순히 언어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게임으로 만들어질 겁니다.” 임 대표의 설명이다. 임 대표는 “국내 사용자들은 게임 플레이의 수준도 높고 콘텐츠 소비 속도도 빠르기 때문에 게임 기획 단계부터 달라야 한다”며 “페이스북 트레인시티의 캐릭터와 기본 시나리오는 따라가되 게임성은 훨씬 더 국내 사용자에 맞춰 개편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원기 한국경제 산업부 기자 wonk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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