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아버지는 항상 무서운 분이셨고, 아버지의 말씀은 항상 따라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 옛날 분들은 누구나 그렇겠지만 가정에서 아버지는 법이었다. 하지만 자라면서 어렸을 때 느꼈던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이나 경외감 등이 사라지고 마는 것이 사실이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반항을 하게 되고 아버지의 말씀 따위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느날 밖에서 싸우고 들어온 나를 보며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내가 잘못했을 때 꾸짖거나 벌을 내리셨는데, 어느 정도 내가 자란 다음에는 그러지 않고 항상 먼저 물으셨다.

“솔직하게 이야기해 봐라. 왜 그랬니?” 아버지의 그 말을 들은 나는 사실대로 말할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말을 할 때마다 아버지는 더 이상 혼내지 않으셨다. 그런 식으로 한 번 두 번 일이 있고 나니, 신기하게도 그런 일들을 벌이지 않게 되었다.
[아! 나의 아버지] ‘솔직함’은 최고의 채찍
예전에는 변명이나 거짓말로 그 상황을 벗어나려고만 했었는데, 그 행위 자체가 떳떳하지 못하고 마음 한쪽에 불편함으로 남은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더 이상 혼내지 않으셨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마음 편히 사실 그대로 말했던 것 같다. 내 이야기를 듣고 난 뒤에는 당신의 힘들었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솔직히’ 말씀해 주셨다.

시시콜콜 내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남자로서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버지에게만은 그런 자존심을 내세울 필요가 없었다. 아버지는 누구보다 나를 잘 알고 있었고 그런 아버지의 말씀은 항상 내게 위안과 안정감을 주었다.

아마 고등학생 때인 것 같다. 아버지는 담배를 피우고 들어온 나에게 물으셨다. “담배 피우냐” “네.” 나는 아버지에게 사실 그대로 말씀드렸다. 아버지는 잘못된 일에도 스스럼없이 대답하는 내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으신 것 같았다.

아버지는 내 방에 편지를 한 장 남겨두고 나가셨다. 자기 행동과 자기 말에는 책임을 져야 진짜 남자라고 써 놓으신 그 편지를 보고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내 자신이 떳떳할 만큼 옳은 일이거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상대방이 알아주어야 그 솔직함이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깨달았다. 거짓 진실이나 잘못을 털어놓아 봐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날 더 초라하게 만들 뿐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현재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원장과 직원과의 상하 수직적인 관계를 벗어나려고 많이 노력한다. 직원들이 잘못을 저지르면 처음에는 호통을 치지만, 반드시 그 직원과 개인적으로 또 이야기할 시간을 갖고, 어떤 점이 서운했고 이렇게 하면 더 좋을 것이라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한다.

물론 모든 것을 다 털어놓을 수야 없겠지만 어려운 상황에 부딪쳤을 때는 진실한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몸소 느껴왔다. 직원들도 내 마음을 알게 되면서 오히려 병원 내 분위기는 더 가족 같은 분위기가 되었다. 서로의 어려움과 고민을 상담하거나 큰일이 있을 때도 똘똘 뭉쳐 일을 헤쳐 나가곤 했다.

병원이 문을 연 지도 벌써 7년이 되었다. 그 기간 동안 일을 하는 직원들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고맙게도 모두 원장인 나를 믿어주고 잘 따라준 결과가 아닌가 싶다.

솔직하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일까. 때로는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부끄러울 수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 것이 더욱 부끄러운 것이 아닐까. 아버지의 그 가르침 덕에 나는 오늘도 삶 자체를 투명하고 진실하게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 나의 아버지] ‘솔직함’은 최고의 채찍
조정호 골드만비뇨기과 네트워크 원장

1970년생. 94년 전남대 의대 졸업. 2000년 유엔 동티모르 의무지원반장. 2002년 골드만 비뇨기과 강남점 개원. 2003년 한림대 의대 석사. 강남구 의사회 섭외이사(현). 대한비뇨기과 의사회 보험이사로 비뇨기과에 대한 인식 개선에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