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M&A 시장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 중반까지 베트남 경제의 최대 화두는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이었다. 베트남은 WTO 가입의 전제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투자 관련 법제 정비 등 외국인 투자 환경을 긍정적으로 개선하는데 힘썼다.

그 결과 2007년 1월 WTO에 정식으로 가입하게 됐다. 이후 세계 금융 위기가 확산되기 이전인 2008년 말까지 베트남은 그야말로 외국인 투자의 황금기를 맞았다.

이 시기 한국 기업의 베트남 투자는 자본금 규모와 프로젝트 수에서 투자국 순위 1, 2위를 기록했다. 실제로 호찌민 시내를 걷다 보면 들리는 건 한국말이고 보이는 건 한국 식당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호찌민시는 7만여 명의 한국인과 200여 개의 한국 식당으로 넘쳤다.

금융 위기 여파로 베트남 경제 시들
<YONHAP PHOTO-0016> A bank staff counts Vietnamese dong banknotes at a bank in Hanoi November 29, 2010. REUTERS/Kham (VIETNAM - Tags: BUSINESS)/2010-11-30 00:21:29/
<저작권자 ⓒ 1980-2010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A bank staff counts Vietnamese dong banknotes at a bank in Hanoi November 29, 2010. REUTERS/Kham (VIETNAM - Tags: BUSINESS)/2010-11-30 00:21:29/ <저작권자 ⓒ 1980-2010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당시 베트남은 자신들의 미래를 중공업 발전에서 찾으려고 했다. 이 때문에 이 분야와 관련된 외국인 프로젝트 유치에 공을 들였다.

이에 화답하듯 많은 외국 기업들의 중공업 분야 투자 신청이 줄을 이었고 투자 허가를 받기 위한 과당경쟁이 벌어지는 양상까지 나타났다.

또 투자에 따른 거주 외국인 및 유동 인구가 급속히 늘어나면서 이들의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 부동산 개발 등 관련 산업으로까지 투자 붐이 일어나게 됐다. 그야말로 베트남은 외국 기업들의 해외투자를 위한 약속의 땅인 듯했다.

그러나 세계 금융 위기 여파로 베트남에 대한 신규 외국인 투자가 급속히 감소하고 기존에 허가받은 대규모 프로젝트들까지도 중단되는 사태를 맞으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이런 외국인 투자의 감소세와 중단 사태는 현재까지도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투자 활황기에 ‘묻지 마’ 식으로 사세를 확장해 오던 베트남 국영기업들이 직격탄을 맞고 빈사 상태에 빠졌다. 나락으로 떨어졌던 주식시장의 주가는 아직도 주식 투자자의 멍든 가슴을 치유하지 못하고 있다.

동남아에서 가장 매력적인 투자 대상국 중 하나로 꼽히는 베트남이 경제의 급격한 활황과 침체를 겪은 상태에서 그 회복기가 얼마나 오래 걸릴지 가늠하기 어려울 뿐, 제2의 경제 활황기가 또다시 도래할 것을 의심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앞으로 외국인 투자 형태에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며, 이런 변화를 적절히 수용할 수 있는 국민 정서의 변화와 법제 정비가 베트남의 장기적 경제 발전에 필수불가결한 여러 선결 조건들 중 최우선 순위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베트남 투자법에는 투자의 형태를 직접투자와 간접투자의 두 가지 형태로 분류한다. 주식이나 채권 등을 매수하거나 펀드 가입 또는 기타 투자 기관의 금융 상품에 투자하지만 경영에는 직접 참여하지 않는 형태의 투자를 간접투자라고 규정하고 있다. 직접투자는 기업에 자본을 투자하고 경영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다. 따라서 합병과 인수, 즉 인수·합병(M&A) 형태의 투자도 직접투자에 포함된다.

베트남이 개혁과 대외 개방경제의 도입을 표방한 1986년 이후 전체 직접투자 규모에서 외국인의 베트남 내 기업에 대한 M&A가 차지하는 비율은 아직까지도 미미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지만 수적으로는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을 수 있지만 세계 금융 위기를 거치면서 열악해진 베트남 국내 기업의 재정 불건전성, 기존 내·외국 투자 프로젝트의 중단 사태와 신규 투자의 급격한 감소세는 베트남 투자시장을 재편하고 있다.

이런 시장 재편은 신규 투자를 확대하려는 노력보다 재정이 불건전해진 기업과 중단된 기존의 프로젝트에 대한 M&A를 보다 더 역동적이고 신속하게 진행되도록 할 것으로 보인다.

베트남 경쟁관리청(Competition Management Agency)이 2009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금융계의 M&A가 베트남 내 전체 M&A 건수의 75%를 차지하고 있으며 자국 중소기업 간의 M&A가 주를 이루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세계 최대 회계법인 중 하나인 PwC UK의 2009년 조사 자료에 따르면 베트남 정보·통신, 제약 및 엔터테인먼트 산업 분야에 대한 외국 기업의 M&A 가능성을 점치고 있으며 기간산업 분야는 이미 오랜 기간 외국 기업의 선진 기술과 자본에 목말라 하고 있다.

외국 기업이 베트남 내 M&A 시장에 더 많은 관심을 갖도록 베트남 정부와 기업이 노력해야 하는 이유다. 물론 외국 기업의 자국 내 기업에 대한 M&A는 그 순기능과 역기능의 공존을 부인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베트남의 중·장기적 경제 발전을 이끌 산업으로 생산적인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직접이든 간접이든 형태를 막론하고 투자를 위한 기업의 ‘투명성’과 절차의 ‘예측 가능성’이 우선적으로 담보돼야 한다.

베트남 기업을 M&A하기 위해 법률 및 회계 실사를 해보면 왜 실사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 극명하게 드러난다. 인수 가격 책정, 진술과 보장의 필요성 등 기본적인 M&A 절차에 대한 이해 부족뿐만 아니라 이중장부 보유, 세무조사 회피, 임직원에 대한 과도한 대출, 허가받지 않은 사업 영위 등으로 인수 위험이 높아진다는 점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그들의 ‘정서’를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정서’를 우선적으로 타파하지 못한다면 기업의 투명성 제고는 공허한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다.
<YONHAP PHOTO-1370> 역동적인 베트남 호찌민시의 모습

    (호찌민<베트남>=연합뉴스) 김선한 특파원 = 베트남 '경제수도' 호찌민시를 관통하는 사이공강 주변의 모습. 고층 아파트와 빌딩군 사이로 유유하게 흐르는 강물에서 아시아의 새로운 용(龍)으로 거듭나려는 베트남의 역동성과 저력을 엿볼 수 있다. 2010.12.18. shkim@yna.co.kr

    shkim@yna.co.kr/2010-12-18 23:53:58/
<저작권자 ⓒ 1980-2010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역동적인 베트남 호찌민시의 모습 (호찌민<베트남>=연합뉴스) 김선한 특파원 = 베트남 '경제수도' 호찌민시를 관통하는 사이공강 주변의 모습. 고층 아파트와 빌딩군 사이로 유유하게 흐르는 강물에서 아시아의 새로운 용(龍)으로 거듭나려는 베트남의 역동성과 저력을 엿볼 수 있다. 2010.12.18. shkim@yna.co.kr shkim@yna.co.kr/2010-12-18 23:53:58/ <저작권자 ⓒ 1980-2010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M&A에 대한 법적·정서적 변화 필요

기업법, 경쟁법과 증권법에서 M&A와 관련된 조항을 일부 발견할 수 있지만 베트남에서 대규모 M&A를 성사시키기 위한 구조의 수립-추진-종결-옵션(option) 행사에 이르는 청사진을 가지고 계약에 접근하기에는 절차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취약한 상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베트남 기획투자부(MPI) 산하 외국투자청(Foreign Investment Agency) 주도로 2008년 말 외국인의 M&A 행위와 절차를 규정하는 하위 법령을 마련하기 위한 워크숍도 열렸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현재까지 규정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

그나마 몇 안 되는 M&A 관련 법률 조항을 갖고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의 해석 차이로 기업 간 M&A가 1년 넘게 표류하는 실정이어서 베트남 경제에 순기능을 미칠 생산적 M&A조차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다.

2009년에 직접 담당했던 외국인 투자 법인 간의 흡수합병 케이스가 좋은 예다. 필자는 흡수합병을 위한 법률 및 회계 실사와 협상을 마치고 흡수합병 계약서와 그 밖에 베트남 법률에 따른 일체의 서류를 준비해 주무 관청에 합병 신청서를 접수했다.

석 달 정도의 기간이 걸린 작업이었다. 그러나 지방정부의 주무 부서는 약 2개월간의 심사 끝에 “소멸되는 회사의 청산 작업이 선결된 뒤, 기업 간의 흡수합병이 이뤄질 수 있다”며 흡수합병 신청을 반려했다.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가 버린 것이다.

이렇게 지방정부의 주무 부서가 한 번 잘못된 유권해석을 내리면 난감해진다. 중앙정부가 이를 뒤집는 결정을 하지 않고는 지방정부를 설득해 이를 번복하게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결국 중앙정부에 지방정부의 유권해석에 대한 이의 제기를 통해 약 3개월 만에 “흡수합병은 소멸과 합병이 동시에 일어나기 때문에 소멸되는 회사의 청산 절차를 별도로 거칠 필요가 없다”는 유권해석을 받고 흡수합병을 무사히 완료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시장 상황에 맞춰 흡수합병을 계획했던 기업은 반년 이상의 소중한 시간을 허비한 결과가 됐다.

베트남 M&A 시장은 여러 면에서 아직 ‘유년기’에 속한다. 베트남 당국이 이를 성숙한 시장으로 발전시켜 생산적이고 지속적인 경제 발전을 위한 밑거름으로 삼을 수 있도록 기업의 ‘투명성’과 절차의 ‘예측 가능성’에 대한 즉각적 관심과 제고에 힘써 주기를 기대해 본다.
[트렌드] ‘유년기’ 단계…기업 투명성 높아져야
한승혁 법무법인 지평지성 호주변호사

호주 본드(Bond)대 졸업. 고려대 법학석사. 베트남 법무부 등록 외국 변호사. 호찌민 상공인연합회 법률자문 위원장(현). 법무법인 지평지성 호주변호사(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