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생생토크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 잠입 사건’과 관련, 정치권에서 국정원 내부 갈등설, 권력 갈등설 등 각종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당사자인 국정원 측이 여전히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국정원이 왜 국방부 소속의 방위산업 수출 프로젝트에 개입하려고 했는지, 국가 최고 정보기관 요원들이 어떻게 서울 한복판에서 아마추어보다 못한 실수를 저지를 수 있는지, 또 국방부 소속 문모 대령이 사건 발생 13시간여 만에 경찰에 수사를 요청하면서 사건이 외부에 알려진 점 등 각종 의혹이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형국이다. 풀리지 않는 3대 의혹 ‘미궁 속으로’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에 침입한 3명의 괴한은 국정원 3차장 소속의 산업보안단 요원들이다. 국정원이 수집하려고 했던 정보는 고등훈련기 T-50 등 국산 무기에 대한 인도네시아 측 협상 전략과 경쟁 상대인 러시아 기종의 판매 조건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보 수집이 목적이었다지만 국정원이 왜 군의 고유 업무인 무기 판매 건에 이처럼 깊숙이 개입하려고 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이에 대해 국내 방산 업체의 한 관계자는 “최근 1~2년 동안 정부는 방산업을 키워 ‘세계 7대 (방산)수출 국가’가 되겠다는 의욕을 보여왔다”고 말했다.
방위산업은 수출보다 수입이 훨씬 많은 구조인데, 반도체보다 큰 시장인데다 신성장 동력을 찾는 MB 정부가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원전 수주에 이어 해외 수출의 신판로를 뚫고 싶은 조급증이 컸다는 얘기다.
실제로 지난해 연말 청와대 미래기획위원회는 방위산업 수출 규모를 2020년까지 연간 40억 달러(신규 고용 5만 명) 수준으로 늘려 세계 7대 방위산업 수출 국가로 도약한다는 청사진을 제시한 바 있다. 방산은 1975년 수출을 시작한 이후 2009년 처음으로 10억 달러를 돌파하는 등 MB 정부 역점 사업 중 하나다.
정부 관계자는 “세계 최초의 초음속 고등훈련기인 T-50의 수출 성사 여부는 사실상 한국 방산 시장의 향후 10년을 좌우하는 프로젝트”라면서 “이번만큼은 어떻게든 계약을 따내야 한다는 조급함에 (국정원이) 사고를 친 것 같다”고 말했다. 국정원의 ‘과잉 충성’이 사건의 발단이라는 추측인데, 최근 실기를 되짚어보면 그럴 만도 하다.
국정원은 지난해 5월 유엔 관리를 미행하다가 항의를 받았고, 6월에는 리비아의 군사 정보를 수집하다가 해당 직원들이 추방당했다. 북한의 연평도 도발과 관련해서는 부실한 정보 대응으로 비판받았다. 국정원이 방산 수출에 기여할 수만 있다면 일거에 신임을 회복할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였을 것이다.
피해 당사자인 인도네시아 특사단의 반응도 이상하다. 특사단 대표인 하따 라자사 인도네시아 경제조정부 장관(부총리급)은 자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3명의 침입자는 방을 잘못 알고 들어온 호텔 손님들이었다.
손님들이 무심코 열어본 랩톱 컴퓨터에는 M 히다얏 산업장관이 한국 관리들에게 설명하려고 준비한 인도네시아 산업 현황에 대한 파워포인트 문서가 들어 있었다”고 말했다.
상식적으로 외부인이 들어와 노트북을 무심코 열었다는 것 자체가 의구심을 자아낸다. 다른 기종의 노트북이 확연한데 왜 무심코 열었다고 비호하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일각에선 양국 정부 간 뒷거래설이라는 관측까지 제기된다. 이래저래 사건은 갈수록 안갯속이다.
이준혁 한국경제 정치부 기자 rainbo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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