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천국’으로 변신하는 런던

‘조용한 혁명.’ 영국 정부가 친환경 전기 자동차 수요를 촉진하기 내놓은 획기적인 재원 투입 방안을 놓고 몇몇 언론들은 이런 제목을 붙였다. 영국 정부는 최근 9개 전기 자동차 브랜드를 선정해 발표하고 이 차량을 구입하는 소비자들에게 최고 5000파운드의 직접 보조금을 주겠다고 발표했다.

선정된 차종은 도요타 프리우스, 닛산 리프 등 그동안 전기 자동차 업계에서 톱 브랜드를 형성해 온 선두 주자들이다. 이 중 3개 브랜드는 당장 2011년 1월부터 보조금 수혜 대상에 포함된다. 이 때문에 사실상 20~30% 정도의 가격 인하 효과를 보게 된다. 나머지 6개 브랜드 차량들도 2012년까지 단계적으로 정부 보조금을 받게 된다.

예를 들어 미쓰비시 전기 자동차는 정부 보조금을 적용하면 2만4000파운드 정도에 구입할 수 있는데, 이는 정상 판매 가격에 비해 25% 정도 할인된 가격이다.

유럽에서 전기차 가장 많이 팔려

<YONHAP PHOTO-0016> Electric cars are connected to a charge spot in central London April 16, 2009. Motorists are to be offered up to 5,000 pounds (about $7500) to encourage them to buy electric or hybrid cars under a new government plan.      REUTERS/Stefan Wermuth (BRITAIN POLITICS ENVIRONMENT TRANSPORT BUSINESS)/2009-04-17 00:21:44/
<저작권자 ⓒ 1980-2009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Electric cars are connected to a charge spot in central London April 16, 2009. Motorists are to be offered up to 5,000 pounds (about $7500) to encourage them to buy electric or hybrid cars under a new government plan. REUTERS/Stefan Wermuth (BRITAIN POLITICS ENVIRONMENT TRANSPORT BUSINESS)/2009-04-17 00:21:44/ <저작권자 ⓒ 1980-2009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보조금은 해당 차량 구입에 국한하지 않고 리스 차량에도 적용된다. 이번에 선정된 9개 차종을 리스해 사용하는 운전자들은 매달 리스 비용에서 총액 기준 5000파운드 정도를 차감해 주는 방식으로 할인된 가격을 적용 받는다.

필립 하몬드 교통부 장관은 이런 방안을 공개하면서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전기 자동차와 같은 새로운 저탄소 차량을 일반 시민들이 소유하는 것은 꿈으로만 느껴졌지만 이제야 비로소 현실이 되었다”고 말했다.

영국은 유럽에서 가장 많은 전기 자동차가 팔리는 나라다. 또한 친환경 설비 기술에 대한 정부 차원의 투자액에서도 가장 앞서가는 나라 중 하나다. 그만큼 전기 자동차 관련 기술 개발 및 수요 확충에 정부가 들이는 공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영국 정부는 정부 보조금을 받게 되는 차종을 선정, 발표하면서 전국적으로 전기 자동차 충전소를 대폭 늘리는 인프라 개선 작업도 동시에 벌여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현재 전국적으로 3개소에 불과한 전기 자동차 충전 기지를 8개로 늘리는 방안도 추진된다. 이 충전 기지를 유치하기 위해 각 지자체들이 치열한 물밑 경쟁을 벌여 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흔히 그동안 절대적으로 부족한 충전 시설 문제는 전기 자동차와 같은 배터리형 차량의 대중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로 꼽혀 왔다. 연비가 뛰어나고 소음이 적다는 점 때문에 전기 자동차는 일반 소비자들의 수요를 끌어낼 수 있는 막대한 잠재력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충전 인프라가 이를 따르지 못해 왔던 것이다.

따라서 한편으로는 직접 보조금을 통해 전기 자동차 가격을 획기적으로 낮추고 다른 한편으로는 일반 소비자들에게 전기 자동차 충전도 주유소에서 연료를 주입하는 것만큼이나 쉽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다.

영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전기 자동차 대중화 구상을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런던이다. 더욱이 보리스 존슨 런던 시장은 2012년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런던의 이미지를 친환경 도시로 바꾸기 위해 전기 자동차 인프라 개선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존슨 시장은 이미 지난해 초 현재 250개소 수준에 머물러 있는 런던 시내 전기 자동차 충전 시설을 2013년까지 7500개로 늘리겠다는 원대한 구상을 내놓은 바 있다. 이러한 구상을 실천하기 위해 약속한 예산 규모만 해도 2000만 파운드 수준이다. 런던시는 이러한 인프라 개선 작업을 통해 2020년까지 런던 시내의 전기 자동차 수를 10만 대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충전 시설을 7500개까지 늘리면 런던 시내에서 전기 자동차를 운행하는 운전자들은 사무실 밀집 지역은 물론 공영 주차장과 대형 슈퍼마켓 같은 상업 시설 등 시내 어디서고 손쉽게 자동차를 충전할 수 있게 된다.

‘충전 시설을 찾기 위해 1마일 이상 주행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 존슨 런던 시장이 시민들에게 내놓은 약속이다. 이런 구상에 따라 런던 관광의 아이콘으로 꼽히던 명물 택시와 버스 등도 친환경 차량으로 대체될 것으로 보인다.

런던의 대중교통을 상징하는 빨간색 2층 버스(더블 데커)도 그동안 디젤 차량으로만 운영돼 왔지만 이미 디젤과 전기를 함께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차량으로 바뀌는 추세다. 일반 디젤 차량에 비해 30% 정도 이산화탄소 배출 저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하이브리드 버스는 현재 런던 시내에 60여 대 정도가 운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런던시의 이 프로젝트에는 독일의 지멘스사가 협력 파트너로 참여했다. 런던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앞으로 디젤 버스를 점차 줄이고 하이브리드 버스의 비중을 높여 오는 2012년 이후 신규 투입 차량은 모두 하이브리드로 대체할 계획이다.

런던 시내의 또 다른 명물인 이른바 ‘블랙캡’, 즉, 딱정벌레 모양의 검은색 택시도 디젤엔진 규제에 따라 차츰 자취를 감출 전망이다. 런던시 측이 블랙캡을 단계적으로 없애고 100만 파운드의 시 예산을 투입해 택시 운전사들이 저탄소 차량으로 업그레이드한다면 이를 지원할 프로그램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폭스바겐은 런던시의 이런 구상에 맞춰 새로운 택시용 전기 자동차를 선보이기도 했다. 얼마 전 런던에서 공개 행사를 가진 이 전기 택시는 두 명의 승객과 짐을 실을 수 있는 정도의 공간을 가진 ‘미니 택시’다. 1회 충전으로 300km까지 주행할 수 있다는 것이 제조업체의 설명이다.

폭스바겐 측은 배기가스 허용 기준이 점차 강화되면서 앞으로는 저탄소 차량에만 도심 진입이 허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고 있다. 결국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자가 차량으로는 도심 진입 자체가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에 이런 ‘미니 전기 택시’가 대안이 될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YONHAP PHOTO-1913> The World first hybrid diesel electric double decker bus is seen during a media briefing in London, 16 March 2007, after London Mayor Ken Livingstone announced his plans to increase a greener public transport service. The adoption of hybrid buses is a key part of a range of measures being developed by the Mayor of London and Transport for London to meet London's contribution climate change. The new ``green'' bus, which uses a combination of diesel and electric power, is going into service on route 141 between Palmers Green in north London and London Bridge. AFP PHOTO/SHAUN CURRY/2007-03-16 21:33:46/
<저작권자 ⓒ 1980-2007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16일 런던 세계 최초 하이브리드 디젤 전기 2층버스(AFP=연합뉴스)<저작권자 ⓒ 2006 연 합 뉴 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The World first hybrid diesel electric double decker bus is seen during a media briefing in London, 16 March 2007, after London Mayor Ken Livingstone announced his plans to increase a greener public transport service. The adoption of hybrid buses is a key part of a range of measures being developed by the Mayor of London and Transport for London to meet London's contribution climate change. The new ``green'' bus, which uses a combination of diesel and electric power, is going into service on route 141 between Palmers Green in north London and London Bridge. AFP PHOTO/SHAUN CURRY/2007-03-16 21:33:46/ <저작권자 ⓒ 1980-2007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16일 런던 세계 최초 하이브리드 디젤 전기 2층버스(AFP=연합뉴스)<저작권자 ⓒ 2006 연 합 뉴 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태양열 판 설치 등 새로운 아이디어도

중앙정부와 런던시의 이런 친환경 차량 도입 정책이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둘 수 있는지는 유럽 자동차 산업에서 하나의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현재 영국 내 탄소 배출의 22%가 각종 차량에서 나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 정부는 전기 자동차의 보급을 통해 탄소 배출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영국 정부는 2025년까지 이 분야에서만 약 1만5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구상도 내놓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화이트칼라나 블루칼라가 아닌 ‘그린칼라’라는 새로운 직업군이 생겨날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문제는 원천 기술 개발, 충전 인프라 확충 등을 위해 소요되는 예산을 정부와 업계가 얼마나 효율적으로 조달할 수 있을 것인지에 달려 있다. 당장 런던시만 해도 당초 2000만 파운드로 책정했던 전기 자동차 인프라 예산이 중앙정부 차원의 재정 긴축 계획에 따라 절반 이하로 삭감될 처지에 놓여 있다.

런던시는 정부 재원이 줄더라도 업계의 투자를 끌어들이면 당초 계획했던 수준의 인프라를 예정대로 구축하는 데는 별문제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업계가 정부 측의 이런 기대를 얼마나 충족시킬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일부에서는 충전 인프라가 갖춰져야만 대중화될 수 있는 전기 자동차보다 일반 차량을 친환경적으로 개조해 휘발유 소모를 줄이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차내 에어컨을 돌릴 수 있는 정도의 에너지를 낼 수 있는 태양열 판을 차량에 설치하면 에어컨 가동을 위해 소모되는 연료를 절감할 수 있다. 또 소형 전기 배터리를 자동차 문 안쪽 보이지 않는 곳에 설치해 놓고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충전해 사용하는 방식도 있다.

전문가들은 “엔진과 각종 기능 부위를 연결하는 루트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차단할 수 있느냐가 탄소 배출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관건”이라고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물론 완성차 업체들뿐만 아니라 배터리와 발전기, 모터 등 주변 기기 제조업체들의 기술적 수준을 높이는 작업이 병행돼야만 한다. 그러나 이는 전후방 연관 효과가 큰 자동차 산업의 특성상 산업 내 시너지 효과를 높이는 순기능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전기 자동차는 전통 제조업과 미래형 기술을 결합한 ‘블루 오션’이 될 것인가. 런던, 나아가 영국 전기 자동차 시장은 이 질문에 해답을 제시할 하나의 ‘테스트 마켓’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성기영 영국 통신원(워릭대 국제정치학 박사과정) sung.kiyou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