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처 24시

한국인 국제 금융 기구 수장이 탄생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사공일 G20 정상회의 준비위원장이 국제통화기금(IMF) 또는 세계은행 총재 후보로 거론되면서다.

사공 위원장은 아직 국제 금융 기구 수장 자리에 도전하겠다는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과거 한 언론 인터뷰에서도 “IMF 총재는 관례적으로 유럽 사람이 맡았지만 이제 비유럽인, 특히 신흥국 출신이 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고 그 과정에서 나도 거론되고 있다”고만 언급했다.

그러나 정부 내 인사들과 주변 인물들은 사공 위원장이 내심 욕심을 갖고 있다고 전한다. 40대에 이미 재무부 장관을 지낸데 이어 연구 기관장과 대통령 보좌관 등을 거친 그가 국제 금융 기구 수장을 맡으면서 화려한 경력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을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사공 위원장은 개인적인 역량을 놓고 봤을 때 국제 금융 기구 수장으로서 손색이 없다. 국내에서 쌓아올린 경력은 말할 것도 없고 사공 위원장만큼 국제 금융계 인사들과 폭넓게 교유하고 있는 인물도 드물다. 영어에 능통할 뿐만 아니라 G20 정상회의를 통해 리더십과 조정력도 보여줬다.

“IMF 총재 신흥국 출신이 해야”
사공일 무협회장
사공일 무협회장
예전 같으면 한국인이 국제 금융 기구의 수장이 되는 일은 상상하기도 어렵다. IMF와 세계은행을 축으로 한 국제 금융 체제 자체가 미국과 서유럽 중심의 세계 질서를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의 분위기는 좀 다르다. 한국이 G20 서울 정상회의를 계기로 국제무대에서 위상이 한층 높아진 점도 긍정적인 요인이다.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IMF 총재도 최근 “IMF 총재는 유럽, 세계은행 총재는 미국이 맡는 묵계가 깨졌다”고 말해 신흥국 출신 IMF 총재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다. 스트로스칸 총재의 임기는 2012년 10월까지지만 그가 그해 열리는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 사회당 후보로 출마할 것으로 예상돼 IMF 총재 자리에서는 중도 사퇴할 가능성이 높다.

신흥국의 위상이 높아진 점을 감안하면 신흥국 출신 국제 금융 기구 수장이 나오는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이 같은 일이 당장 현실화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의 위세가 예전만 못하다고 하더라도 세계경제 질서는 여전히 이들 국가가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 금융 기구 수장 자리를 신흥국에 내주면 선진국 중심 헤게모니의 붕괴가 가속화할 수도 있다. 어쩌면 신흥국의 위상이 높아질수록 국제 금융 기구 수장 자리는 더 강고하게 지켜야 하는 것이 미국과 유럽의 처지다.

한국인이 됐든 누가 됐든 신흥국에서 국제 금융 기구 수장이 나오려면 결국 미국과 유럽의 동의가 필요하다. 신흥국 출신 IMF 총재가 나올 가능성을 언급한 스트로스칸 총재의 말에 대해서도 ‘립 서비스’ 이상의 의미는 없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국은 유엔 사무총장을 한국인(반기문)이 맡고 있다는 점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기구의 성격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유엔 사무총장이 한국인인 상황에서 IMF나 세계은행 총재 자리까지 한국에서 가져가려고 하면 국가 간 힘의 균형을 맞추려는 국제사회의 속성상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은 당장 총재를 배출하지는 못하더라도 한국인의 국제 금융 기구 진출을 늘려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국제 금융 기구에 근무하면 한국에서는 얻을 수 없는 지식과 경험을 쌓을 수 있고 그런 경력을 갖춘 인재는 곧 국가적인 자산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정부 관계자는 “우수한 인재들이 국제 금융 기구에 진출해 치열한 세계경제 외교 무대에서 국익을 지킬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승호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