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사회 책임 경영

11일 서울 광진구 광장동 쉐라톤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서울 G20 비지니스 서밋의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분과에 참석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가 연설을 하고 있다.20101111 사진공동취재단.....
11일 서울 광진구 광장동 쉐라톤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서울 G20 비지니스 서밋의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분과에 참석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가 연설을 하고 있다.20101111 사진공동취재단.....
2011년 재계의 가장 큰 화두 중 하나는 ‘사회 책임 경영(CSR)’이다. 이를 연말 불우이웃 돕기에 더 많은 기부금을 내는 사회 공헌 활동쯤으로 이해하면 큰 오산이다. CSR는 기업의 경쟁력을 보여주는 바로미터이자 연·기금 등 ‘큰손’들의 투자 척도이며 유능한 인재를 끌어들이는 강력한 힘이다.

지난해 말 국제표준화기구(ISO)가 CSR 국제 표준(ISO-26000)을 제정하면서 기업들의 인식도 크게 달라지고 있다. 그동안 ISO는 각종 기술 규격과 품질에 관한 표준을 만드는 일을 해 온 곳이다.

이를테면 일본과 유럽 사이의 전자 제품 무역이 가능하려면 양국 가정의 전기 콘센트에 어떤 나라의 제품이든지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세계화와 표준화는 동전의 양면이다. 이제 새로운 흐름을 타고 CSR에 대한 국제 표준까지 만들어진 것이다.

주요 연·기금 CSR 잣대로 투자 나서

ISO-26000은 다른 ISO 표준안과 달리 인증제가 아닌 검증제를 채택하고 있다. 공통된 규범을 만들어 이를 자발적으로 지키고 준수하자는 취지에서 제3자에 의한 인증 방식을 탈피한 것이다. 하지만 ISO-26000이 지닌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평소엔 강제성이 없지만 일단 문제가 터졌을 때 부정적인 검증 결과가 나오면 기업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 CSR에 앞서 있는 서구 국가들이 이를 보이지 않는 무역 장벽으로 활용할 여지도 있다. 정부와 시민 단체들도 기업의 변화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이를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

ISO-26000은 총 7개 분야로 나눠져 있다. 조직·거버넌스·인권·노동·환경·공정운영·소비자 이슈·지역사회참여 등이 대상이다. 이 중 국내 대기업에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소위 ‘무노조 경영’이다. ISO-26000을 보면 노조 설립을 보장하는 결사의 자유 보장이 인권 항목에 포함돼 있다.

CSR는 사회 책임 투자(SRI)와도 연결된다. 현재 세계 850여 개의 금융회사가 유엔 책임투자원칙(PRI)에 서명했다. 이들은 환경이나 리스크뿐만 아니라 기업의 사회적·구조적 측면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기업에 요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CSR 보고서를 발간하는 곳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영국은 2006년 회사법으로 상장사에 한해 CSR 리포팅을 의무로 지정하고 있다. 프랑스는 2011 회계연도부터 이를 의무화하는 법령을 지난해 제정했다.

2009년 환경보고서·환경사회보고서·지속가능경영보고서 등의 이름으로 CSR 보고서를 발간한 기업은 전 세계 7300여 개에 달했다. 1990년대까지는 주로 환경 경영을 다루는 ‘환경 보고서’가 대부분을 이뤘지만 2000년대부터는 경제·환경·사회의 3개 주제를 다루는 ‘지속가능경영보고서’와 노동·인권·지역사회 등까지 포괄하는 ‘CSR보고서’가 주를 이룬다.

국내에서도 CSR 보고서를 내는 기업들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지만 전반적인 확산 속도는 아직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좋은기업센터에 따르면 2002년 이후 지속 가능 경영 보고서를 한 번 이상 발행한 국내 기업은 총 84개에 불과하다.

국내 매출액 순위 100대 기업 중 CSR 보고서를 발행하는 곳은 2007년 25%, 2008년 24% 정도에 그치고 있다. 아직도 대다수 기업이 CSR 보고서 발행을 불필요한 부수적 업무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보고서 발간을 단지 회사 자금 지출 부문의 하나로 여기고 있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CSR가 이제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라며 “기업 차원의 일관된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