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 코디네이터 유장휴

사람들은 명함을 교환하며 서로의 정보를 확인한다. 직장·직위·이름·전화번호·e메일주소·회사주소…. 무엇이 더해지고 무엇이 생략되는 차이는 있을지언정 대부분의 명함에 들어 있는 정보들은 대동소이하다.

하지만 이 정보들만으로는 그 사람에 대해 ‘안다’고 말할 수 없다. 명함 한 장에 담긴 정보는 그 사람이 현재 어떤 직장에 다니고 있는지는 말해줄 수 있지만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인지는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타인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명함에 ‘자기다움’을 담아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다. 그가 바로 명함 코디네이터 유장휴 씨다.
[프로의 세계] "당신의 명함에는 무엇이 새겨져 있나요"
명함 한 장에 울고 웃는 사람들

“흔히 명함 코디네이터라고 하면 명함 디자이너로 착각하는 분들이 많아요. 실제로 명함을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엄밀히 말해 하는 일은 확연히 달라요.”

명함 디자이너가 명함의 외면 디자인을 결정짓는다면 명함 코디네이터는 어떤 정보를 어떻게 표현해 넣을지 고민하고 명함의 주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명함을 만들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그 사람의 이름과 직장 정보만이 아니라 특별한 슬로건과 키워드·이미지 등으로 그 사람의 개성과 정체성이 나타나는 명함을 만드는 것이죠.”

그 때문에 그는 명함 디자이너들처럼 손쉽게 뚝딱 한 장의 명함을 만들어 내지는 못한다. 그 사람을 잘 표현하기 위해서는 명함을 만들 사람과 속 깊은 대화도 나눠야 하고 어떤 꿈과 비전을 지닌 사람인지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또 그렇게 얻은 정보를 어떻게 하면 가장 효과적으로 한 장의 명함에 담을 수 있을지를 항상 고민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명함을 만드는 일은 광고를 만드는 일과도 많이 닮았어요. 많은 정보를 한 줄의 문구로 함축하고 인상적인 비주얼로 표현하는 셈이니까요. 대학에서 광고를 공부한 게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되는지 몰라요.”

그래서인지 그가 만들어낸 명함들 중에는 유독 별자리 명함, 뇌지도 명함, 태그(TAG) 명함, 지문 명함, 키워드 명함 등 그의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가 빛을 발하는 명함들이 꽤나 많다.

대학에서 광고학을 전공한 그가 명함의 힘에 눈뜨기 시작한 건 졸업 후 실버 산업 관련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부터다. “은퇴하신 분들의 사회 적응을 돕기 위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개발하는 일이었어요. 그때 알게 된 사실 중 하나인데, 의외로 많은 시니어분들이 퇴직 후 명함으로 인한 상실감을 겪더라고요. 이른바 명함증후군이죠.”

현역에서 일할 때는 누구나 자신만의 명함을 가지고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은퇴하고 퇴직한 이들에게는 명함이 없다. “명함이 있을 때는 몰랐는데 명함이 없으니 자기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진다는 분들이 많으셨어요. 그래서 착안한 것이 시니어분들에게 그분들만의 명함을 만들어 드리면 어떨까 하는 것이었죠.”

시범 케이스로 그가 첫 번째 고객으로 삼은 건 바로 자신의 부모님이었다. 몇 년 후 있을 은퇴를 미리 준비하고 있던 아버지와 평생 전업주부로 살아와서 명함이라고는 단 한 장도 가져보지 못한 어머니를 위해 명함을 만들어 선물로 드린 것이다.

“퇴직 후 시골에서 농사를 지을 생각을 하시고 있던 아버지는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 자연설계사’라는 타이틀로, 어머니께는 ‘삶을 당당하게 살자’는 타이틀로 명함을 만들어 드렸더니 기대 이상으로 너무 기뻐하시더라고요.”

더욱이 난생처음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명함을 받고 눈물을 글썽이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그는 좀더 많은 사람들이 명함을 통해 기쁨을 얻을 수 있고 자신다움을 당당히 나타낼 수 있게 되기를 바라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 명함 코디네이팅을 비즈니스화하면서부터 동시에 명함 강의 및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등 명함 관련 교육 활동도 함께하기 시작했어요.”

다행히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명함이 가진 소통의 힘에 공감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명함 강의나 명함 관련 체험 프로그램을 의뢰하는 단체도 점점 늘어났다. 그에 따라 지금까지 수십여 차례에 걸쳐 시니어 관련 단체, 여성 단체, 대학 등에서 명함 관련 강의를 해 왔다.

반응은 항상 기대 이상이었다. 소녀처럼 난생처음 손에 넣은 자신의 명함을 서로에게 건네며 울고 웃는 주부들도 있었고 퇴직 후 실의에 빠져 무기력해져 있다가 새 명함을 통해 비로소 다시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된 이들도 있었다. 성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 외에도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소규모로 진행하는 명함 체험 프로그램도 꽤 많은 인기를 모았다.

나를 표현하고 상대와 소통하는 수단
[프로의 세계] "당신의 명함에는 무엇이 새겨져 있나요"
“학생들이 무슨 명함이냐고요? 바로 자신의 꿈이나 미래의 희망을 담은 ‘꿈 명함’이죠. 막연하게 품고 있는 생각과 희망을 디자인과 타이틀로 구체화해 한 장의 명함에 담는 것인데요. 의외로 이 명함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학생들이 많다고 하더군요.”

이런 명함 강의 및 프로그램 진행 이외의 시간은 거의 전부 명함 구상 및 실질적인 명함 제작에 쏟아 붓고 있다. 명함 코디네이터로 활동한 지 2년여밖에 되지 않았지만 현재 유일무이한 ‘명함 코디네이터’이기 때문에 명함을 제작해 달라는 의뢰가 줄을 잇고 있다.

“회사를 퇴직하신 분들의 명함 제작 의뢰가 많은 편이에요. 본인이 직접 의뢰하기도 하고 자녀분들이 선물하기 위해 제작을 의뢰하기도 하죠. 대학생들도 많이 찾아와요. 취업 활동을 할 때 자신다움을 표현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기 때문이죠.”

사실 명함의 힘을 가장 잘 아는 건 이미 명함을 활용하고 있는 직장인들일 것이다. 그 때문인지 이미 명함을 가지고 있는 기성 직장인들이 명함 제작을 의뢰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자신만의 콘텐츠와 스토리를 지닌 사회적 인물로서 자신만의 명함을 만들고자 하는 이들이다.

“스스로를 브랜드화하는 셈이랄까요. 많은 분들이 개인 블로그나 웹사이트를 운영하며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어 나가지만, 그것을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잖아요. 그럴 때 자신만의 스토리를, 비전을, 목표를 한 줄의 타이틀 문구와 이미지로 함축한 명함 한 장보다 더 효과적인 홍보 수단은 없죠.”

그는 트위터와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 네트워킹이 활성화되고 있는 추세에서는 직장 명함보다 개성이 발휘되는 개인 명함이 보다 폭넓은 인간관계와 소통을 가능하게 해 준다고 믿는다.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에서 건네는 직장 명함은 그 사람에 대한 고정된 생각을 지니게 하고 화제를 단순화하는 결과를 낳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만의 명함을 가지면 전혀 달라지죠. 나는 이런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리는 대신 나는 어떤 사람인지를 표현하고 있는 만큼 상대의 이해와 공감을 사기도 쉽고 또 더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그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명함을 가지게 되기를 희망한다.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누구나 명함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어요. 여러분도 2011년의 새 희망과 포부를 명함에 담아보시면 어떨까요.”

약력 : 1982년생. 우석대 광고홍보학과 졸업. 소통 전문 기업 AG브릿지 대표(현). 자기다움 명함공방카페 운영자(현). 각종 시니어 단체 및 주부 단체, 대학 등에서 70여 회에 걸친 명함 강의 및 워크숍, 세미나 등 진행. 소통 전문가이자 국내 유일의 명함 코디네이터로 활동 중.


김성주 객원기자 heliet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