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재테크는 어떻게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사태가 발발한 지 3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투자자들은 처음에는 공포심으로, 일정 시간이 흐른 뒤에는 손실의 고통으로, 그리고 나중에는 이번 사태가 어떻게 마무리될 것인지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다.지금 시점에서 돌아보면 증권가의 해묵은 격언만이 진실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은 모든 상처를 치유한다.’ 2007년부터 2010년까지는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한 고통을 치유한 과정이었다.
그 치유 과정을 제대로 들여다보면 2011년의 흐름을 읽어나가는데 몇 가지 중요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미래를 알 수 없지만 과거에는 미래가 잉태돼 있는 법이다.
각국 정부는 글로벌 금융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저금리와 통화팽창 정책을 펼쳤다. 자본주의 역사에서 일시에 여러 국가들이 힘을 합쳐 서로 금리를 낮추고 돈을 푼 예는 거의 발견하기 어렵다.
이번 사태와 가장 비슷하다는 1929년 대공황 시기는 금본위제 시스템이었다. 금을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느냐가 그 나라의 경제적 안정과 번영을 상징하는 시대였기 때문에 각국들은 무역 장벽을 만들어 즉, 수출은 늘리고 수입은 줄이는 정책을 통해 금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당시 가장 먼저 위기를 극복했던 나라들인 영국과 일본은 일시적으로 금본위제를 폐기하고 통화팽창이라는 모르핀 주사를 놓았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역 거래량이 급감하고 글로벌 경기 침체는 수렁 속에 빠져 들어갔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글로벌 유동성이 만들어진 것이다. 유동성이 많아지면 돈은 어디론가 흘러가게 되어 있다. 이번 유동성으로 부동산 시장은 큰 혜택을 보지 못했다. 글로벌 금융 위기의 진원지가 미국의 부동산 시장이었고 부동산을 마련하기 위한 과도한 부채가 문제가 됐기 때문이다. 과도한 부채를 해결하는 방법은 단 하나다. 저축을 늘려 빚을 갚는 것이다.
한국은 유동성 확대의 최대 수혜자
금리 투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미국과 일본은 거의 제로 수준의 기준 금리를 유지하고 있다. 금리 투자로는 최소한의 물가수준도 담보가 되지 않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남은 것은 주식시장이었다. 주식시장에서도 경기 침체를 겪고 있는 미국과 유럽과 같은 선진국이 아니라 성장의 모멘텀을 유지하고 있는 신흥 시장으로 돈이 흘러 왔다.
글로벌 유동성의 최대 수혜자 중 하나가 우리나라였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 글로벌 기업을 가지고 있고 중국 등 신흥시장의 성장에 따른 수혜를 볼 수 있는 국가가 대한민국이었기 때문이다.
서브프라임 부실 사태 이후 코스피는 2007년 2000 고지를 돌파했다가 반 토막이 났던 한국 주식시장은 외국인들의 매수세와 국내 기업들의 선전으로 다시 2000 고지를 탈환했다.
2007년부터 2010년까지 흐름 속에서 2011년도에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몇 가지 이슈를 떠올려 보자. 먼저 투자자들의 투자 성향 변화와 유동성의 결합이다. 2007년 이후 우리나라 국내 투자자들의 성향은 급속히 보수적으로 변했다.
뜨거운 난로에 손을 댔다가 화들짝 놀란 아이처럼 주식 자산과 같은 위험 자산을 꺼리게 된 것이다. 2000년 중반 이후 펀드 투자가 활성화되면서 주식 자산에 대한 비중을 늘렸던 투자자들은 본전이 다가올 때마다 환매해 현금화했다.
부동산 시장도 침체를 겪다 보니 환매된 돈은 고스란히 종합자산관리계좌(CMA)나 머니마켓펀드(MMF)같은 초단기 금융 상품이나 예금에 넣어 두기 시작했다. 금융투자협회의 발표에 따르면 CMA 계좌 수는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고 MMF 자금도 다시 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은행 예금 금리가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실질금리 기준으로 2%대인 상황에서 이 돈이 계속 지금처럼 머물러 있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 시점이 언제일 수는 알 수 없지만 시장에 대한 믿음이 바뀌는 순간, 이 자금이 급속히 움직이는 것은 과거 역사에서 늘 있어 왔던 일이다.
또한 환매하지 않고 인내심을 가지고 버틴 투자자들의 경험도 소중하다. 어려운 시기를 겪으면서 수익을 낸 투자자들은 장기 투자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됐다. 인내심 많은 투자자들과 유동성이 만나면 지난 3년 전과 같은 환매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는 게 합리적인 시각이다. 인플레이션 문제도 놓쳐선 안 될 대목이다. 돈이 풀리면 물가는 오르게 되어 있다. 똑같은 물건을 사더라도 더 많은 양의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화폐가치는 떨어진다. 경제가 가파른 속도로 성장해도 물가는 오른다. 1970~1980년대 우리나라의 정책 담당자들이 제일 고심했던 것 중 하나가 성장을 계속하면서 물가를 안정시키는 것이었다.
현재 이런 고민을 중국이 하고 있다. 성장은 해야 하는데, 물가가 오르는 게 불안한 게 중국 당국자들의 고민일 것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단순히 일국적 차원에서 전개된 것이 아니라 글로벌 차원에서 이뤄졌다는 데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학자들과 전문가들마다 커다란 의견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워런 버핏과 같은 투자자들은 인플레이션 쪽에 무게를 둔 발언을 내 놓고 있다. 인플레이션에 대비하는 길은 원자재와 같은 자산을 자신의 포트폴리오에 편입하거나 원자재 보유 국가인 브라질과 러시아와 같은 나라에 투자하는 것이다.
그 다음은 부동산 시장이다. 사실 부동산 시장의 미래를 둘러싼 의견 차이가 적지 않다. 여전히 대폭락론을 주장하는 이들도 있고 2010년에 부동산 시장이 안정세를 찾아가고 있기 때문에 위기가 일단락됐다고 얘기하는 이들도 있다.
자산관리 트렌드 크게 변할 것
부동산 시장을 둘러싼 변수 중에 거시적 지표도 지표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인구 고령화다. 한국은 앞으로 지금보다 더 빠른 속도로 고령화의 길을 걸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고령화 사회에서 나타나는 부동산 시장의 두드러진 현상 중 하나는 ‘다시 도심으로!’이다. 1970~1990년대까지 우리나라는 고성장을 하면서 중산층이 생겨나고 이들이 교외의 신도시로 나가 ‘마이 하우스’를 마련했다.
하지만 도시 발전의 한 사이클이 마무리되면서 앞으로는 확장보다 수축의 관점에서 부동산 시장을 바라봐야 한다. 그 수축의 핵심은 도심이다. 문제는 주요 도심지의 부동산 가격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앞으로 자산관리의 1순위가 주택 마련이라는 인식은 서서히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
2011년부터는 본격적인 은퇴에 대한 관점이 재정립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까지는 돈을 많이 벌면 된다는 식의 은퇴 접근법이 주류를 이뤘다. 하지만 사회가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고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부득이하게 ‘다운 시프트(적게 벌고 적게 쓰자)’적인 사고를 하게 된다.
이미 선진국들은 이런 의식의 변화를 거쳤다. 우리나라도 앞으로 이런 인식이 보다 광범위하게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주어진 수입과 재산을 잘 관리해 부자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쪽으로 자산관리의 방향이 바뀔 것으로 판단된다.
이상건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이사 lsggg@miraeasset.com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한국경제TV, 이코노미스트 등 경제 전문 매체의 재테크 담당 기자를 거쳐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이사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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