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기 우리술 사장

국내 막걸리 시장은 레드오션이다. 5500억 원의 시장을 놓고 800여 개 업체들이 혈투를 벌이고 있다. 더욱이 일부 업체가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서울탁주와 국순당 등 ‘메이저’가 전국 시장의 60%, 서울 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다. 막걸리도 소주처럼 지방색이 강하다. 지역 업체들이 텃세를 부리고 있는데다 지자체들의 지원을 받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중소 막걸리 업체가 ‘전국구’로 성장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그런데 별을 딴 기업이 있다. 경기도 가평군 다보면 현리에 경기도 최대 규모의 막걸리 제조공장을 갖고 있는 우리술은 중소기업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연매출 100억 원대의 경기도 최대 막걸리 업체로 우뚝 섰다. 수출에서도 대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일본·미국·중국 등으로의 수출 물량이 연 200만 달러 규모다.

인수 초기 해외 진출로 신시장 개척
[성공하는 사람들의 습관] “해외 진출, 포기하지 않았더니 성공”
우리술이 설립된 것은 1994년. 가평잣막걸리로 지역에서 반짝 인기를 누렸지만 그 기간은 짧았다.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부도 직전까지 몰렸다. 이 회사 박성기 사장은 쓰러져 가는 회사를 단돈 2억 원에 인수했다. 대기업 보험사 지점장을 지냈던 박 사장은 퇴직금과 친인척으로부터 빌린 돈으로 겨우 인수 대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

주변에서 “죽은 회사를 인수해 어쩔 것이냐”며 반대했지만 그는 밀어붙였다. 그리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대형 홈런을 쳤다. 인수 초기에는 악전고투의 연속이었다.

“주요 일과가 돈 빌리러 다니는 것이었다”고 털어놓을 정도로 최악의 어려움을 겪었지만 4년 만인 2005년 드디어 흑자로 돌아섰다. 이후 순풍에 돛을 달았다. 해마다 30% 이상 고속 성장을 거듭했다.

박 사장의 성공 키워드는 3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집념이다. 집념은 보편적인 성공 덕목이다. 4년간의 적자를 견뎌내며 기어코 성공의 발판을 다졌다.

둘째, 신시장 개척에 성공했다. 경쟁이 치열한 국내시장보다 해외시장에 승부수를 던졌다. 2000년대 초반부터 남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미국과 일본 시장을 두드렸다.

‘무모하다’는 비아냥거림도 들었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셋째, 제품력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중소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시설 투자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 연구·개발(R&D) 기능도 강화해 다양한 제품 개발에 주력했다.

박 사장이 막걸리 제조업에 뛰어든 동기는 단순하다. 그는 “대학 시절 주당파들이 ‘청파’와 ‘탁파’로 나눠졌는데 저는 ‘탁파’의 보스였다”며 “막걸리를 워낙 좋아했기 때문”이라고 빙긋 웃었다. 여기서 ‘청파’는 소주를 좋아하는 학생들이고, ‘탁파’는 막걸리를 좋아하는 학생들을 뜻한다.

막걸리도 좋아했지만 사업성도 높다고 봤다. 우연히 전통 방식으로 만들었다는 막걸리를 접했는데, 시중 막걸리와 뭔가 다르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는 “진하고 깊은 맛이 느껴졌는데, 이 맛을 제대로 살리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회사 인수 후 중·장기 목표를 수출로 잡았다. 경쟁이 치열한 국내시장보다 해외시장에서 탈출구를 찾겠다는 의도였다. 그 전단계로 막걸리 품질 개선에 나섰다. 맛과 디자인 등 모든 면에서 기존 제품과의 차별화를 꾀했다. 주 타깃도 20대로 잡았다. 맛과 용기 디자인 등을 젊은층에 맞췄다. 회사명도 ‘운악산술도가’에서 ‘우리술’로 바꿨다.

일본 내 백화점·대형마트 입점
[성공하는 사람들의 습관] “해외 진출, 포기하지 않았더니 성공”
술의 원료를 100% 국내산 쌀로 교체했다. 원수도 지하 250m에서 뽑아 올린 천연 암반수만을 사용했다. “물이 막걸리 맛의 깊이를 좌우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기술 개발에도 전력을 기울였다. 저온살균법도 개발했다.

저온에서 살균하기 때문에 몸에 좋은 성분들이 그대로 살아있다는 것. 또 장기간(6개월)에 걸친 유통기한에도 맛의 변화가 전혀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 과정에서 그는 “24시간 막걸리만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막걸리 제조 방법도 직접 익혔다. 전국의 유명 막걸리 업체들을 찾아다니며 공부했다. 미생물의 발효를 알기 위해 폐수처리장까지 방문했을 정도다.

제품 다양화에도 힘을 쏟았다. 현재 우리술이 내놓은 막걸리는 40종. 보리막걸리는 경기도 농업기술원과 12개월에 걸친 공동 연구 끝에 개발됐다. 기존 막걸리에 비해 각종 성인병 예방에 좋은 식이섬유와 베타 글루산이 33% 증가했다는 것이 박 사장의 설명이다.

제품의 질과 다양성이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서자 유통망을 뚫었다. 전국주로 나아가기 위해 홈플러스와 롯데마트 등 대형 마트를 집중 공략했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중소기업이 전국 유통망을 갖고 있는 대형 마트를 뚫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대형 마트에서 블라인드 테스트를 진행하고 막걸리 업계의 동향과 주류 산업 정보를 제공하는 등 포기하지 않고 끈기 있게 공략했다. 그는 “10번 찍어 넘어가지 않으면 100번 찍겠다”는 각오로 찾아다녔다고 고백했다. 그렇게 3년을 내 집 드나들듯 해서야 홈플러스에 입점할 수 있었다. 홈플러스에 입점하면서 롯데마트 이마트 등 주요 대형 마트에 손쉽게 제품을 진열할 수 있었다.

국내시장에서 자리를 잡자 원래 목표였던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해외 네트워크가 없었던 그는 KOTRA 등 각종 수출 관련 사이트를 찾아다니며 활로를 찾았다. 원하는 곳에는 적극적으로 샘플을 보내고, 반응을 기다렸다.

더욱이 까다롭다는 일본에 진출하기 위해 기술 개발과 시설 투자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는 제조일자 표기가 흐릿해지거나 지워진 제품은 판매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술은 막걸리 병의 물기를 바람으로 제거하고 말려준 뒤 제조일자를 인쇄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교포 대상 판매를 지양하고 처음부터 일본 내 정식 주류 영업망을 개척했다. 그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공식 루트를 통해서만 제품을 판매한다는 원칙을 세웠다”고 말했다. 그 결과 다카시마야 등 일본 4대 백화점에 막걸리를 납품하고 있다.

까르푸 등 일본 대형 마트와 세븐일레븐 같은 편의점에서도 판매되고 있다. 지난 7월에는 일본 최대의 드럭 스토어 중 하나인 마쓰모토 기요시에도 입점시켰다. 최근에는 우리술 재팬과 1000만 달러 수출 협약식을 맺었다.

올해 수출은 200만 달러 수준이지만, 내년에는 최소 500만 달러 이상을 기대하고 있다. 현재 14개국에 수출하고 있는데, 향후 중남미 등으로 수출 판로를 다변화할 계획이다.

우리술은 최근 업계에서 처음으로 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HACCP) 시설을 갖춘 제2공장을 준공했다. 투자비만 60억 원이 들었다. 수출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톡쏘는 막걸리’와 ‘쥬시락’ 3종을 새로 내놓는 등 신제품 개발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브랜드 인지도를 지금보다 높이는 방법도 찾고 있다.

일반적으로 중소기업은 자금력·유통망·R&D·마케팅 등에서 대기업을 따라잡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길은 있다. 전 직원이 하나로 뭉치고, 수요는 있되 공급이 없는 잠재 시장을 공략한다면 승산이 있다는 것을 박 사장은 보여줬다. 박 사장은 “아직 성공했다고 말할 단계는 아니다”며 “향후 우리술을 세계적인 주류 브랜드로 키우고 싶다”고 비전을 밝혔다.

권오준 기자 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