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들의 ‘진정한 미국 진출’

한국 기업이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 진출한다는 것은 글로벌화를 의미한다. 미국 시장에서 성공하면 세계에 알려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현대자동차·삼성전자·LG전자 등도 미국 시장의 성장을 발판으로 글로벌화에 성공했다.

그런데 ‘빅3’의 뒤를 이어 미국 소비자들의 입에 오르내릴 수 있는 후속 기업은 언제쯤 등장할까. 미국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한국 기업들은 많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미국 진출 기업들이 미국에서는 존재감조차 없는 이유는 뭘까.

얼마 전 한 스크린골프 업체가 뉴욕에 첫선을 보였다. 골프장이 많고 그린피가 저렴한 미국에서 스크린골프가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국내에서는 무려 5000개 정도가 성업하고 있지만 미국은 사실상 전무하다.

그러나 시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11월만 해도 춥다고 골프를 접어버리는 미국인들이기 때문에 4∼5개월 정도의 실내 스크린골프는 충분히 성공 가능성이 높다.

또한 미국에는 한국 음식을 파는 식당들이 즐비하다. 그런데 이들은 국내의 기대와 달리 미국 시장에서 전혀 맹위를 떨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구석구석까지 파고든 일본 식당과 매우 대조적이다. 심지어 태국이나 베트남 음식보다 덜 알려진 듯한 인상을 받을 때가 많다.

이와 함께 미국에서는 한국 식품을 판매하는 대형 마트들도 많다. H마트·아씨·한남체인·한양마트 등 규모가 큰 마트들은 김치·불고기·라면·된장·고추장·삼겹살·족발·홍어·낙지 등 한국 음식의 모든 것을 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의 대형 마트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미국인들은 이곳만 방문해도 한국 음식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요즘 정부가 추진 중인 ‘한국 음식의 세계화’는 이 마트만 잘 활용해도 충분할 정도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이 마트의 존재 자체를 거의 모른다.

한국 식당 대부분 ‘코리아타운’에 몰려
2005.09.14
/양윤모기자 yoonmo@hankyung.com
2005.09.14 /양윤모기자 yoonmo@hankyung.com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서 맥을 못 추는 가장 큰 이유는 미국 내 사업 영역이 철저하게 한국 사람에게만 국한돼 있기 때문이다.

모든 비즈니스의 타깃은 한국 교포와 주재원·유학생들이다. 한국 식당들의 대부분은 한인들이 밀집된 지역에 몰려 있다. 로스앤젤레스·뉴욕·시카고·워싱턴 등 대도시에 있는 한국 식당들은 소위 ‘코리아타운’이라는 별도의 협소한 공간에만 자리 잡고 있다. 대형 마트도 역시 코리아타운에만 있다. 스크린골프도 한인들이 있는 곳에 들어서고 있다.

즉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 진출한 속내를 들여다보면 미국에 사는 한인 밀집 지역에 들어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거리만 멀리 떨어져 있을 뿐이지 국내 지방의 중소도시에 진출하는 것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는 얘기다.

현대자동차는 그동안 한국 교포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한 채 성장해 왔다. 외제차 선호도가 높은 한국 사람들은 미국에서 주로 벤츠·BMW·아우디·렉서스 등 고급차만을 몰고 다녔다. 한인 밀집 지역에서 현대차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은 이유다.

한국 기업들이 미국 시장을 노크할 때 한인들이 있는 곳부터 공략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릴 때가 됐다. 이제는 한인 밀집 지역을 피하는 것이 성공 가능성이 더 높다. 최근 미국에서 성공하는 식당들은 한인들이 전혀 오지 않는 지역에서 창업한 곳이 많다. 한인만을 대상으로 하면 미국인들이 찾아오기 힘들어진다.

더욱이 진출할 때 화제가 될 만한 지역을 집중 공략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뉴욕 맨해튼은 땅값이 비싸지만 그만큼 인구도 많고 빠르게 여론의 주목을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스크린골프는 맨해튼이 최적의 장소다.

드라이빙레인지 같은 골프 연습장이 전무한 곳에 스크린골프는 대안이 될 수 있다. 맨해튼에 둥지를 틀면 뉴욕타임스나 월스트리트저널 등 유명 언론에 자연스럽게 노출돼 엄청난 홍보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한국 기업들이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영역들이 미국 시장에는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그 시장을 한인 대상으로 좁히면 고립으로 이어진다. 언어와 문화적인 장벽은 시간이 흐르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초기에 편하자고 한인 지역으로 들어가면 많은 시간과 돈을 낭비하게 된다. 처음부터 미국인들을 상대로 한 ‘진정한 미국 진출’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뉴욕(미국)= 한은구 한국경제 문화부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