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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8일 서울 지하철 9호선 전동차가 철로를 이탈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날 오후 8시 10분께 신논현역 인근 터널에서 사평역 방향으로 가려던 0913호 전동차가 철로를 이탈하며 멈춰서 버린 것.열차가 시속 15km의 속도로 서행하고 있어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이 사고로 지하철에 타고 있던 승객 수십 명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채 신논현역까지 걸어서 대피해야 했다.
이와 함께 신논현역에서 동작역까지 양방향 지하철 운행이 중단되는 사태가 빚어졌다. 서울시 메트로 9호선 관계자는 사고 원인에 대해 “자동 신호 설비가 고장 나 전동차를 수동으로 운행하던 중 사고가 났다”고 밝혔다.
철도안전법 ‘모호한’ 문구 논란 유발
인명 피해도 없었고 사고 다음날 전동차도 정상 운행되긴 했지만 이날 사고는 ‘철도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시민들에게 일깨워 주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만약 이러한 사고가 도심 지하철보다 훨씬 빠르게 운행되는 고속 철도상에서 일어난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지만 지하철이나 철도의 안전 문제는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최근 철도 업계에서 레일 체결장치와 관련한 품질 인증 및 안전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올해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이 진행하고 있는 레일 체결장치 구매 입찰과 관련해 자격 미달 업체들이 비정상적으로 입찰 자격을 획득해 입찰에 참여하고 있다는 주장이 업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
문제가 되고 있는 입찰 품목은 레일 체결장치 중 하나인 코일 스프링 클립으로, 이 제품은 철도 궤도에서 레일과 침목을 탄력 있게 고정하고 궤간(1435mm)을 일정하게 유지시켜 고속으로 주행하는 열차가 안전하게 철로 위에서 운행하도록 도와주는 안전 핵심 품목이다.
국내에서는 코일 스프링 클립의 안전성을 감안해 철도안전법 제27조 규정에 따라 품질인증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지난 2006년 11월 건설교통부(현 국토해양부)는 철도 안전성 확보 차원에서 각 철도사용 기관에 품질 인증을 획득한 제품을 적극 활용할 것을 권고했다.
이에 따라 철도 건설을 담당하는 한국철도시설공단은 2007년 3월 각 공사 현장에 레일 체결장치의 품질 인증품 사용을 철저히 지키라고 공문을 내렸다. 인증되지 않은 모방 제품의 유입을 사전에 차단해 자칫 일어날지도 모를 대형 인명 사고를 막고 철도 안전 운행에 만전을 기하자는 취지다.
문제의 발단은 2006년부터 중국산 모방 제품을 수입하려는 수입상들이 국토부의 위임을 받아 국가 표준 규격을 관리하고 있는 철도기술연구원에 저가 모방 제품의 사용이 가능하도록 표준규격서의 개정을 요구하는 민원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이에 따라 2007년 4월 전문심의위원회가 개최돼 위원회 전원 일치로 모방 제품의 유입이 가능하게 한 표준규격서 개정 요구를 부결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8년 9월 표준규격서 개정 요구가 민주당 조정식 의원실의 이정희 비서관을 통해 국토부 철도차량과와 철도기술연구원 시험인증팀에 전달됐다. 하지만 또다시 대다수 전문심의위원들의 반대로 표준규격서 개정 요구는 무산됐다.
이렇게 두 차례에 걸쳐 모방품 유입이 가능한 표준 규격 개정 작업이 전문심의위원회에서 부결되자 국토부는 품질안전품 사용을 각 사용 기관에 적극 권고했던 2006년 공문 내용을 “품질 인증품의 사용은 강제 사항이 아니다”는 취지로 달리 해석하면서 논란을 야기했다.
철도안전법의 품질 인증과 관련한 문구를 찾아보면 다소 모호한 구석이 있는 게 사실이다. 지난 2009년 4월 일부 개정된 철도안전법 제27조(철도용품의 품질 인증)에 따르면 ‘국토해양부 장관은 철도에 사용되는 부품·기기 또는 장치 등(이하 ‘철도용품’이라 한다)의 성능 및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철도용품에 대한 품질 인증을 할 수 있다’고 명기돼 있다.
다만 ‘국토해양부장관이 인정하는 공인 시험 기관의 인증을 받은 경우 등 대통령령이 정하는 경우에 해당하는 철도용품에 대하여는 품질 인증 절차의 일부 또는 전부를 면제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철도용품에 대한 품질 인증을 할 수 있다’는 구절이다. ‘품질 인증을 해야 한다’는 명확한 강제 규정이 아니기 때문에 품질 인증을 반드시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게 일부 업체들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이광희 국토해양부 철도시설안전과장은 “철도안전법은 제27조는 철도용품을 생산, 공급하는 업체들이 품질과 관련해 지켜야 할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라며 “법적인 강제 조항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 과장은 이와 함께 “철도용품은 안전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제품인 만큼 일정 수준 이상의 품질 수준을 만족시켜야 하겠지만 국가가 반강제적으로 이래라 저래라 할 수는 없는 상태”라고 덧붙였다.
‘저가 입찰 유도는 문제’ 목소리도 나와
코레일이 진행하는 입찰 과정에서 조달청의 입찰 참가 등록이 완료된 업체는 모두 입찰에 참가시켜 저가 입찰을 유도하는 것도 문제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철도안전법에 의거한 품질 인증을 획득한 철도 전문 회사 팬드롤코리아의 이승재 사장은 “품질 인증에 대한 제한 없이 입찰 참가 등록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이용해 엘더스티엔엘, 세종테크 등 비전문 업체들이 입찰에 참가하고 있다”며 “이들 업체는 철도용 제품을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업체가 아니며 철도 용품 제조에 대한 지식은 물론 생산 설비조차 미흡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이 사장은 “이러한 비전문 업체들의 철도 안전 제품 공급은 철도 부실로 이어질 게 뻔하다”며 “이와 함께 품질 인증을 획득해 정상적으로 납품하고 있는 전문 업체들에 큰 타격을 줄뿐더러 나아가 철도 산업 전체에 안전과 품질을 크게 떨어뜨리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엘더스티엔엘과 세종테크 등은 자사 제품의 품질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올해 코레일 코일 스프링 클립의 입찰이 예년과 달리 여러 차례 수량을 나눠 반복되고 있는 점도 관련 업계에선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예년에는 총액 계약과 연간 단가 계약에 대해 1년에 각 1회씩만 입찰이 진행됐지만 올해는 동일한 자재에 대해 총액 계약 입찰을 벌써 3월과 8월 두 번에 걸쳐 진행했다. 이어 같은 달에 연간 단가 계약 입찰을 했다.
이와 관련, 업계 관계자는 “동일한 자재에 대해 여러 차례 수량을 나눠가며 최저가 입찰을 반복하며 시행하는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해외 주요 철도 운영 기관에서는 레일 체결장치 등 주요 철도 부품은 철도 안전을 염려해 전문 제작 업체로부터 시스템으로 일괄 구매하고 부설 후 사후관리까지 기술 지원을 받도록 하고 있다. 문제가 발생할 소지를 원천적으로 제거하고 있다는 얘기다.
한편 국내에선 고속철도의 안전 문제와 관련한 잡음이 끊이지 않고 발생해 왔다. 2년 전 고속철도 2단계(대구~부산) 건설 중에 불거진 동파된 불량 침목 문제는 제품 성능 시험에는 통과했지만 미세한 부속의 품질관리 불량으로 침목에 균열이 발생한 사건이다.
또 지난해에는 김해경전철에 부설된 레일 체결장치에서도 조합품들이 각각 분리돼 섞여 들어와 열차가 운영되기도 전에 심하게 부식돼 국회 차원에서 진상 조사에 나서기도 했다.
김재창 기자 chang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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