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구글 손을 덥석 잡은 까닭은

돌고 도는 세상이란 말이 생각납니다. 어제의 적이 친구가 되기도 하고 어제의 친구가 적이 되기도 하는 세상이란 말이겠죠. 삼성전자와 구글이 ‘형’, ‘동생’ 할 정도로 친해진 것도 그렇습니다. 구글은 수년 전까지만 해도 애플과 손잡고 마이크로소프트에 맞섰고, 삼성은 마이크로소프트의 가장 믿을 만한 파트너 중 하나였습니다. 구글이 ‘적’이라고 할 순 없지만 ‘친구’도 아니었죠.

삼성과 구글의 제휴는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됐습니다. 최근에 공개된 삼성·구글 2차 동맹에 관해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구글은 작년 7월 크롬 브라우저 기반의 컴퓨터 운영체제(OS)를 개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 OS를 탑재한 넷북을 금년 말께 내놓겠다고 했죠. 마이크로소프트의 25년 윈도 아성을 무너뜨리겠다고 선언한 셈입니다. 그때만 해도 다들 ‘과연 될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광파리의 IT이야기] 反애플 전선…‘크롬 노트북’도 공동 개발
구글은 12월 7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기자설명회를 갖고 크롬 OS와 이 OS를 탑재한 ‘노트북’ 시제품을 공개했습니다. 크롬 OS에 관해서는 전에도 꽤 알려졌지만 막상 공개한 걸 보니 상당히 혁신적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윈도 OS와는 많이 다릅니다. 윈도는 브라우저(인터넷 익스플로러)와 따로 놀았는데, 크롬 OS는 크롬 브라우저가 기반이고 “웹 그 자체”입니다.

그런데 기자설명회장에서 갑자기 ‘삼성전자’ 이름이 튀어나왔습니다. 삼성전자와 에이서가 ‘크롬 노트북’을 개발해 내년 중반께 내놓을 것이라고 구글 임원이 밝혔습니다.

삼성은 사실 TV·메모리·휴대전화 등에서는 세계 일류이지만 노트북에 관한 한 점유율 그래프에 낄 정도가 안 되죠. 구글에는 삼성 브랜드면 충분할 테고, 삼성으로선 구글과 손잡고 상위권 도약을 노릴 수 있겠죠.

삼성·구글 1차 동맹은 안드로이드 제휴를 말합니다. 구글은 2005년 7월 안드로이드를 인수했고 2007년 11월 개방형 휴대전화 연합(OHA)을 발표했습니다. 이 OHA 조직에 삼성도 가입했죠. 2008년 10월엔 대만 HTC가 첫 번째 안드로이드폰 G1을 미국 T-모바일을 통해 내놓았습니다. 그때만 해도 삼성은 안드로이드폰에 주력할 생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2007년 6월에 나온 아이폰이 돌풍을 일으키고 2008년 7월 아이폰 두 번째 모델과 함께 앱스토어를 열면서 양상이 달라졌습니다. 아이폰을 무시할 수 없게 된 겁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모바일을 개선해 보려고 애쓰는 한편 새 OS(윈도폰7) 개발에 착수했죠. 마이크로소프트만 믿고 있던 삼성으로서는 난감해졌겠죠. 경쟁사인 노키아의 심비안을 쓸 수도 없고.

안드로이드는 새로운 구세주

삼성은 안드로이드가 구글에 인수되기 전에 안드로이드 측으로부터 안드로이드폰을 함께 개발하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검증되지도 않은 신생 기업의 제안을 덥석 받아들일 수는 없었겠죠. 다행히 구글이 OHA를 결성할 때 가입했는데 아이폰이 나오고 윈도모바일이 한계를 드러내는 상황이 되자 안드로이드를 찾지 않을 수 없게 됐습니다. 구글로서도 메이저의 동참이 절실했겠죠.

삼성은 작년 5월 유럽 시장에 첫 번째 안드로이드폰 ‘갤럭시’를 내놓았습니다. 급히 만들어서 그랬는지 반응이 신통치 않았습니다. 그 후 많은 안드로이드폰을 유럽과 미국에 내놓았죠. 마침내 금년 6월 야심작인 ‘갤럭시S’를 내놓았고 지금은 90여 개 국가에서 판매합니다. 10월에는 안드로이드를 탑재한 태블릿 ‘갤럭시탭’도 발매했죠. 이로써 어수선한 전선 정비를 마쳤습니다.

삼성은 조만간 아이팟터치를 닮은 ‘갤럭시플레이어’도 내놓습니다. 좋든 싫든 애플과 대결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폰-갤럭시S, 아이패드-갤럭시탭, 아이팟터치-갤럭시플레이어…. 이런 대결 구도입니다.

애플에 핵심 부품을 공급하면서 한편으론 결투를 벌여야 하는 이상한 시추에이션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때 애플의 친구였던 구글이 삼성을 돕고 있습니다. 싸움판 재미있게 돌아갑니다.

김광현 한국경제 IT 전문기자 khkim@hankyung.com
블로그 ‘광파리의 글로벌 IT 이야기’운영자(http://blog/hankyung/com/kim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