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기부왕을 만나다

[창간 15주년 기획특집 1] "더 많이 기부하고 더 많은 즐거움 얻을 것"
스티브 김(한국명 김윤종) 꿈·희망·미래재단 이사장이 한국을 떠난 것은 1976년. 서강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맨주먹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미국에서의 벤처 신화는 그렇게 시작됐다.

1984년 집 근처 차고를 빌려 광역통신망 장비 업체인 ‘파이버믹스’를 세웠고 7년 뒤인 1991년 ADC사에 매각했다. 회사를 팔면서 5400만 달러를 벌었다.

1993년에 ‘자일랜’을 설립했다. 1999년 유럽 최대 통신사인 프랑스 알카텔에 20억 달러를 받고 자일랜 지분을 넘기면서 세계 정보통신 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20억 달러는 2조 원이 넘는 큰돈이다.

학비를 걱정하던 가난한 유학생 신분에서 단숨에 억만장자로 등극했다. 이후 나라뱅크 이사를 거쳐 NCC캐피탈을 창업했던 그는 1997년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에 돌아온 그는 자선 사업가로 변신했다. 2001년에 설립한 사회복지법인 희망·꿈·미래재단을 통해 연 20억 원을 장학 사업과 기부 활동에 쏟아 붓고 있다. 그는 경제적 지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재능 기부에도 적극적이다. 강연 활동이 그것이다. 강의 횟수는 한 달에 20번 정도로 전국 어디든지 강연 요청이 들어오면 달려간다.

“재산 대물림은 자식의 행복을 빼앗는 일”

충분한 부를 쌓은 그가 편하게 즐기면서 여생을 보낼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토록 기부 사업에 열정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행복하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사업에서 큰돈을 번 후 골프장을 사서 운영도 해보고 여기저기 파티에 참석하면서 삶을 즐겼지만,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행복이 필요했어요. 바로 나눔이었습니다. 돈은 많을수록 더 갖고 싶어집니다. 돈의 노예가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나눠 주는 삶이 중요합니다. 기부도 하고 경험도 나눠주는 겁니다. 내 강연을 듣고 단 한 명이라도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면 그보다 기쁜 일은 없겠지요.”

스티브 김의 봉사 활동은 다양하지만 원칙은 하나다. “디딤돌이 되거나 낚시질하는 방법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학교(초·중고·대학)에 리더십센터나 프레젠테이션 경진 대회를 열어주는 것도 그 일환이다.

특히 프레젠테이션 경진 대회에 공을 들인다.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의사를 정확하고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습관을 체득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미국에서 기업가로 성공한 그는 “한국 기업인들은 소유 의식이 지나치다”고 꼬집었다.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줄 생각만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자식에게 재산을 대물림하는 것은) 행복을 빼앗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게 성취감 아닐까요. 성취감을 빼앗는 것은 삶의 에너지를 빼앗는 것이지요.”

그는 요즘 “너무 행복하다”고 고백한다. 강연을 끝내고 돌아와 학생들로부터 ‘감사하다’는 e메일을 여러 통 받으면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향후 계획을 물었더니, 씩 웃으며 대답한다.

“지금이 행복합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강연을 다니고, 더 많은 기부를 통해 나눔의 즐거움을 만끽할 겁니다.”

스티브 김 꿈·희망·미래재단 이사장

약력 : 1949년생. 73년 서강대 전자공학과 졸업. 79년 캘리포니아주립대 정보통신 석사. 84년 파이버믹스 창업. 93년 자일랜 창업. 2001년 사회복지법인 꿈·희망·미래재단 설립, 이사장(현).


권오준 기자 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