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욱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초빙교수
손욱 전 농심 회장은 국내 기술 경영(MOT: Management of Technology)을 이끈 1세대이자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경영 혁신에 앞장섰던 최고경영자(CEO)다.서울대 기계공학과 졸업 후 1975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손 전 회장은 삼성SDI 사장, 삼성인력개발원장, 삼성종합기술원장 등을 역임한 정통 ‘삼성맨’이기도 하다.
한국의 잭 웰치, 혁신 전도사, 최고의 테크노 CEO 등으로 불리는 그는 2년여간 농심 회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초빙교수로 재직하며 기술 경영 연구와 전파에 매진하고 있다.
‘감사나눔운동’과 ‘한국형 리더십 연구’에도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손 전 회장을 수원에 있는 연구실에서 만났다.
MB 정부 임기가 중반을 넘어섰습니다. 경제정책과 성과를 어떻게 평가합니까.
글로벌 경제 위기 극복, 원자로 수출 같은 세일즈 외교 등 ‘경제 대통령’으로서의 활약상은 성공적이라고 봅니다. 얼만 전 만난 일본 지인은 “우리에게 그런 총리가 있었다면 오늘날 일본이 이렇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부러워하더군요.
하지만 비판적 견해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우선 정책 기조를 세우고 운영하는 사람들이 과거의 패러다임에 묶여 있는 것이 보입니다. 기업에 지시 사항을 하달하고 통제하려는 마인드도 보이죠. 대표적인 게 물가 관리 품목 선정 같은 겁니다.
정부와 기업은 서로 머리를 맞대고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기업의 지혜를 공유할 수 있는 정책을 펴야 하는 것이죠. 일방적인 가격 정책, 세무조사 등으로 대통령의 뛰어난 업적을 관계 부처가 깎아먹고 있는 셈입니다. 즉 소통과 통합의 부재죠.
G20이 성공리에 마무리됐습니다. 이번 정상회의의 성과를 어떻게 봅니까.
행사를 통해 국격을 높이고 글로벌 경제 지위를 높였다는 건 온 국민이 축하해야 할 일이죠. 개개의 복잡한 사안이나 문제 해결의 방법을 찾는 것보다 우리가 그런 논의의 중심에 섰다는 게 의미가 큽니다. 하지만 2% 부족한 느낌도 듭니다.
이런 좋은 계기를 선진국으로 가기 위한 의식 전환의 계기로 활용해야 했는데, 그런 부분이 부족했죠. 한 나라의 국운이 움직이는 사이클을 300년으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세종과 영·정조를 거쳤다면 지금이 바로 국운 상승기라는 뜻이죠. 그 첫 단추를 G20이 잘 채웠다고 봅니다.
최근 들어 우리 기업의 성과가 눈부신데, 지속 가능한 성장의 요건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미국과 일본을 배우려고 했는데, 이미 그들은 쇠퇴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한국을 배우자는 목소리가 높아질수록 우리도 쇠퇴의 길에 들어설 가능성이 크다는 뜻입니다. 이미 외부의 평가를 받을 때는 피크에 도달해 내려갈 일만 남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그래서 전 지금의 호황을 위기로 봅니다. 기업을 보십시오. 지난 20~30년 동안 국내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한 사례가 몇 개 없습니다. 새로운 리더십이 실종됐다는 뜻이죠. 어떤 조직이든 리더의 자만과 현실 안주가 가장 큰 적입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경영도 화두인데요.
대기업에 투자를 요구하지만 실질적인 고용은 늘지 않고 있습니다. 기술 혁신과 생산성 증대 등으로 오히려 고용이 줄어드는 상황이죠. 이런 사실을 이미 국민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결국 본질적인 문제는 중소기업의 자생력이죠.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가능성을 이끌어야지 대기업에만 모든 책임을 전가할 게 아닙니다. 우리 기업 수가 100만 개라고 하는데 독일은 10명 이하 사업장이 62%, 10~49명이 27%입니다. 우리는 10명 이하가 88%, 10~49명이 8.3%죠.
독일식으로 구조를 바꾸면 600만 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깁니다. 다행히 학계나 재계의 내년도 화두가 ‘백 투 더 베이직’입니다. 기본·본질·핵심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2011년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새로운 10년의 시작이고, 2010년대 중반이면 고령화에 따라 산업 발전과 혁신이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5~6년이 선진국으로 발전하느냐, 도태되느냐의 갈림길이죠. 천안함 사고에 이어 연평도 도발이 일어났습니다. 우리 경제에 미치는 리스크는 어느 정도이고 해결 방법은 무엇일까요.
국제적 신뢰도에선 아직까지 큰 문제가 없어 다행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한 번 더 비슷한 사태가 벌어지면 문제가 심각합니다. 전쟁이 날 상황에 누가 투자하겠습니까. 근본적이고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한 때가 아닌가 합니다.
우선 우리가 동북아 평화의 중심이 돼야 합니다. 이와 함께 중국·일본·러시아 등 주변 강대국에 도움이 되는 나라, 없어서는 안 될 나라가 돼야 합니다. 한국은 인재와 창의력이 전 재산인 나라입니다. 이웃 나라에 없어서는 안 되는 창조적 기술국이 돼야 합니다.
일본이 좋은 예죠. 한편으로는 연평도 도발로 인해 우리가 현재 얼마나 많은 갈등 구조를 안고 살고 있는지 깨닫는 계기가 됐다고도 봅니다. 소통과 통합의 시대로 가는 선순환의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한국 경제를 먹여 살릴 기업의 미래 먹을거리는 무엇이라고 봅니까.
참여정부에서 10대 성장 동력을 선정할 때 위원으로 참여했습니다. 정부가 세계적 석학들을 모셔와 청와대에서 만찬을 했는데, 그들이 한목소리로 하는 얘기가 ‘정부 주도의 시대는 지났다’는 겁니다. 기업이 다 알아서 한다는 것이죠.
결국 성장 동력은 사람이고 사람을 키우는 건 교육입니다. 정부의 역할은 인재와 리더를 키우는 겁니다. 국가가 끌어가기 전에 기업은 이미 바이오기술(BT)·정보기술(IT)·녹색으로 가고 있습니다.
더 중요한 문제는 기업이 활용할 수 있는 인재를 키워내는 것인데, 연구·개발(R&D) 투자보다 더 앞서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1년에 1조 원 씩 R&D 투자금이 늘고 있는데, 1~2년만 허리띠 졸라매 자체 해결하고 그 돈을 교육에 돌리자는 말까지 나옵니다.
창조적 인재에게 동기부여만 하면 놀라운 성과가 나타나게 돼 있죠. ‘무슨 기술이면 돈 된다’는 틀에 박힌 사고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신수종, 미래 먹을거리는 결국 사람입니다.
미국은 과학기술이 미래를 만든다는 모토 아래 80년에 걸친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른바 2060 비전이죠. 지금 교사들의 생각을 뜯어고치지 못하니 지금부터 인재 양성을 위한 교사를 육성한다는 계획입니다. 무려 3세대가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정책을 추진하는 겁니다. 우리도 큰 그림을 그려야죠.
끝으로 경영 일선에 있는 후배 CEO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한국은 직원들의 역량이 6% 정도 발휘된다고 합니다. 이에 비해 미국은 20%의 능력을 발휘한다고 하죠. 왜일까요. 바로 소통과 화합의 차이입니다. CEO 혼자 비전을 만들고 따라오게 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습니다.
더구나 IT 인프라가 발전하면서 훌륭한 인재들이 마음껏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타성에 젖어 있는 기업에선 창조적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습니다. 오픈 이노베이션해야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라는 걸 후배들도 공감했으면 합니다.
약력 : 1945년생. 67년 서울대 기계공학과 졸업. 75년 삼성전자 입사. 85년 삼성전기 연구소장. 93년 삼성전자 전략기획실장. 98년 삼성전관 대표이사. 99년 삼성종합기술원 원장. 2004년 삼성인력개발원 원장. 2005년 삼성SDI 상담역. 2008년 농심 대표이사 회장. 2010년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초빙교수(현).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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