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기부왕을 만나다
류근철 박사(카이스트 초빙 특훈교수)가 카이스트(KAIST) 교정을 걸어갈 때면 여기저기서 “안녕하시죠?”라는 웃음 띤 인사 소리가 들려온다. 멀리서 뛰어와 꾸벅 인사를 건네고 가는 이들도 많다.그의 연구실 겸 헬스 클리닉 복도에 걸린 게시판에는 “할아버지, 사랑해요”, “교수님은 저의 빛이에요”와 같은 학생들의 애정 어린 문구들이 가득 채워져 있다.
그가 이토록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건 2년 여 전 개인 기부자로서는 사상 최대 금액이라는 578억 원을 기부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평생 의술과 인술을 아낌없이 베풀어 왔고, 또 그저 돈이라는 ‘물질’만이 아닌 마음과 사랑을 꾸준히 기부하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전 재산 기부에 그치지 않고 평생 모아온 1000여 점에 달하는 각종 골동품들을 모두 카이스트에 기증하는 한편 사비를 들여 교내에 조각공원을 만들어 공부에 지친 학생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게다가 연구실에 헬스 클리닉을 마련해 아프고 병든 학생들을 무료로 치료하는 등 의료 기부를 행하고 있기도 하다. 그 때문에 그의 연구실은 여느 교수 연구실과 달리 유난히 많은 학생들이 자유롭게 왕래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재산·기술·마음까지 기부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요?” 그의 이 같은 아낌없는 나눔 정신은 모두가 그의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정서적 유산이다.
“가진 사람이 나눠야 행복한 세상”
어린 시절 그의 집안 형편은 어려웠다. 너무 가난해서 보리쌀 한 되만 있으면 다닐 수 있는 서당 한 번 다니지 못했을 정도다. 하지만 어려운 형편 중에서도 어머니는 늘 베풀고 사셨다. “거지가 오면 당신이 한 끼를 굶을지언정 밥을 주셨고, 동냥질하는 여자들을 위해 움막집을 지어주기도 하고 밥과 옷을 나눠주기도 하셨죠.
그래서 저 역시 자연히 나눔의 정신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 대한민국 한의학 박사 1호로, 침 마취로 자궁근종 수술을 성공시키는 등 그야말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한의학자로 승승장구하던 그가 본격적으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나눠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은 병원 자리로 구입한 땅이 천정부지로 값이 뛰기 시작하면서 많은 부를 가지게 되면서부터다.
“재산이 100억 원이 되고 200억 원이 되었을 때는 내심 좋기도 했죠. 그런데 300억 원이 넘자 덜컥 무서워지더군요. 돈에 귀신이 붙은 것인가 싶기도 하고, 결국 이건 내 돈이 아니다고 생각하기로 했죠.” 그래서 선택된 곳이 바로 카이스트다.
“옛날에는 총과 군대가 그 나라의 국력을 말했지만 이제는 과학이 그 나라의 국력을 말해주는 시대잖아요. 전 우리나라가 강한 나라가 되길 바랍니다. 우리 학생들이 100만 명, 1000만 명의 사람들을 살릴 수 있는 최고의 과학자가 되길 바라죠. 그래서 카이스트를 선택한 것이죠.”
그는 진정 누구나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조금 더 가진 사람이 나눠야 하고, 나눔을 기꺼워할 줄 아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조금 많이 가진 사람들도 나누는 기쁨에 눈을 떠야 합니다. 딸이 예쁘다고 시집보내지 않고 노처녀로 늙히기보다 좋은 짝을 찾아 보내는 게 좋잖아요. 돈도 마찬가지예요. 훌륭하게 잘 쓰일 수 있는 곳에 가야죠. 그게 진짜 돈 다운 쓰임 아닐까요?”
류근철 카이스트 초빙 특훈교수
약력 : 1926년생. 경희대 한의학 석사·박사. 모스크바 국립공대 의공학 박사. KAIST 명예이학박사. 경희의료원 한방병원 부원장. 경희대 의대 부교수. 경희한방의료원 부원장. 러시아 모스크바국립공대 교수. 2008. KAIST 초빙 특훈교수(현).
김성주 객원기자 helieta@empal.com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