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콩 전문가 정남수

최근 몸에 좋은 검은색의 음식들 즉, ‘블랙 푸드’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더욱이 항암과 노화 억제 물질이 많고 신장 계통의 대사 촉진에도 효과가 좋은 검은콩은 성인병 예방의 건강 음식으로는 물론 다이어트 음식으로도 각광받고 있는 블랙 푸드의 대표 주자다.

“검은콩에 대해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게 바로 안토시아닌이에요. 안토시아닌은 암, 혈관 질환 계통, 신경 계통의 질병, 노화 지연, 각종 염증, 당뇨병 및 각종 성인병 예방에 탁월한 효과를 자랑하죠. 100g의 검은콩에는 약 2000mg의 안토시아닌이 포함돼 있어요. 이 밖에 우리 몸에 좋은 각종 미량 영양소들이 포함돼 있고요.”

정남수 씨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검은콩의 특별함에 주목하고 있지 않던 20여 년 전부터 검은콩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거듭해 온 ‘검은콩 전문가’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하고 대학에서 강의한 식품 전문가이기도 한 정 씨가 여러 식품들 중에서 검은콩에 주목하게 된 것은 평온하기만 했던 그녀의 인생에 닥친 불운한 사고 때문이었다.

불의의 사고가 가져다준 검은콩과의 만남
[프로의 세계] 검은콩 연구 20년…“뭔가 특별한 게 있죠”
원래 그녀는 천생 학자였다. 숙명여대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을 졸업하고 강단에 서기까지 그저 책과 연구가 그녀 인생의 전부였다. 유학을 준비하던 시절 만나 결혼에까지 이른 그녀의 남편은 그런 그녀를 가장 많이 이해하고 가장 가까이에서 지지해 주던 든든한 동반자였다.

“결국 결혼 때문에 박사의 꿈도, 유학의 꿈도 접었지만 항상 집에서도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 고마운 남편이죠. 그 덕분에 집안 살림 걱정 하나 없이 제 공부만 하고 대학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전념할 수 있었죠.”

남편은 당시 골프장을 운영하며 남부럽지 않은 재력과 능력을 자랑했던 이다. 하지만 그런 남편이 어느 날 갑작스럽게 교통사고를 당했고 의식불명이 되었다. “몸도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뇌가 깨어나지 않는다고 했어요. 그야말로 식물인간 상태가 되었던 셈이죠.”

1989년의 일이다. 그녀가 대학 강단에서 기초영양학 등을 가르치기 시작한 지 1년여가 지났을 때쯤이었다. “부서진 몸은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든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있잖아요. 하지만 의식불명이라고 하니 너무 무섭더라고요. 흔히 하는 말로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죠.”

남편을 그저 두고 볼 수만 없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일이라도 있으면 무슨 일이라도 해내고 싶었다. “하지만 의사도 아닌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었겠어요. 다만, 식품에 관해서는 전문가니까 몸에 좋은 음식이나 민간 처방을 찾으면 뭔가 남편의 회복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여기저기 수소문하기 시작했죠.”

그러다 만난 것이 바로 검은콩이었다. “콩은 고기나 생선, 달걀 등의 육류보다 레시틴 함량이 몇 배나 높아요. 이 레시틴이 분해되면 콜린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생성됩니다. 콜린은 뇌 기능을 활성화시켜 기억력과 집중력 향상에 도움을 주고요. 결국 뇌 건강에 콩만큼 좋은 음식이 없다는 얘기죠.” 거기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었다.

그리고 매일 검은콩 죽을 쑤기 시작했다. 남편을 살리고 싶다는 일념으로 병원을 설득해 의식이 없는 남편의 입에 가느다란 호스로 조금씩 콩죽을 흘려 넣었다. 그러기를 한 달하고도 십여 일, 마침내 의식불명이던 남편이 깨어났다.
[프로의 세계] 검은콩 연구 20년…“뭔가 특별한 게 있죠”
“당연히 100% 콩죽만의 효과는 아니겠죠. 하지만 그 일로 콩에 대한 믿음과 연구 의지가 일깨워졌어요.” 그리고 매일 콩을 접하는 나날이 시작됐다.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랴, 남편 병 수발하랴, 살림 꾸려가랴 정신없는 와중에도 콩에 대한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1인 다역이 힘에 부쳐 몇 년 뒤에는 강단에 서는 일을 그만두고 오직 남편의 병간호에만 매달렸다.

그런 한편 콩의 효능을 알기 위해 매일 책을 뒤졌다. 공부한 관련 논문과 책만 해도 수백 권이 넘을 정도다. 물론 남편에게는 매일매일 가장 건강한 검은콩으로 콩죽이나 콩 음료를 만들어 주었다. 그 덕분에 사고 당시 회생 가능성 0%였던 남편은 20여 년이 지난 오늘까지 그녀의 곁에 남아주었다.

“아직 100% 온전한 몸 상태는 아니에요. 거동이 불편한 상태이긴 하죠. 하지만 그런데 비해 건강한 편이에요. 병원에서도 모두 놀랄 정도죠. 운동량이 거의 없는 상태인데도 체중 변화가 거의 없고 근육도 살아있는 편인데다 혈압도 정상치를 유지하고 있죠.”

그녀의 이 놀라운 사연은 입소문을 통해 퍼지기 시작했고 그 사연을 접한 사람들이 한 사람, 두 사람 그녀에게 자신들에게도 검은콩의 효력을 나눠달라고 부탁해 왔다.

처음에는 그저 계속되는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한 사람, 두 사람에게 검은 콩죽을 만들어 나눠주는 것에 그쳤다. “처음에는 일을 크게 벌일 예정이 아니었어요. 그저 제가 아는 콩에 대한 정보를 나누고 콩죽을 나눌 뿐이었죠.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부탁을 들어주기 시작하면서 콩죽만으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래도 보관 문제도 있고 멀리 있는 분들에게 보내주기도 어려웠죠. 그래서 고안한 게 검은 콩 진액이었어요.”

본격적으로 사업화하라는 권유도 많았다. 공장을 빌려주겠다고 먼저 나서 제의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공부만 하고 남편 병간호만 하면서 살아온 터라 사업에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런 그녀에게 가장 큰 용기를 북돋워준 이가 바로 남편이었다.

“당신의 검은콩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내가 제일 잘 안다. 내가 검은콩의 효능을 입증하는 살아있는 데이터 아니냐”는 남편의 권유에 비로소 선뜻 한 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우선 어떻게 하면 소화흡수율을 높이면서 콩이 가진 좋은 성분을 고스란히 체내에 전달할 수 있을지가 가장 큰 난관이었다.

“보관이나 운반의 편의성 때문에 진액을 선택했는데, 만드는 과정에서 손실되는 영양소가 너무 많더라고요. 안 되겠다 싶었죠. 그래서 아예 분말로 만들게 된 거예요.” 하지만 분말로 만드는 것도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영양 성분이 손실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검은콩이 건강식품으로 조명받기 시작한 후 집에서 흔히 콩물을 많이 끓여 드시는데요, 검은콩을 물에 담가 두거나 끓이는 도중에도 영양소가 손실된다는 점을 많이 모르시더라고요.”

볶거나 삶는 것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인 조리 방법으로는 콩의 소화흡수율이 6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녀 역시 그 점에 착안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기 위해 수십, 수백 번의 시행착오를 거듭해 마침내 보완점을 찾았다. 바로 콩을 고온에서 단시간에 쪄내는 것이다.

“1차로 고온에서 쪄낸 뒤 2차로 분말화 작업을 하는 거예요. 이렇게 하면 검은콩이 가진 일반 영양소나 기능성 영양 성분의 형태가 변하지 않아 검은콩이 지닌 효능을 최대한 살릴 수 있죠.”

이렇게 완성된 검은콩 분말은 검증된 기관에서 실험한 결과 80~90% 정도의 흡수율을 기록했다. 여기에 다시마·흑임자·홍삼을 첨가해 그녀만의 오리지널 검은콩 분말을 완성했다.

“검은콩의 효능을 더 연구하고 싶어”

온라인 블로그를 운영하며 검은콩에 대한 정보를 나누는데 이어 지난해부터는 그동안의 성과를 바탕으로 ‘정남수의 콩이야기’라는 브랜드로 판매도 시작했다. 출시 1년여밖에 되지 않았지만 벌써 모 골프 선수, 농구 선수, 유명 대학 교수, 갤러리 관장들과 같은 유명 인사에서부터 일반 대중들까지 앞 다퉈 그녀의 검은콩 분말의 효능을 칭찬하고 있다.

요즘 그녀는 새로운 도전을 준비 중이다. 오래전부터 그녀의 콩 관련 연구를 도와 온 건국대 동물생명과학대학 학장인 이치호 교수와 함께 조만간 산학 협동으로 그녀가 고안한 검은콩 분말이 ‘골다공증과 당뇨, 콜레스테롤’ 등과 같은 성인병에 어떤 효능을 보일지에 대한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다.

“제품을 파는 게 목적이 아니에요. 저와 남편이 몸소 겪은 검은콩의 그 마법 같은 힘을 더 많은 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서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과학적 연구와 객관적인 데이터가 뒷받침돼야 하죠.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검은콩 연구에 매진하고 싶습니다.”

약력 : 1948년생. 숙명여대 식품영양학과 졸업, 숙명여대 대학원 졸업(이학석사), 건국대 농축대학원 축산대학 유가공 전공 이학석사.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 조리실습과정 이수. 건국대 충주캠퍼스 자연과학대학 기초 영양 및 조리 강의. ‘정남수의 콩이야기’ 대표(현).

김성주 객원기자 helieta@empal.co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