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생생토크
이번에도 서해 북방한계선(NLL)이 ‘한반도의 화약고’였다. 북한이 11월 23일 오후 연평도 포격 도발을 자행하면서 다시금 서해 NLL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서해 NLL이 인접한 서해 5도 지역은 꽃게가 풍부한 어장으로 해마다 6월 즈음이면 북한의 어선이 NLL을 침범해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고조돼 왔다. 실제 남북 간 교전도 끊이지 않았다.
1차 연평해전은 1999년 일어났는데, 남북한 경비정이 NLL을 두고 9일째 대치 상황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북측의 기관포 공격으로 교전이 발발, 5분간 전투가 벌어졌었다. 2002년 6월에는 2차 연평해전이 일어나 우리 해군 6명이 전사하고 18명이 부상했으며 북한군은 경비정 1척이 화염에 휩싸인 채 북측으로 예인돼 되돌아갔다.
북 연평도 도발에 상시 요새화로 전환
최근에는 2009년 11월 대청해전에 이어 올해 3월 26일 승조원 46명의 목숨을 앗아간 천안함 피격 사건이 발생한 곳도 바로 서해 NLL이다. 이 때문에 서해 NLL은 일촉즉발의 ‘화약고’로 인식돼 왔고, 1996년부터 올해 10월까지 북측은 서해 NLL을 총 205차례나 침범했다.
NLL은 7·27 정전협정 체결 직후인 1953년 8월 30일 한반도 해역에서 남북 간 우발적 충돌 예방을 위해 당시 마크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에 의해 설정됐다.
1951년 7월10일 이후 2년여간 이어진 정전협상 과정에서 유엔군과 공산군이 지상에서의 군사분계선(MDL)과 달리 연해수역에 대해서는 이견을 좁히지 못해 해상경계선 합의에 실패한데 따른 것이다. NLL에 대해 북측은 그동안 ‘비법(非法)적인’ 선이라고 주장해 왔다.
북측은 1977년 7월 1일에는 ‘200해리 경제수역’을 설정한데 이어 한 달 뒤인 8월 1일에는 “동해에서는 영해 기선으로부터 50마일을, 서해에서는 경제수역 경계선으로 한다”며 해상 군사경계선을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또 1999년 9월 2일에는 ‘조선 서해 해상 군사분계선’을 선포, NLL의 무효를 주장하며 해상 군사경계수역의 범위를 제시하는 한편 이 수역에 대한 자위권 행사를 천명했다.
그야말로 수십 년 동안 북측이 끊임없이 물고 늘어진 파란만장한 굴곡의 사선이 서해 NLL이었던 셈이다. 군 당국에 따르면 서해 NLL 지역에서 남측은 백령도·연평도를 위주로 전력을 배치, 경계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데 비해 북측은 해안선을 따라 엄청난 규모의 해안포와 미사일을 집중적으로 배치해 놓고 있다.
남북 간 드러난 전력만 놓고 보더라도 북한은 남포 서해함대에 13척의 잠수함과 362척의 함정을 보유하고 있다. 함정 대부분은 170~400톤급의 경비정과 유도탄고속정·어뢰정·화력지원정 등 소형 전투함으로 해주와 사곶 등에 전진 배치돼 있다.
병력은 2만~3만 명에 달한다. 대북 전문가들은 북측의 서해 전력을 ‘전시 태세에 준하는 화력’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우리 군은 연평도·소연평도·우도를 방어하는 연평부대의 병력 1200여 명과 백령도·대청도·소청도에 배치된 해병대 6여단 병력 4000여 명을 합친 5200여 명이 전부다.
인천해군사령부 예하의 해군 2함대가 보유한 전투함(초계함·호위함·고속정 등) 35척이 전부다. 양적으로만 놓고 보면 게임이 안 된다. 이번 연평도 사태를 계기로 정부는 서해 5도의 전력을 대폭 강화하고 사실상 상시 요새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해병대 병력 4000여 명을 감축할 계획이었던 ‘국방개혁 2020’과 ‘군구조개혁안’도 전면 백지화하기로 했다. 그런가 하면 연평도 등에 배치된 포의 사정거리를 늘리고 배치된 K-9 자주포의 수도 2배 이상 늘리기로 했다. 말 그대로 공세적인 대응으로 전술 개념을 완전히 다시 짜는 셈이다. 한반도 분단 상황의 최극단 사선에서 서해 NLL이 이제 ‘전시 요새’로 탈바꿈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세계 최강의 군 전력을 서해 5도에 배치하라”고 긴급 지시했다. 이제부터 서해 NLL의 역사가 다시 써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준혁 한국경제 정치부 기자 rainbo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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