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신 파프리카랩 대표

파프리카랩은 소셜 게임을 주력으로 하는, 직원이 스무 명 남짓한 스타트업이다. 작은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대형 게임 회사들도 어려워하는 ‘해외시장’이라는 한 우물만 고집스럽게 파고 있는 기업이기도 하다.

더욱이 파프리카랩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지만 아직 한국 게임 업체들이 한 번도 주목받지 못했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페이스북에 도전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파프리카랩은 페이스북에 도전하기 전 일본 시장에서 데뷔전을 치르면서 가능성을 인정받은 바 있다. 지난해 봄 일본 앱스토어에 ‘이성을 사로잡는 당신의 지성 2000’이라는 퀴즈 게임을 선보여 1주일 만에 일본 앱스토어 전체 6위, 게임 부문 3위에 오를 정도로 인기 몰이를 하기도 했다.

올 6월 페이스북에 ‘해적의 유산’이라는 게임을 선보인 파프리카랩은 회원 10만 명을 돌파하며 한국의 소셜 게임 업체 중 가장 많은 회원을 모았다.

◇ 프로게이머 출신 사장 = 파프리카랩을 만든 김동신 대표는 경력이 매우 특이하다. 별별 경력이 많은 스타트업 창업자들 중에도 프로게이머 출신은 아마 김 대표밖에 없을 것 같다. 2000년대 초반 칸이라는 프로게임단에 소속된, 그것도 제법 유명한 선수였다.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출신의 게이머여서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화제가 될 만하다.

그는 게임의 끝을 봤다고 판단, 잘나가던 프로게이머 생활을 접었지만 그 뒤로도 게임과의 인연을 끊지 않았다. 한국멀티넷에서 병역특례병으로 근무하다 2002년 8월 엔씨소프트에 입사해 게임을 개발하는 프로그래머로 일했다. 이때부터 그는 게임을 즐기는 소비자에서 게임을 만드는 개발자로서의 역할 변신을 하게 된다. 창업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 해외시장에서 소셜 게임으로 승부 = 파프리카랩은 국내 업체지만 국내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한 게임을 만들지 않고 해외시장을 겨냥한 게임만 만든다. 장르는 소셜 게임에 집중하고 있다. 해외시장과 소셜 게임에 초점을 맞췄다. 왜 그럴까.
[한국의 스타트업] 소셜 게임‘주력’…해외시장 공략 ‘한 우물’
이는 그의 게이머로서의 경력과 게임 업체에서의 경험에 근거하고 있다. 그가 게임 업체에 재직하면서 관심을 두고 본 것은 대형 게임 회사의 게임 규모가 커지고 개발 기간이 장기화되면서 개발자와 유저 간에 거리가 점점 멀어진다는 점이었다.

“개발자는 자신의 관성대로 계속 고난이도의 게임을 만들고 유저가 그것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새롭게 시장에 진입하는 유저들은 이에 적응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과거의 유저들만 붙잡고 있는 좁은 시장이 되는 거죠. 닌텐도가 그 약점을 처음으로 간파한 것이고 지금의 소셜 게임도 이런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게임을 하는 것은 유저들인데 개발자들의 생각이 더 중요해지는, 공급자 위주의 시장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기존 게임을 하는 유저들이 별로 행복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한 것도 그를 소셜 게임으로 방향을 잡게 했다. ‘게임이 사람들과 즐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게임 자체에서 뭔가를 이뤄야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 사람들이 힘들어하고 불행해지는 것 같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물론 소셜 게임이라는 장르가 새롭게 뜨면서 신생 업체에 훨씬 더 많은 가능성을 준다는 점도 당연히 작용했다.

김 대표는 “기존 장르의 게임과 달리 소셜 게임을 만드는 과정이 절반에 불과하고 출시 이후 소셜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를 위해선 소셜 게임이 얼마나 사용자가 편하게 네트워킹할 수 있느냐 하는 부분과 비즈니스 모델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프로게이머 경력의 소유자로서 한국이 유난히 소셜 게임 분야에서 뒤처져 있다는 것도 그의 승부욕을 자극했다. “사실 싸이월드에 기회가 있었습니다. 싸이월드도 미니홈피가 뜨던 시절 주키퍼(Zoo Keeper)와 같은 미니게임을 미니홈피에 실험적으로 운영하면서 인기를 모으기도 했죠.

그런데 웹 표준 문제와 네트워크 내에서의 활용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결국 활성화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기회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한국엔 여전히 강력한 SNS가 있고 게임 분야에서 숱한 경험을 거친 인재들이 많습니다.”

◇ 콘텐츠의 힘이 핵심 = 소셜 게임 분야에서 한국이 결국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그가 자신하는 것은 소셜 게임에서도 결국 콘텐츠가 중요해질 것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스타트업] 소셜 게임‘주력’…해외시장 공략 ‘한 우물’
“과거 소셜 게임에서는 접근성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얼마나 빨리 사람들에게 알리고 그를 통해 방대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했죠. 하지만 앞으로는 점점 콘텐츠의 중요성이 커질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과거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에서 느꼈던 것처럼 처음에는 네트워크 자체에 열광하지만 결국 콘텐츠로 돌아오게 마련입니다.”

그가 볼 때 기존 온라인 게임의 다중접속과 소셜 게임의 다중접속은 서로 성격이 다르다. 온라인 게임은 서로 잘 모르는 사람들끼리 목표를 향해 모여서 서로 경쟁하고 협력하면서 이합집산하지만 소셜 게임에서는 서로 잘 아는 사람들끼리 모여 게임을 한다. 잘 아는 사람들끼리의 관계 형성과 네트워크 확장이 우선이 될 수밖에 없다. 한국 게임 업체들이 소셜 게임 초창기에 적응하지 못한 것도 이 부분이었다.

하지만 이 단계를 지나면 콘텐츠 싸움으로 가는데, 기존에 온라인에서 다양한 콘텐츠 노하우를 축적한 한국 게임 업체들이 이 부분으로 가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다만 소셜 게임에서는 개발자가 만드는 게임이라는 인식을 버려야 할 것 같다”며 “소셜 게임은 혼자 해도 재미있는, 균형 잡힌 게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는 사람들끼리 즐기면서 재미를 찾아가는 장르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사업은 인생의 보배 같은 사람을 찾는 과정 = 그는 소셜 게임에 이어 소셜 네트워크를 활용한 다양한 시도를 구상하고 있다. 소셜 커머스도 그중 한 분야다. 김 대표는 오랫동안 전자상거래 분야를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 왔다.

파프리카랩이 9월 말 선보인 ‘폰폰(PonPon)’은 모바일 소셜 커머스를 위한 아이폰용 애플리케이션이다. 이 애플리케이션은 할인 상품 구매는 물론이고 일부 대형 쇼핑몰이 제공하는 있는 결제 시스템까지 결합해 원스톱 쇼핑이 가능한 것이 장점이다. 판매되는 물건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의 지도 서비스, 인쇄가 필요 없는 쿠폰 이용 방식 등도 특징이다.

그는 2007년 파프리카랩을 설립한 직후 1년 반 동안 투자를 받지 못해 정말 힘든 시기를 겪었다. 그런 시기를 겪으면서 사업 역시 사람이 행복해지기 위해 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의 기업관도 여기에서 나온다. 사람에게 행복을 주는 것이 기업이 할 일이라는 것이다.

“좋은 회사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물질적 행복과 정신적 행복을 함께 주고 싶습니다. 그게 기업이 할 일이 아닌가 합니다. 사업을 하는 것도 내 인생의 보배 같은 사람을 찾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제가 게임이라는 곳에 몸을 담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게임 회사에 근무한 적도 있고, 계속해서 게임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고민해 왔습니다. 게임을 통해 제가 할 일이 있다는 것이죠. 게임은 중독성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하지만, 폐인을 만들지 않는 그런 게임이 없을까 고민해 왔습니다. 희로애락에서 ‘노’가 없는 게임을 만들어 보고 싶은 꿈도 있습니다.”

임원기 한국경제 산업부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