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덕도법, 국토부 등 “법적 책임 질 수도”반대…대통령 지시 ‘패싱’하고 여당은 중수청법 강행

[홍영식의 정치판]

​​​​​​​문재인 대통령의 속도조절 지시에도 불구하고 여당 강경파 의원들이 중대범죄수사청 설치를 강행하고, 국토교통부 등이 정권 핵심 정책인 가덕도신공항특별법에 반대입장을 밝히면서 대통령 레임덕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문 대통령(사진 왼쪽 두 번째)이 2월 25일 부산에서 열린 ‘동남권 메가시티 구축 전략 보고’에 참석, 어업지도선을 타고 가덕도 공항 예정지를 시찰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의 속도조절 지시에도 불구하고 여당 강경파 의원들이 중대범죄수사청 설치를 강행하고, 국토교통부 등이 정권 핵심 정책인 가덕도신공항특별법에 반대입장을 밝히면서 대통령 레임덕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문 대통령(사진 왼쪽 두 번째)이 2월 25일 부산에서 열린 ‘동남권 메가시티 구축 전략 보고’에 참석, 어업지도선을 타고 가덕도 공항 예정지를 시찰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권 말 ‘레임덕’은 5년 단임 대통령제의 숙명처럼 다가왔다. 역대 대통령 중 임기 말을 ‘무사히’ 보낸 이는 없다. 중도에 하야하거나 부하의 총탄에 쓰러졌고 퇴임 뒤 감옥에 갔다. 측근과 가족 비리 등으로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떼밀리듯 소속 정당을 탈당해야 했다.

레임덕은 임기 말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서 시작된다. 보통 40%대에서 30%대로 떨어질 때 레임덕 신호로 본다. 20%대로 가면 완연한 레임덕 징후로 여겨진다. 10%대면 정상적 국정 운영이 불가능할 정도다. 노태우·김영삼·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이 그랬다. 지지율 20%대로 떨어지면 공무원들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거나 정권 핵심부의 정책에 브레이크를 거는 일이 발생한다. 정권 끝난 다음 뒤탈이 겁나기 때문이다. 10%대로 추락하면 여당부터 공공연하게 대통령 지시를 거부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노골적으로 대통령에게 탈당을 요구한다. 그래서 1987년 민주화 운동 이후 이명박 전 대통령을 제외한 다른 모든 대통령이 여당을 탈당한 것도 그래서다.

최근 여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몇 건의 사례를 두고 레임덕 논란이 일고 있다. 우선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단행한 검찰 고위 간부 인사 논의 과정에서 배제된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의 사표 제출과 복귀 과정에서 역대 정권에서 좀체 보기 어려운 일이 일어났다. 임명된 지 두 달도 안 된 민정수석이 사표를 낸 사실이 언론에 거의 실시간으로 알려진 것부터 그렇다.

“대통령 참모가 사표 반려 불구하고 또 사표 낸 건 항명”

신 수석과 지인 간 주고받은 대화 내용이 언론에 노출된 것도 마찬가지다. 더욱이 문 대통령이 사표를 반려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사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항명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대통령 리더십에 상당한 타격을 줄 수 있다. 보기에 따라선 레임덕 징후로 받아들여진다. 청와대 참모 출신의 한 민주당 의원은 “참모가 대통령이 사표를 반려했는데도 다시 사표를 제출하고 휴가를 간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박 장관이 검찰 인사안을 휴일인 일요일에 전격 발표하고 다음 날 대통령의 재가를 받은 것도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구두로 먼저 보고했다고는 하지만 ‘신현수 패싱’에 이어 ‘대통령 패싱’이란 말이 나올 만하다.

신 수석을 잘 아는 전직 민정수석은 “이 문제의 발단이 박 장관의 민정수석 ‘패싱’이라면 대통령이 박 장관을 불러 따끔하게 질책하고 신 수석의 체면을 살려 줬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신 수석 사퇴 문제를 청와대가 미숙하게 대응하는 바람에 대통령 리더십을 크게 손상시켰다. 대통령과 참모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했다.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치 문제를 두고선 여당 일부 의원들이 문 대통령의 속도 조절론에도 불구하고 추진 강행 의사를 굽히지 않으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여당 의원들이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권력의 추가 청와대에서 여당으로 넘어가는 것 아니냐는 얘기마저 나온다.

여당 일부 의원들은 검찰의 수사권을 폐지하는 내용의 중수청 설치 입법을 속전속결로 밀어붙이고 있다.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21명은 2월 8일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민주당은 6월까지 이 법안을 처리할 방침이다. 중수청 법안의 핵심은 ‘검찰 수사권 무력화’다. 올해부터 검찰의 일반 수사는 국가수사본부로, 고위공직자 비리 수사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로 넘어갔다. 검찰에는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산업·대형참사 등 6대 범죄 수사만 남았는데 이마저도 중수청으로 넘기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검찰은 수사권 없이 기소와 공소 유지만 담당하는 기관으로 전락한다.

문제는 중수청이 설치되면 수사 기관 간 ‘견제와 균형’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다. 부실 수사 우려도 제기된다. 특히 검찰 수사를 받고 있거나 재판에 넘겨진 여권 의원들이 입법을 주도하고 있어 그 의도에 대해 의문이 제기된다. 황 의원만 하더라도 울산경찰청장 시절 시장 선거 개입 의혹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보복’ 차원에서 검찰 힘 빼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문 대통령은 공수처와 검·경 수사권 조정이 안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중수청 설치는 성급하다는 우려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2월 24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검찰 수사권 박탈과 관련, “박 장관이 임명장을 받으러 온 날 대통령께서 속도 조절을 당부했다”고 했다. 유 실장은 이후 “속도 조절이라는 워딩은 없었다”고 수습에 나섰지만 청와대 참모 출신 여당 의원은 “그런(속도 조절) 워딩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대통령의 의중은 속도 조절”이라고 했다.

하지만 중수청 설치를 추진하는 여당 의원들은 오히려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황 의원은 “검찰이 수사권을 갖는 한 검찰 개혁은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다”고 말했다. 정청래 민주당 의원은 청와대발 속도 조절론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는 1년 남았고 21대 국회 임기는 1년 됐다”며 “국회가 해야 할 일을 뚜벅뚜벅 해야 된다. 마무리하는 청와대와 새롭게 일을 시작하는 국회의 방침은 다를 수 있다”고 했다. 듣기에 따라선 임기 1년여밖에 남지 않은 대통령을 ‘패싱’해도 된다는 것으로 읽힐 수 있다.

임기 1년밖에 남지 않은 대통령 ‘패싱’해도 된다?

가덕도신공항특별법 문제를 두고선 기획재정부·법무부·국토교통부가 일제히 적법성에 문제가 있다며 부정적 의견을 냈다. 대통령까지 나서 정권 차원에서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정책에 부처가 반대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국토부는 당초 7조원대로 알려진 가덕도 건설 소요 추정 예산이 네 배가 넘는 28조6000억원이 될 것이라고 한 것은 가덕도 신공항 타당성에 치명타를 안긴 것이다. 특히 절차상 문제가 있는 데도 특별법에 반대하지 않는다면 형법상 직무 유기에 해당할 수 있다며 반대한 것이 주목된다. 역대 정부에서 주요 국정 과제로 추진했다가 공무원이 구속되는 일이 있었던 것을 반면교사로 삼겠다는 것이다.

현 정부에서도 탈원전 정책과 관련, 공무원들이 구속된 일을 본 마당이다. 아무리 정권 말이라고 하지만 관료 사회가 이렇게 대놓고 정권에 반기를 든 것은 이전 정권에서도 좀체 보기 드문 현상이다. 여권 쪽에선 보신주의라고 할 수 있지만 공무원이 책임질 일은 하지 않겠다는 것은 전형적인 임기 말 레임덕 현상이다.

이런 혼란 현상이 벌어지는데 대해 대통령이 여당 강경파 의원들에게 휘둘리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이 강경 586(1960년대생·80년대 학번·50대)에 얹혀 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586들이 친노 폐족 세력을 부활시켜야 하는데 내세울 카드가 없으니 정치하기 싫다는 문 대통령을 억지로 끌어다 시킨 것 아닌가”라고 했다. 대통령 뒤에서 정권을 움직이는 실질적 세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일례로 법무부·행정안전부·중소벤처기업부·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국회 법사위원장까지 배출한 ‘민주주의 4.0’을 지목했다. 이들이 ‘친문 하나회’로 검찰 개혁 등 이슈를 주도한다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사태가 레임덕으로 볼 수 있느냐를 두고 시각차가 뚜렷하다. 홍준표 무소속 의원은 “단임제 대통령이 레임덕이 없을 수 있겠느냐”며 “이제 그만 억지 부리고 하산 준비나 하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익명을 요구한 여론 조사 전문가는 “대통령 지지율이 40%대 안팎을 보이고 있어 레임덕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비록 일각이지만 여당 의원들이 대통령 의중에 반해 마이웨이식의 행동을 보이고 관료 사회가 복지부동을 넘어 아예 정권 핵심 정책에 대해 대놓고 반기를 든 것은 지지율과 관계없이 나타나는 레임덕의 전형적 징후”라고 분석했다.

관건은 4월 재·보선이다. 여당 내에서도 여당이 패배한다면 대통령 지지율 하락과 본격 레임덕 국면에 들어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2월 25일 ‘선거 운동’이라는 야당의 거센 비판에도 불구하고 가덕도를 방문한 것도 그만큼 다급하다는 방증으로 볼 수 있다.

홍영식 대기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