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250만원 이상 수익 시 20% 과세...하지만 금융 상품으로 인정 안 해

[비즈니스 포커스]
서울 강남구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 라운지 시세 전광판에 비트코인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연합뉴스
서울 강남구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 라운지 시세 전광판에 비트코인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연합뉴스
“가상화폐에 대한 과세는 당연히 시행해야 한다. 하지만 가상화폐 투자자들도 세금을 내는 만큼 그에 합당한 권리를 보장 받아야 한다.”

가상화폐 투자자들 사이에서 주식과의 과세 차별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가상화폐 투자자들은 내년부터 연 250만원이 넘는 수익을 올리면 20%의 세율로 세금을 내야 한다.

만약 1년간 비트코인 거래로 총 1000만원을 벌었다면 250만원을 제외한 750만원의 20%인 150만원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는 의미다. 가상화폐를 자녀에게 물려준다면 상속세율은 최고 50%다.

가상화폐는 기본 공제액이 250만원에 그치는 반면 주식 등 금융 투자 소득은 2023년부터 5000만원까지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이를 두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비트코인과 주식에 대한 과세 차별을 하지 말라’는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투자자들이 이렇게 반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2017년 말~2018년 초 비트코인을 필두로 한 가상화폐 투자 광풍이 불자 정부는 부랴부랴 대응책을 들고나왔다. 하지만 분명하지 않은 메시지와 부처마다 엇갈린 방침으로 여론의 비판을 받았다.

박상기 당시 법무부 장관은 2018년 1월 11일 신년 기자 간담회에서 “가상화폐가 아닌 가상증표”, “아무 가치 없는 돌덩어리”라며 가상화폐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분명하게 내비쳤다. 그러면서 가상화폐 거래소 전면 폐지 특별법을 만들겠다며 극약 처방을 들고나왔다.

하지만 여론의 반발이 거세자 청와대는 박 전 장관의 방침은 정부의 공식 방침이 아니라며 한 발 물러섰다.

당시 전 세계 가상화폐 거래에서 한국은 20% 이상을 차지하는 시장이었다. 한국 투자자들이 흔들리자 전 세계 암호화폐 시장도 요동쳤다. 미국과 중국의 규제 이슈가 더해지자 2018년 12월 비트코인 가격은 380만원대까지 추락했다. 2020년 초에도 830만원 선에 거래되던 비트코인은 지난해 말부터 다시 솟구쳤다.

지난해 11월 다시 2000만원대에 올라섰고 올해 들어서는 더 급격한 오름세를 보였다. 지난 1월 3일 3600만원을 찍더니 2월 초 테슬라가 비트코인 1조7000억원어치를 구매하고 결제 수단으로 허용한다고 하면서 5500만원(5만 달러)을 돌파했다.
'수익 과세',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가 비트코인 가격 흔들까
돈 벌면 과세 의무, 투자자 보호는 없어

하지만 여전히 정부는 암호화폐에 대한 경고를 이어 가고 있다. 통화 정책 수장인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비트코인이 실질적 가치가 없다고 일축했다.

이 총재는 2월 2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지금의 비트코인 가격은 이상 급등이 아닌가 싶다. 비트코인 가격이 왜 이렇게 높은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지적했다.

가상 자산에 대한 정의도 모호하다. 금융 당국은 가상화폐에 과세는 하되 제도권 금융 상품으로는 인정하지 않았다. 가상 자산 거래를 통해 소득이 발생하면 이를 ‘기타소득’으로 신고해야 한다.

기타소득은 근로소득이나 이자소득 등 일반적으로 발생하는 소득이 아니라 일시적·우발적으로 발생하는 소득을 통칭한다. 복권 역시 기타소득으로 분류된다. 반면 주식을 비롯한 금융 상품으로 소득이 발생하면 이를 ‘금융소득’으로 분류한다. 비트코인을 주식·펀드·채권과 같은 제도권 금융 상품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여기에 오는 3월 25일 시행되는 개정 특정금융정보법에서는 한국 가상화폐 거래소에 일반 금융권 수준의 자금 세탁 방지 의무를 부여한다.

이를 두고 가상화폐 투자자들에게 ‘의무’만 떠넘기고 금융 소비자로서의 ‘권리’나 ‘보호’는 보장하지 않는다는 아쉬운 목소리도 나온다.

가상화폐 거래소인 고팍스를 운영하는 이준행 스트리미 대표는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아직 가상 자산에 대한 정의나 가상 자산 투자자의 권익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업권법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과세를 먼저 시작했다는 점은 아쉽다”고 말했다.

주식 투자자들에 비해 세율은 높지만 가상화폐 투자자들은 ‘금융 소비자’로 분류되지 않아 주식 투자자들이 법으로 받는 최소한의 보호도 받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또한 가상 자산에 대한 산업 진흥 차원에서의 접근이 아니라 가상 자산을 여전히 ‘도박’처럼 여기는 금융 당국의 방침에 우려를 내비쳤다. 그는 “가상 자산 산업은 향후 국가의 지속적인 세원이 될 수 있는 미래 성장 동력”이라며 “가상 자산은 국경이 없어 타 국가 대비 한국의 세율이 높으면 해외 금융회사와 투자자뿐만 아니라 한국의 개인 투자자들 또한 한국을 외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가상 자산 생태계의 산업화를 위한 발판이 먼저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해외에서는 가상 자산 산업화를 위한 제도권의 움직임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글로벌 기관투자가들이 가상화폐를 투자 포트폴리오에 편입하거나 금융 당국의 제도화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곳도 있다.

미국 재무부 산하 통화감독청(OCC)은 지난해 7월 미국 은행들이 가상 자산 수탁 서비스를 허용했다. 이후 지난해 9월 암호화폐 거래소 크라켄이 와이오밍 주 최초로 특수목적예금취급금융기관(SPDI) 자격을 취득하며 미국 첫 정부 인증 가상 자산 은행이 됐다.

올 초에는 OCC가 은행의 스테이블 코인(달러 가치와 연계된 가상화폐) 결제와 송금을 전격 허용했다.

세계 최대 자산 운용사인 블랙록이 비트코인 시장 진입을 공식화하고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인 뉴욕멜론은행이 비트코인을 비롯한 디지털 가상 자산을 수탁 자산으로 취급하기로 선언한 것 또한 가상 자산의 지위 변화를 보여준다.

미국 최초로 증권 시장에 상장을 준비 중인 암호화폐 거래소도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는 올해 나스닥 상장 준비를 마쳤다. 캐나다 금융 당국은 북미 최초로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 출시를 승인했다.

비트코인 가격, CBDC 영향 받을까


해외에서도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미 재무부가 암호화폐에 대한 투자 과열을 우려하는 속내를 내비치기도 했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CNBC와의 인터뷰에서 “비트코인은 투기적 자산이며 변동성이 극도로 높다”며 “투자자들이 겪을 수 있는 잠재적 손실을 우려한다”고 밝혔다.

옐런 장관은 규제에 대한 질문엔 투자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경제 수장의 경고는 곧 미국 가상 자산 시장에 대한 규제로 이어질 수 있다. 만약 비트코인의 영향력이 ‘달러 패권’을 위협할 정도로 커지면 미 재무부가 경고에 그치지 않고 직접 개입하는 카드를 꺼내 들 수도 있다.

각국 금융 당국이 비트코인을 불신하는 핵심 요인은 극심한 변동성이다. 최근 한국의 거래 시장에서는 하루 새 비트코인 가격이 800만원 넘게 오르내린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와 전문가들은 기축 화폐를 보유한 국가들이 조직적으로나 전면적으로 암호화폐를 금지하지 않는 이상 2018년때 대폭락장 같은 투자자들의 동요는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암호화폐에 대한 규제 이야기가 나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공필 한국금융연구원 미래금융연구센터장은 “가상화폐는 가격 변동성이 크다는 약점이 있지만 예전 수준으로 완전히 되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라며 “암호화폐가 통용될 수 있는 시장 자체가 커졌고 법정 화폐의 지원 없이도 최소한의 기반을 유지할 수 있는 시장이 됐다. 중앙은행 통화 정책의 영향은 받겠지만 예전처럼 크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각국의 중앙은행은 세계 금융 질서의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CBDC) 발행을 서두르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세계 모든 중앙은행의 80%가 도입을 전제로 디지털 통화를 연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옐런 장관은 “디지털 통화는 중앙은행이 살펴보는 게 이치에 맞다”며 디지털 달러 도입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CBDC는 비트코인과 마찬가지로 암호화폐의 핵심인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다. 하지만 민간이 발행하는 비트코인과 달리 CBDC는 중앙은행이 발행하고 정부가 가치를 보증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하지만 각국 중앙은행은 민간에서 내놓는 가상화폐를 눈엣가시처럼 여기고 있어 CBDC 도입 이후 민간 가상화폐에 대한 전망도 엇갈린다. 비트코인 등 기존 암호화폐의 투기 수요만 남는다는 견해가 있는 반면 CBDC와 가상화폐가 상호 보완 관계를 이룰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비트코인 비관론자로 유명한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CBDC가 발행되면 그 즉시 확장성 없고 저렴하지도 않고 안전하지도 않은 암호화폐를 대체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를 애초에 결제 수단이나 화폐 성격으로 기대하고 투자한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CBDC의 영향력이 작을 것이라는 의견도 존재한다. 그동안 민간 암호화폐는 투자 자산으로서의 성격이 컸기 때문이다.

최 센터장은 “시스템 내에서 통용되는 CBDC가 생긴다고 해서 탈중앙화를 기반으로 하는 민간 중심의 가상 자산이 사라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두 세상이 상호 보완하면서 서로 공존하며 발전해 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