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통신
최근 청와대 인사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대변인의 ‘바통 터치’다. 현 정부 출범 때부터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의 ‘입’ 역할을 해 온 김은혜 전 대변인이 약 2년 반 만에 그만뒀다. 대신 김희정 전 한나라당 의원이 그 자리를 꿰찼다. 두 사람은 공통점이 많다. 우선 동갑내기 여성이라는 점이다. 둘 다 1971년생으로 만 39세다. 김은혜 전 대변인이 청와대에 들어왔을 때 당시 비서관(1급) 중에서 가장 젊었다.김희정 대변인 역시 현재 청와대 비서관급 이상 중에 나이가 가장 젊다. 둘 다 세대교체의 상징으로 꼽힌다. 똑 부러지는 성격에 친화력과 언변이 뛰어난 것도 판박이다.
두 사람은 ‘최연소’와 함께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닌다. 김희정 대변인은 2004년 총선 때 33세의 나이로 부산 연제구에서 금배지를 달았다. 17대 국회 최연소로 입성한 것이다.
그는 부산에서 태어나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95년 신한국당 사무처 공채로 정치권에 발을 디뎠다. 운이 맞아떨어졌을까. 17대 국회 공천 과정에서 한나라당은 여러 가지 변신을 시도했다. 당시 ‘차떼기 정당’이라는 오명으로 나락에 떨어지고 있어 대대적인 혁신의 목소리가 당 안팎에서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특히 노인당이라는 이미지를 벗기 위해 젊고 신선한 신세대를 찾았다. 당 내에서 김 대변인이 대표 주자로 꼽혔다. 그는 공천 개혁을 위해 도입한 공개 면접에서 쟁쟁한 현역 의원을 제쳐 파란을 일으켰다. 정치판에 명함도 제대로 내밀지 못했던 30대 초반의 신예가 워낙 똑 부러지고 야무지게 답변해 당 내에서 상당한 화제가 됐을 정도다.
그는 17대 국회의원 시절 4년간 줄곧 과학기술정보통신위에서 활동했다. 국정감사에서 처음으로 동영상과 파워포인트 등을 활용, 질의해 주목을 받았다. 휴대전화 불법 복제를 시연해 관심의 초점이 되기도 했다.
시민 단체가 선정한 국정감사 우수 의원에 4년 연속 선정됐다. 2004년 한나라당 디지털위원장을 맡아 꼴찌를 면치 못했던 인터넷 정당 순위를 1위로 끌어올렸다.
‘최연소’ ‘최초’ 수식어 달고 다녀
그는 2005년 의원직에 있으면서 결혼한 첫 여성 국회의원으로 화제를 뿌렸다. 남편은 평범한 대기업 회사원. 의원이 되기 전 부모님 친구의 소개로 사귀다 국회 의원동산에서 백년가약을 맺었다.
그는 지난 대선 때 이명박 후보 캠프에서 ‘2030 기획팀장’을 맡아 젊은 층 공략에 앞장섰다. 그렇지만 2008년 4월 총선 땐 친박 돌풍이 몰아치면서 친박연대 후보에게 패했다.
지난해 6월 한국인터넷진흥원 초대 원장에 임명돼 역시 정부 산하 최연소 여성 기관장이란 기록을 세웠다. 이번 청와대 입성도 정치권 입문 때와 상황이 비슷하다. 세대교체, 변화의 흐름을 탄 것이다.
김은혜 전 대변인에게도 ‘첫 여성…’이란 수식어가 뒤따른다. 방송사 첫 국회 담당 여기자, 첫 여기자 출신 앵커다. 그는 여성 앵커로는 처음으로 저녁 뉴스를 단독 진행하기도 했다. 2000년부터 2년 연속 ‘대학생들이 닮고 싶은 여성’에 선정되기도 했다.
1993년 MBC에 입사했으며 사회부, 정치부 기자로 활동했다. 다수의 특종을 낚았는데 뉴스에 대한 동물적인 감각이 남다르다는 게 당시 함께 일했던 동료 기자들의 한결같은 평이다. 미모의 앵커 출신이어서 대하기가 다소 어렵지 않겠느냐는 선입견을 가질 수 있지만 실제 성격은 털털하다. 출입 기자들과 ‘소폭(소주 폭탄)’ 자리도 자주 가졌다.
그는 지난 2년 반 동안 청와대 대변인으로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출입 기자들의 전화 취재 공세에 시달렸다. 토요일과 일요일도 없다. 일요일 아침 두 살배기 아들에게 잠시나마 모처럼 엄마 역할을 하는 순간에도 기자들의 전화는 멈추지 않았다.
수화기를 타고 들려오는 애기 울음소리를 들어가면서 취재해야 하는 기자들의 마음은 미안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다 외신 대변인 역할까지 하면서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는 시간을 보냈지만 일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다.
이 대통령의 신임도 각별했다. 그는 “대통령의 목소리로 숨 가쁘게 달려온 지난 2년 반은 제 인생에 다시 못 올 큰 영광이자 보람이었다”고 사퇴의 변을 남겼다.
요약하자면 두 전·현직 청와대 여성 대변인의 사회 경험은 그리 길지 않지만 30대에 나름대로 입지를 쌓았다. 소속 집단의 ‘변화의 기수’라는 상징성을 가진 그들이 대한민국 사회의 변화를 위해 어떻게 기여할지 주목된다.
홍영식 한국경제 정치부 기자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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