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흥렬 베이징 CNR홈쇼핑 TV 사장 현지 취재

‘퍄오싱례(朴興烈).’ 중국 홈쇼핑 업계에서 선진적 홈쇼핑 개국 전문가로 통하는 한국인 ‘박흥렬’ 씨의 또 다른 이름이다. 한국인이라는 핸디캡을 딛고 대만에서 6년, 중국에서 4년째 홈쇼핑 TV 분야의 전문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현지 TV 홈쇼핑 업계의 ‘러브콜’을 받았던 그가 지난 6월 17일 중국 베이징에서 또 하나의 TV 홈쇼핑 채널을 개국하며 출사표를 던졌다.
[Special Report] ‘춘추전국’ 중국 홈쇼핑 정벌 나선 ‘미다스 손’
“현재 중국의 홈쇼핑 시장은 한마디로 ‘춘추전국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 세계 홈쇼핑 업계를 보면 연평균 20%의 꾸준한 성장률을 보이고 있는데, 중국 역시 급성장해 지난해에는 전체 홈쇼핑 매출이 234억 위안(약 4조6000만 원)에 달했습니다.

땅이 넓은 만큼 발전 가능성도 큰 셈이죠. 그런데 문제는 우후죽순 생겨난 업체 가운데 정부의 채널 운용 허가, 즉 라이선스가 없는 업체가 수두룩하다는 사실이에요. 라이선스가 없는 업체가 훨씬 더 많은 실정입니다.

CNR홈쇼핑 TV는 중국의 국영 라디오 방송(CNR: 중앙인민광파전대)이 뉴미디어 사업의 일환으로 개국한 홈쇼핑 TV입니다. 신뢰를 바탕으로 중국 TV 홈쇼핑의 제대로 된 표준을 정립할 계획입니다.”

한국을 떠난 지 10여 년. 당시 39쇼핑(CJ오쇼핑의 전신)의 PD 겸 쇼 호스트였던 박흥렬(43) 씨의 변신은 시쳇말로 ‘신문에 날’ 일이다. 2000년 당시 홈쇼핑 태동기를 맞았던 대만에 홈쇼핑 컨설턴트로 파견 근무를 나갔다가 현지 기업의 러브콜을 받고 ‘운명’이 바뀌었다.

대만 둥썬(東森)그룹에서 5개의 홈쇼핑 채널을 개국한 후 중국으로 적을 옮긴 지 4년째. 컨설턴트로 활동하며 개국한 2개의 홈쇼핑 TV를 포함, 현재까지 중국에서 탄생시킨 홈쇼핑 TV가 4개에 달한다.

한국 39쇼핑서 근무하다 해외로
[Special Report] ‘춘추전국’ 중국 홈쇼핑 정벌 나선 ‘미다스 손’
“10년 전에 한국 39쇼핑에서 PD로 근무했어요. 우연히 돗자리 방송 예고편에 직접 출연했는데, 그게 계기가 돼 쇼 호스트를 겸하게 됐어요. 쇼 호스트로 일할 때 가전제품의 매출을 많이 올렸죠.

그러다 다시 PD로 컴백했는데, 뭐랄까 발상이 좀 유별난 편이었어요. 한여름에 부산 해운대 바닷가에서 모피를 팔기도 했으니까요.(웃음)

애초에 드라마 PD여서 그랬는지 홈쇼핑 방송에 쇼의 형식을 많이 접목했는데, 시도하는 것마다 운 좋게도 대박이 났어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제 자신을 채우지 못하고 소진만 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00년 즈음 유학을 준비 중이던 차에 대만 홈쇼핑 컨설팅 파견 근무 제안이 들어왔죠.”

1990년대 후반이었던 당시 한국 메이저 TV 홈쇼핑의 하루 매출(주문 접수 기준)은 15억 원 정도. 하지만 박 PD의 ‘유별난’ 기획은 짜릿한 안타를 많이 날렸다.

제조 공장에서 쇼를 하며 판매한 컴퓨터는 하루 매출 12억 원을 기록했는가 하면 여름에 기획한 모피 코트 방송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6억 원의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회사와 사람들의 기대가 커질수록 그의 마음 한구석은 부담으로 옥죄어 왔다. 퍼내기만 하고 채우지 못하는 빠듯한 일상에서 ‘이탈’하고 싶은 욕구가 스멀스멀 생겨날 때, 마침 대만으로의 홈쇼핑 컨설팅 파견 근무 제의를 받았다.

회사 대(對) 회사로 이뤄진 컨설팅 계약이 끝날 즈음, TV 채널만 10여 개에 달하는 대만 최대의 미디어 그룹인 ‘둥썬그룹’이 그를 찾았다. 홈쇼핑 TV ‘개국공신’으로 본격 데뷔하게 된 계기다. 이후 5년간 그의 프로페셔널 라이프는 한마디로 ‘고속도로’였다.

둥썬그룹에 적을 둔 5년간 5개의 홈쇼핑 TV를 개국하면서 업무최고책임자(COO)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언어 장벽을 극복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음은 물론이다.

“대만 최초로 라이브 홈쇼핑 방송을 시도했어요. 나중엔 5개 채널의 직원만도 3300여 명에 이를 정도로 성장했죠. COO까지 승진해 나름대로 자리를 잡았지만, 외국인으로서의 한계에 부닥쳤어요.

5년쯤 지나고 홈쇼핑 시스템이 자리를 잡게 되자 대만 사람들이 제 말을 듣지 않으려고 하더군요.(웃음) 자기네들도 충분히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 거죠.

회사가 커질수록 각 개인의 욕심도 많아지면서 갈등이 생겼죠. 첫 5년 계약이 끝나고 5년 계약 연장을 한 뒤 바로 두 달 뒤 사표를 쓰고 나왔죠.”

사표를 던질 때 그는 별다른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워커홀릭으로 살며 신혼여행도 가지 못한 터라 그저 유럽에서 아내와 함께 쉬고 싶을 뿐이었다고. 하지만 그가 둥썬그룹을 떠났다는 소문은 일파만파 퍼졌고 결국 유럽에 머무르던 2주간 중국 사람들과 수도 없이 통화해야만 했다.

개국만 하면 대박이 나는 홈쇼핑 업계 ‘미다스 손’의 소문을 들은 중국 기업들이 앞 다퉈 러브콜을 날렸던 것. 결국 ‘무계획’은 다음 ‘무대’를 위한 적당한 쉼표가 되어 주었고, 2005년 그는 중국 상하이행 비행기를 탔다.

‘한국형’ 마케팅으로 시청자 사로잡아
[Special Report] ‘춘추전국’ 중국 홈쇼핑 정벌 나선 ‘미다스 손’
2005년 첫 닻을 내린 곳은 중부내륙지방의 후난성 지역. ‘사고’ 치기 좋아하는 박 사장이 중국이라고 다를 리 없었다. ‘해피홈쇼핑(쾌락구물)’이라는 TV 홈쇼핑 채널을 개국함과 동시에 중국 TV 홈쇼핑 최초로 생방송에 도전한다.

공산주의 체제 하에서 생방송은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이전 홈쇼핑은 모두 녹화방송, 또는 인포머셜 형태였던 것. 계약서에 서명하자마자 사업계획서 작성에 착수했고, 결국 깐깐한 중국국가개발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새로운 ‘다크호스’를 개국했다.

박 사장이 지난 6월 17일 개국한 CNR홈쇼핑 TV로 자리를 옮긴 것은 올 3월. 이번에는 ‘대어급’ 회사의 러브콜이었다. 70년의 역사와 7억 명에 이르는 청취자를 확보, 중국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국영 라디오 방송인 CNR의 스카우트 제의였던 것.

그가 사장으로 부임한 CNR홈쇼핑은 전국 방송 채널 3개, 베이징 지역 방송 채널 4개, 디지털 TV 채널 1개를 보유한 CNR의 자회사로, 난립하고 있는 중국 홈쇼핑 시장에 제대로 된 ‘표준’을 제시함과 동시에 거물급 홈쇼핑 채널을 육성하려는 전략 아래 탄생한 TV 홈쇼핑이다.

CNR홈쇼핑 둥톄밍(董鐵明) 회장은 “미국과 일본 등 홈쇼핑이 발전한 나라들이 있지만 중국에서는 한국 홈쇼핑 스타일을 가장 이상적으로 보고 있다. 트렌드에 빠르고, 소비자에게 상품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해 믿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면서 “박흥렬 사장은 한국인이지만 홈쇼핑 분야에 대한 풍부한 경험과 전문성, 추구하는 마케팅의 방향이 CNR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아 영입하게 됐다”고 말했다.

박 사장은 CNR홈쇼핑에서도 ‘라이브 방송’의 철칙을 고수했다. 25~45세의 화이트칼라 전문직 여성과 주부가 메인 타깃인 CNR홈쇼핑은 현지화를 강조하면서도 철저하게 한국 스타일의 홈쇼핑을 지향한다.

개국 첫날부터 하루 6시간씩 생방송으로 진행하고 있다. 국영방송국인 본사의 거듭된 우려 속에서도 그는 초지일관 최고경영자(CEO)로서의 철학을 고수했다.

“녹화와 생방송은 매출 차이가 3배에 달합니다. 쇼 호스트 교육부터 일일이 챙겼습니다. 절대 오버하지 말고 정확한 정보를 소비자에게 정직하게 전달한다는 원칙이 제일 중요하죠. 그래서인지 첫날 방송 때 과감하게 벤츠자동차를 팔았는데 주문이 50대나 들어왔더라고요.”(웃음)

CNR홈쇼핑은 종전 케이블 TV가 아닌 디지털 방송으로, 전국 방송 라이선스를 가진 채널이다. 현재 가시청 가구 수는 450만 명 정도. 베이징과 톈진을 시작으로 올해 말까지 상하이·후난성·장쑤성까지 송출 지역을 확대할 예정이다.

한국에서 케이블 TV 가시청 가구 수 1000만을 기점으로 홈쇼핑 TV 매출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던 사실을 상기해 본다면 CNR홈쇼핑이 디지털 TV 가입자 수 증가에 따라 ‘순풍’을 탈 것을 예상할 수 있다(중국 정부는 현재 2015년 완료를 목표로 TV 송출 방식을 디지털로 전환하고 있는 중이다).

“제휴 신용카드·최초 식품 판매에 도전”

‘무림 정벌’의 칼을 들어 올린 박 사장의 전략과 전술이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곧, 그가 지난 10여 년간 대만과 중국에서 쌓은 성공의 ‘열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한 2010년 TV 홈쇼핑 전체 매출 300억 위안(약 5조4000억 원)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그가 수장으로 나선 새로운 ‘다크호스’의 등장은 화제를 모으기에 충분하다.

“고객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을 고수할 겁니다. 특히 유행을 중시하는 고소득층 여성을 메인 타깃으로 하는 만큼 고품질, 고가 전략과 함께 첨단 콜센터 시스템으로 CNR와 한번 인연을 맺은 고객은 전담 상담원이 관리하게 하고 있습니다.

또한 ‘1일 배송’과 함께 중국 내 최초로 ‘3일 내 환불제도’를 실시하고 있어요. 신용카드 사용을 꺼리는 중국인들은 COD(Cash On Delivery)를 사용하기 때문에 환불받으려면 3주까지 걸리기도 하거든요.

또한 국토가 넓어 홈쇼핑 발전의 고질적인 문제로 남아있는 물류 시스템 개선을 위해 물류 회사와의 조인트벤처도 고려하고 있는 중이에요.

중요한 전략 가운데 하나는 품질 좋은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 소싱을 적극적으로 확대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중국 내 상품 소싱센터 건립 또는 한국에서의 기업 박람회 개최 등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 중국에서 현재까지 식품을 홈쇼핑에서 판매한 전례가 없는데, 신선한 해산물의 현지 직송, 반가공 식품 판매도 시도할 계획입니다.”

이 밖에 그는 현재 은행과 CNR홈쇼핑 제휴카드 출시도 추진 중이다. 베이징과 톈진 지역의 올 총매출 목표는 1억 위안(약 180억 원). 화베이와 둥베이 지역으로 송출 지역을 확장할 내년도 목표액은 5억 위안(약 900억 원), 2012년 목표액은 중국 전 지역 송출을 통해 매출액 10억 위안(약 1800억 원)으로 설정해 놓은 그는 CNR홈쇼핑에서 가장 일찍 나와 가장 늦게 퇴근하는 ‘지독한’ 워커홀릭이다.

느긋하게 출근해 유난히 긴 점심시간을 보내고 일찍 퇴근하는 중국인들의 직장 생활을 감안하면 그는 직원들에게는 피곤한(?) 사장이기도 할 터다.

“지금은 직원들이 많이 바뀌어 어느 정도 적응한 것 같아요.(웃음) 권위를 내세우기보다 점심때 국수 한 그릇을 함께 나누는 편안한 사장이 되려고 해요.

실제로 한 PD는 제 휴대전화에 월급이 적어서 생활이 어렵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기도 할 정도예요. 많이 벌어서 직원들의 월급을 많이 올려 주려면 제가 더 열심히 일해야죠.”

중국 홈쇼핑의 무림 정벌 이후 그가 바라볼 곳은 유럽이다. 유럽에서 또 한 차례 ‘대박’을 터뜨린다면 홈쇼핑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HSN, QVC에 도전장을 내고 싶다고. 홈쇼핑 전문가로 ‘끝’을 보고 난 다음에야 배를 바꿔 탈 작정이다. 애초에 방송국 PD가 될 때부터 작정했던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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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보기CNR홈쇼핑은…

25∼45세의 화이트칼라 여성 타깃
[Special Report] ‘춘추전국’ 중국 홈쇼핑 정벌 나선 ‘미다스 손’
중국 홈쇼핑이 태동한 것은 1992년. 사전 제작을 통해 장시간 광고 방송식으로 제품을 판매하는 인포머셜(Informercial)로 출발했다.

이후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홈쇼핑(중국에서 ‘홈쇼핑’은 인포머셜 방송, TV 홈쇼핑, 인터넷 쇼핑몰 등을 모두 포함한다)이 고점(高點)을 찍은 것은 1998년이다.

260여 개의 업체가 총매출 26억 위안을 기록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법규 없이 성장한 홈쇼핑은 ‘독버섯’의 자양분이 되기도 한다.

‘사기’에 가까운 키 성장제, 다이어트 상품 등을 판매한 뒤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유령 업체들이 속출함에 따라 2000년도부터 중국의 광전총국(한국의 문화체육관광부 격)이 나서서 홈쇼핑 업체 허가 조건을 까다롭게 조정, ‘교통정리’에 나섰다.

한국 기업으로는 현대홈쇼핑이 2003년 처음 중국에 진출했고, 다음해 CJ홈쇼핑(CJ오쇼핑의 전신)이 ‘둥펑(東方)CJ홈쇼핑’이란 합자회사로 론칭, 현재는 ‘둥펑홈쇼핑’이 자체적으로 영업을 하고 있는 상태다.
[Special Report] ‘춘추전국’ 중국 홈쇼핑 정벌 나선 ‘미다스 손’
CNR홈쇼핑은 7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중국인민라디오(CNR : China National Radio)의 자회사인 양광행복구물유한공사(CNR홈쇼핑 주식회사)가 지난 6월 17일 베이징에서 개국한 TV 홈쇼핑 채널이다.

25~45세의 화이트칼라 여성을 메인 타깃으로 고품질 전략, 1일 내 배송, 3일 내 환불, 전담 상담원 등 한국 TV 홈쇼핑의 선진적인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하고 있다. 24시간 방송 시간 중 저녁 6~12시까지 6시간은 생방송으로 진행하고 있다(나머지 시간은 재방송).

CNR홈쇼핑 둥톄밍 회장은 마케팅 방향에 대해 “이성적이고도 정확한 상품 정보와 엄격한 품질관리를 기본으로 홈쇼핑 채널의 기준을 만듦과 동시에 한국의 질 좋은 상품의 적극적인 소싱을 계획 중”이라고 설명하면서 “중국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은 한국 드라마에서 한류 스타들이 착용한 액세서리 등 한국 한류 스타 마케팅도 고려 중”이라고 덧붙였다.

본사인 CNR 왕샤오후이(王曉暉) 신매체 부국장은 “BBC, ABC 등도 라디오를 시작으로 TV로 넘어간 케이스다. 시장의 성장 가능성과 채널의 부가가치를 고려할 때 TV 홈쇼핑 채널은 시대적 트렌드에 가장 부합하는 것”이라며 신매체 사업의 일환으로 개국한 CNR홈쇼핑에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CNR TV홈쇼핑(http://cnrmall.com)


약력 : 중부대 대학원 공연예술 석사. KBS 드라마제작국 전문 조연출. MBC 드라마넷 PD. CJ홈쇼핑 PD. 대만 둥썬(東森)홈쇼핑 COO. 중국 CNR홈쇼핑 TV CEO(현).


베이징(중국)= 장헌주 기자 chj@hankyung.com / 사진= 김기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