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봉준 대륙제관 사장

[성공하는 사람들의 습관] “50년 장수 기업 비밀은 신뢰입니다”
“아무도 회사를 그만두는 일은 없을 겁니다. 우리는 국제통화기금(IMF) 위기도 함께 극복해 온 가족들입니다. 우리 직원들은 내가 보지 않을 때도 항상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열심히 일하다가 생긴 문제에 격려를 해야지 채찍을 드는 일은 잘못된 겁니다. 모든 책임은 사장인 제가 지겠습니다.”

지난 2006년 대륙제관의 부탄가스 생산시설 대부분이 모여 있는 아산 공장에 불이 났다. 당시 화재로 200억 원의 피해를 봤다. 공장은 거의 올 스톱 상태였다.

많은 직원들은 회사의 미래와 자신의 앞날을 걱정했다. 제조업체의 공장 문이 닫혔다면 그 회사의 앞길에는 내리막이 있을 뿐이다. 특히 대륙제관처럼 B2B 사업이 매출액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기업이라면 더 그렇다. 대기업들이 거래처를 바꾸면 그것으로 그만이기 때문이다.

상장 이후 17년 연속 흑자 이뤄

사실 실적이 곤두박질치면, 아니 대륙제관처럼 아예 한 해 장사가 불투명해질 만큼 어려워지면 대부분의 리더들은 직원을 줄이려는 유혹에 빠진다. 잘나갈 때야 회사의 ‘보배’였지만 어려운 때는 회사의 ‘고정비용’에 불과한 게 직원이다.

하지만 박봉준 대륙제관 사장은 이런 생각을 단칼에 잘랐다. 선대부터 이어온 대륙제관의 역사 속에서 신뢰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였기 때문이다. 어려운 시절을 함께 보낸 직원들과의 ‘신뢰’ 말이다.

박 사장이 모든 직원들 앞에서 “책임은 내가 진다. 모두 열심히 해서 위기를 함께 극복하자”고 말하자 몇몇 직원은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비록 눈물을 꾹 참았더라도 대부분의 직원들이 끓어오르는 무언가를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대륙제관은 불과 10개월 만에 기적처럼 생산 라인을 완전히 복구해 냈다. 박 사장은 물론 모든 직원들이 날밤을 새우고 밥 먹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이룩한 결과였다. 거래처들도 다시 찾았다.

대륙제관이 어려움을 겪자 잠시 다른 회사에서 납품을 받던 대기업들이 복구 소식을 듣자 거짓말처럼 하나둘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SK처럼 길게는 40년 넘게 이어온 회사와 회사 간의 ‘신뢰’가 그 힘이었다.

대륙제관은 그해 매출액 670억 원을 달성했다. 그리고 이 실적은 1994년 코스닥 상장 이후 현재까지 ‘17년 연속 흑자 행진’이라는 대기록의 또 다른 밑거름이 됐다. 박 사장은 “너무 어려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전화위복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구형 생산 라인이 화재로 불타 없어지면서 신형 생산 라인을 깔았고 여기에 들어간 최첨단 기기들은 현재까지도 대륙제관의 놀라운 생산성을 책임지는 원동력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직원의 11%가 연구 인력

제관(製罐)은 쉽게 말하면 ‘깡통’을 만드는 일이다. 알루미늄 혹은 주석 도금강판 등의 금속제 박판을 주재료로 윤활유·페인트·식용유 등과 같은 내용물을 충전해 담거나 포장·운반·보관할 수 있는 금속 용기를 만드는 것이다.

국내 제관 산업은 1960~70년대에 각종 수출용 식품 개발과 함께 급성장했다. 1958년 설립된 대륙제관도 이 시기에 첫발을 대디뎠다. 대륙제관은 이후 51년 동안 이어오며 명실상부한 국내 최대 제관 기업으로 거듭났다.

대륙제관이 이처럼 오랜 역사를 이어올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를 박 사장은 ‘신뢰’라고 답했다. 박 사장은 “아무리 어려워도 고객이 요구하는 품질 수준과 납기를 철저히 준수하는 게 원칙”이라며 “그 결과 고객사들로부터 두터운 믿음을 얻어 30년 이상 지속적인 거래를 유지해 오고 있다”고 말했다.

대륙제관의 주요 거래처는 SK·GS칼텍스·S-OIL 등의 국내 대형 정유 회사와 노루페인트·건설화학공업(제비표페인트) 등의 대형 페인트사, 그리고 사조·오뚜기 등의 식용유 제조회사 등이다.

현재 대륙제관의 주력 사업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윤활유관·페인트관·식용유관 등의 일반 제관 외에도 휴대용 부탄가스 등의 연료관, 살충제와 각종 생활용품 스프레이 등의 에어졸관 등으로 이뤄져 있다. 각각의 매출 분포는 일반 제관 분야가 35%, 부탄가스 36%, 에어졸관 및 기타 29%로 구성된다.

물론 기업이 단지 신뢰만으로 사업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대륙제관의 또 다른 경쟁력은 바로 기술 개발에 있다. 박 사장은 “초창기 5대 정유사가 윤활유를 넣는 방법도 모르던 때 윤활유를 공급받아 대륙제관이 직접 내용물을 주입해 정유사는 판매만 하면 되도록 완제품을 공급했다”고 말했다.

박 사장에 따르면 대륙제관은 1986년 업계 최초로 연구개발센터를 설립할 정도로 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1997년부터는 이를 기술연구소로 확대, 편성해 운영하며 200여 개의 특허를 보유하는 실적을 거뒀다.

현재 이 회사의 연구 기술 인력은 전체 임직원 수의 11%에 달한다. 박 사장은 “고객의 니즈를 발굴해 신제품을 개발하고 기존 제품을 끊임없이 개선해 고객 감동을 낳는 제품을 계속 내놓는 것만이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기업을 이어갈 수 있는 근본적인 대응책”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오랫동안 쌓아온 기술력은 위기 시에 빛을 발했다. 2006년 화재 이후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한 결과 2008년 8월 CRV(Counter Release Vent) 구조를 적용한 폭발 방지용 소형 고압 용기의 상용화를 이룬 것이다.

지난해 론칭 당시부터 소비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폭발 방지 부탄 ‘맥스부탄’이 바로 이 제품이다. 맥스부탄은 미국·영국·호주 등 전 세계 50여 개국 150여 개 업체에 1년 만에 1000만 관이 팔리며 국내는 물론 세계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이 밖에 국내 최초로 ‘18리터 각관(각진 캔)의 혁명’이라고 불리는 ‘넥트인(Neckesd-in) 캔’은 발명 특허 등록을 마친 상태다. 박 사장은 “제품 적재 시 흔들림을 방지하기 때문에 고객사의 큰 반응을 얻고 있다”며 “캔 제품을 곡선으로 처리하는 ‘셰이프드 캔(Shaped can)’ 제품도 국내 최초로 도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 사장은 이 밖에 향후 성장 가능성이 큰 에어졸 사업 분야로 투자를 늘리고 있다. 박 사장은 “용기 제작뿐만 아니라 원액 개발 능력도 갖추고 있어 경쟁력이 높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그동안 제조업자개발생산(ODM),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공급해 왔지만 최근에는 자사 브랜드 ‘홈맥스’를 론칭해 일반 소비자에게 한발 더 다가가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대륙제관은 이러한 안정적인 제품별 포트폴리오 구성으로 지속 성장하고 있다. 최근 3년간 연평균 매출은 매년 34%씩 성장했고 순이익은 매년 45%씩 늘었다. 2009년 이 회사의 매출액은 1297억 원으로 올해에는 1분기에만 340억 원의 매출 실적을 올렸다.

박 사장은 “50년 제관 인프라와 첨단 기술이 결합된 고부가 제품을 통해 국내 제관 업계 리딩 컴퍼니에서 세계 일류 종합 포장·충전 업체로 ‘제2의 도약’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박봉준 사장이 전하는 성공 노하우

①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신뢰’가 답이다.
2006년 200억 원의 손실을 본 공장 화재에도 불구하고 재도약할 수 있었던 이유는 ‘신뢰’에 있었다. 고객과 회사와의 신뢰, 임원과 직원과의 신뢰 등 50년을 이어온 대륙제관의 가장 큰 힘은 신뢰다.

②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라. 단,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에서.
중소기업으로는 이례적으로 연구·개발에 전 직원의 11%가 매달릴 만큼 신제품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강점을 지닌 분야를 기반으로 신상품을 내놓는다. 뛰어난 일반 관 기술력을 바탕으로 부탄가스 및 에어졸 사업에까지 진출해 높은 수익을 내고 있다.

③신문에 모든 것이 있다. 신문을 읽어라.
회사 내에서 아이폰 등 첨단기기 사용에 가장 능숙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디어는 신문을 꼼꼼히 읽는 데서 얻는다. 신문에는 ‘세계’가 있다. 그때그때 꼼꼼히 읽지 못할 때는 눈에 띄는 부분을 오려 놓고 주말에라도 꼭 챙겨 읽는다.


약력 : 1958년생. 1981년 한양대 기계공학과 졸업. 87년 미 스티븐스 공과대학 기계공학 석사. 89년 위스콘신대 MBA. 90년 대륙제관 입사. 2003년 대륙제관 대표이사 사장(현).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