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그룹과 주채권은행

현대그룹과 외환은행의 다툼이 점입가경으로 치달으면서 대기업의 주채권은행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자산 기준 재계 순위 30대 그룹(공기업 제외)의 주채권은행을 조사해 보니 우리은행이 9곳으로 가장 많았다. 산업은행이 8곳으로 그 뒤를 이었고 외환은행 5곳, 신한은행 3곳, 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이 각각 2곳으로 나타났다.

우리은행이 가장 많은 대기업의 주채권은행이 된 배경은 뭘까. 우리은행의 전신인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은 주로 대기업 금융을 하던 곳으로 당시의 전통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30대 그룹 중 8곳과 거래하고 있는 산업은행은 국책은행으로 정책금융을 주로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대기업 거래처가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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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家, 외환은행과 오랜 인연 유지

대기업이 외환은행을 선호하는 이유는 외환 영업에서 경쟁 우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수출입 기업들과 거래를 통한 외환 수수료 시장에서 외환은행의 점유율은 30%에 이른다.

외환 영업에서 오랜 기간 쌓아 온 인프라와 경험 덕분에 기존 거래처들이 주거래은행을 바꾸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반면 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은 가계 대출, 중소기업 지원 등에 주력해 온 은행들로 원래 대기업 거래가 많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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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들이 대기업의 주채권은행이 되는 것은 장단점이 뚜렷하다. 여신 관리가 쉽고 수익성이 높은 것은 장점이다. 해당 기업 직원들도 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다. 그렇지만 대기업이 경영난에 처하면 대

규모 부실여신이 생길 가능성도 적지 않다. 대기업들은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굳이 주채권은행을 바꿀 이유가 없다. 대다수 대기업들은 수십 년간 주채권은행을 변경하지 않고 있다.

물론 주채권은행을 바꿀 수는 있다. 2002년 SK그룹은 제일은행에서 하나은행으로, 롯데그룹은 한빛은행에서 조흥은행으로 주채권은행을 변경했다.

동부(2003년)·동국제강(2003년)·한진(2004년)·금호아시아나(2004년) 등도 주채권은행을 바꿨다. 이들이 주채권은행을 바꾼 이유는 기존 주채권은행의 신용공여(대출, 지급보증 등 금융거래상의 신용위험을 수반하는 금융기관의 직간접 거래)보다 규모가 더 커진 신용공여 은행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룹의 주채권은행은 한마디로 주기업의 빚이 가장 많은 금융회사다. 여기에서 주기업은 그룹을 대표하는 기업이다. 예를 들어 삼성그룹은 삼성전자가 주기업이다.

주채권은행이 되면 신규 여신 중단 등의 제재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따라서 대기업과 은행 양쪽이 동의하고 금융감독원에 신고하면 주채권은행으로 인정받게 된다.

주채권은행을 교체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대기업이 기존 주채권은행과 합의하고 새로운 주채권은행을 선정한 뒤 금감원에 신고하면 주채권은행이 변경된다.

한편 지난 7월 8일 외환은행 등 채권단은 재무구조 개선 약정 체결을 거부한 현대그룹 계열사에 대한 신규 신용공여를 전면 중단했다.

과연 현대그룹은 채권단의 공세를 견뎌낼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관행상으로는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지난해 11월 한진그룹은 몇 개월 버텨오던 재무구조 약정을 결국 체결할 수밖에 없었다.

권오준 기자 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