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중심리, 그 영원한 딜레마

한 사람, 한 사람은 영리하고 똑똑한데 여러 사람이 모인 군중은 어리석다. 이것을 사회학에서 ‘구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라고 한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대중은 어리석다. 어리석은 무리를 다스리는 길은 권모술수밖에 없다”는 우민론(愚民論)을 주창했다.

투자의 세계에서도 군중들의 떼거리 행태에 따른 어리석음과 폐단이 자주 거론된다. 우리가 말하는 군중심리(Herd Instincts)는 일종의 ‘떼거리 본능’을 빗댄 표현에 다름 아니다.

재미있는 우화가 있다. 아프리카 밀림에서 코끼리 떼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가 갑자기 벌집을 잘못 건드려 그중 대장 코끼리가 말벌에 눈을 쏘였다. 놀란 대장 코끼리가 앞발을 쳐들고 코를 하늘로 들어 올리자 나머지 코끼리 떼는 이것을 공격 신호로 받아들이고 사정없이 전방을 향해 돌진한다.

이에 놀란 사자 무리가 달리기 시작한다. 이번에 코뿔소 무리가 뛰고 얼룩말이 뛰고 영문도 모르는 사슴 떼는 사자 무리에 놀라 정신없이 내달리기 시작한다. 이 거대한 야생 무리가 지나가는 곳마다 쑥대밭이 되어 버린다. 일부는 절벽에서 추락하고 서로에 밟혀 죽기도 한다.

얼마를 내달렸을까, 달리다 지쳐 주위를 돌아보니 무엇 때문에 뛰는지 궁금해 묻기 시작한다. 사슴이 얼룩말에게 ‘너 왜 뛰니’라고 묻자 얼룩말은 코뿔소에게 묻고 코뿔소는 사자에게 물어본다. 사자는 코끼리가 뛰니까 뛰었다고 한다.

이윽고 코끼리에게 물으니 대장 코끼리가 공격 신호를 해서 뛰었다고 한다. 한참 후에 뒤에서 나타난 대장 코끼리가 말벌이 자기 눈을 쏘았다고 고백한다. 대소동의 발단을 알게 된 짐승들은 실소하지만 이미 밀림은 폐허가 되었고 수많은 짐승들은 절벽에서 떨어져 죽거나 밟혀 죽은 뒤였다.
[최남철의 투자 X파일] ‘나그네와 역외자’…군중심리와 맞서라
튤립과 재개발 아파트의 공통점은 뭘까

군중의 어리석음은 비단 짐승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만물의 영장을 자부하는 인간세계도 예외가 아니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일어난 튤립 투기 열풍은 더욱 실소를 자아낸다.

사교계를 주름잡던 한 백작 부인이 튤립을 무척 좋아해 이를 사 모았는데 이 백작 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많은 이들이 튤립을 사서 보내기 시작한다. 네덜란드 사교계에서 때 아닌 튤립을 사 모으는 유행이 생겨나면서 값이 폭등했다.

그러자 튤립이 재산 증식을 위한 투기의 수단으로 변질됐고 튤립 1개에 1길더(네덜란드 화폐)이던 가격이 6000길더까지 치솟았다.

당시 그 가격이면 암스테르담의 고급 주택을 3채 살 수 있었다니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튤립은 키워서 파는데 보통 1년이 소요된다. 나중에 튤립이 품귀 현상을 빚자 이제는 뿌리를 사고파는 일이 벌어졌다.

일종의 선도(先渡) 거래가 시작된 셈이다. 튤립 뿌리는 모양이 양파처럼 생겼다. 어느 날 나그네가 어느 집에 머무르게 되었는데 튤립 뿌리를 양파인 줄 알고 그만 먹어버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집 3채 값을 꿀꺽 삼켰으니 화가 난 집주인이 나그네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건은 당시 네덜란드 전역을 떠들썩하게 했는데 재판관이 튤립을 재산의 가치로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리면서 사람들이 앞 다퉈 투매에 가담, 튤립 가격이 폭락하게 됐다.

이것이 그 유명한 ‘튤립 사건’의 전말이다. 군중심리의 극단적인 쏠림 현상을 보여준 실화다. 이러한 떼거리 심리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지금도 되풀이되고 있다.

얼마 전 강남의 재개발 아파트에 몰린 투기 열풍도 이와 비슷한 케이스다. 56㎡(17평)짜리 아파트의 꼭지 시세가 15억 원에 육박했는데 이는 3.3㎡당 9000만 원이다. 당시 주변 최고급 아파트 시세가 3.3㎡당 4500만 원 선이라고 보면 112㎡(34평) 아파트를 받아야 본전인데 용적률 기준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더구나 본인의 추가 부담금을 감안하면 수억 원 이상 손해가 나는 것이 뻔한 데도 너도나도 투기에 가담하면서 비이성적인 가격이 형성된 것이다.

농촌에서 심심치 않게 되풀이되는 ‘논밭 갈아엎기’와 ‘소 돼지 파동’의 근본 원인도 군중심리에 있다. 지난해 배추 농사로 재미를 봤다고 하면 너도나도 배추 농사에 뛰어들어 그 이듬해에는 배추 값이 폭락하게 된다.

성난 농부들이 정부에 대한 시위로 배추 밭을 갈아엎는다. 돼지 값이 비싸지면 너도나도 돼지를 키워 돼지 값이 폭락한다. 몇 년 주기로 끊임없이 반복되는 가슴 아픈 현실이다. 너도나도 배추 노래를 부르면 일단 배추 농사는 피해야 한다. 차라리 찬밥 대우를 받는 무 농사를 지어보는 것이 현명하다.

특히 주식시장은 군중심리에 가장 밀접하게 영향을 받는 곳이다. 필자는 군중심리의 핵심을 ‘탐욕’과 ‘공포’에서 찾는다. 오르는 가격은 계속 오를 것 같고 떨어지는 가격은 계속 떨어질 것 같은 착각과 두려움이 비이성적인 행동을 낳는다. 마치 이번에 사거나 팔지 못하면 다시는 그런 기회가 오지 않을 것 같은 절박감 내지는 조바심이 극단적인 행동 패턴을 야기한다.

1930년대 대공황, 1970년대 오일쇼크, 1987년 블랙 먼데이, 2001년 9·11테러, 2008년 10월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사태 등 일련의 주가 폭락 사태를 반추해 보면 군중들은 마치 세상이 끝나고 역사가 단절될 것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역사는 여전히 지속되고 발전해 나가지 않았는가! 이러한 대혼란기에 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혼란을 역이용해 부자의 반열에 오른 사람도 많다. 군중의 어리석음을 깨달았을진대 이를 역이용하는 소위 ‘역시장 접근법(Contrarian Approach)’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모두가 탐욕에 눈멀어 있을 때 냉정한 이성으로 내다 팔고 모두가 공포에 질려 있을 때 과감히 사들이는 역시장 접근은 매우 유용한 투자 기법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언제가 ‘탐욕 시점(Greed point)’이고 ‘공포 시점(Panic point)’인지 정확히 판단할 눈이 있느냐에 있다. 이것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다양한 기술적 지표들이 나와 있다.

또 현상학적으로는 증권사 객장에 아이를 업은 엄마가 나타나거나 증권사 객장이 입추의 여지가 없이 가득 찼을 때, 그리고 지난 2000년에 그랬던 것처럼 농촌과 어촌에서조차 주식 투자 열풍이 불 때를 상투 시점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탐욕’과 ‘공포’의 갈림길에서

필자는 여기에 두 가지 정도의 지표를 더 활용하고 있다. 첫째, 펀드매니저나 애널리스트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솟아오르면 탐욕 국면에 진입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반면 펀드매니저나 애널리스트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구조조정 대상으로 거론되면 공포 국면이 임박했다는 것을 뜻한다.

다음으로 부인이 “우리 아들도 당신처럼 펀드매니저를 시켰으면 좋겠어요”라면 여지없이 상투 국면이었고, 반면 “당신 고생하는 것을 보면 우리 아이는 절대 펀드매니저를 시키지 맙시다”라고 하면 꼭 바닥 국면이었다. 지난 20년간 지켜 본 바, 아주 훌륭한 투자 지표다. 탐욕과 공포라는 인간 심리의 영원한 딜레마를 역이용할 줄 아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

주식 투자에는 일종의 먹이사슬이 형성돼 있다. 맨 꼭대기는 정보와 자금을 손에 쥔 소위 ‘보이지 않는 큰손(Big hands)’이 자리 잡고 그 아래에 투자 지식과 기법으로 무장된 전문가 집단이 자리한다.

그리고 슈퍼 개미라고 불리는 큰손들도 전문가 집단 못지않은 솜씨를 뽐낸다. 그 아래에 일반 투자가, 소위 개미 집단이 있고 개미 가운데도 증권방송과 경제신문을 통해 지식과 정보를 얻는 층이 있는가 하면 ‘누가 주식으로 많이 벌었다더라’는 이웃집 소문을 듣고 뛰어드는 ‘묻지 마’ 층이 있다.

정보나 분석 능력이 전혀 없는 집단이 주식에 뛰어들고 나면 그 다음에는 누가 주식을 사겠는가. 연변 아저씨, 연변 아줌마가 사겠는가. 필자의 경험으로도 2000년 닷컴 열풍 때 동네 세탁소 아저씨가 새롬기술을 샀다고 하면서 자랑하기에 빨리 빠져나오라고 충고한 적이 있는데 그때가 300만 원을 넘어선 시기였다. 돌이켜 보면 아찔한 상투가 아닐 수 없었다.

월가의 전설 피터 린치는 소위 ‘칵테일 이론’으로 주식시장의 상투와 바닥권을 진단했다. 칵테일파티의 참석자들이 자신의 주위로 몰려들어 무슨 주식을 사야 되느냐고 야단을 피우면 그때가 상투고 참석자들이 자신에게는 아무 관심도 없이 치과의사 주변에 모여들어 이빨에 관한 상담에 열중할 때가 바닥이라고 판단했다.

그 어떤 지표보다 인간의 심리와 행태를 실증적으로 분석한 경험이 곧 과학이 될 수 있다. 탐욕과 공포에 기인한 군중심리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은 맑고 빈 마음으로 상식과 중용의 틀에서 군중의 생각과 행동을 관찰하는 역외자(alien)와 나그네가 되는 길밖에 없다. 역외자는 군중 밖에서 객관의 눈을 가질 수 있고 나그네는 탐욕에서 자유로운 빈 마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약력 : ‘꿈의 기울기에 투자하라’의 저자. 1988년 국민투자신탁 펀드매니저를 시작으로 푸르덴셜자산운용, 마이애셋자산운용 거쳐 현재 새로다시투자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

최남철 증권 칼럼니스트 serodas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