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 남성 패션의 노하우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난 당신을 생~각해요.”요즘은 이 노래 가사처럼 감상에 젖어 호젓한 비 오는 거리를 우산 쓰고 걷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긴다. 그러나 문제는 보슬보슬 내리는 순진한 비가 아니라 가끔씩 앞이 흐려질 정도로 퍼붓는 장대비다.
옷도 젖고 신발도 젖고 감상적인 기분은커녕 빨리 어디론가 들어가고 싶은 생각밖에 안 드는 장맛비, 그리고 습함에서 오는 불쾌감. 그래서 이번 주에는 비가 억수로 쏟아져도 그 멜랑콜리(melancholy)한 근사한 기분을 극대화해 줄 몇 개의 아이템을 추천해 본다.
트렌치코트(Trench coat) 트렌치 워페어(Trench warfare)라는 말을 아는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참호(Trench)를 깊게 파고 전쟁을 했었다. 당시 영국군과 프랑스군은 비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트렌치코트를 입기 시작했고, 그것이 바로 트렌치코트의 시초다.
많은 남성복의 시작은 군복에서 나왔고 그중 좋은 예가 트렌치코트다. 세계적으로 비 오는 날 입는 트렌치코트는 남성미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영화 ‘카사블랑카’의 험프리 보가트에서부터 저우룬파(周潤發)에 이르기까지 우리 기억 속의 멋진 남자들은 심지어 비가 오지 않아도 꼭 트렌치코트를 입었다.
보통 개버딘(gaberdine) 소재와 포플린(poplin) 소재가 주류를 이루는 트렌치코트는 버버리와 아쿠아스큐텀이 서로 먼저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누가 먼저 만들었건 더블, 혹은 싱글 버튼에 허리에 여밈 벨트가 있으며 무릎에 닿는 길이의 트렌치코트야말로 비 내리는 날 남성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아이템일 것이다.
이번 시즌에는 남성 트렌치코트에도 다양함이 보인다. 트렌디하고 캐주얼하게 입고 싶다면 변형된 준 제이의 트렌치코트, 클래식하고 댄디해 보이고 싶다면 버버리의 베이지 트렌치를 입어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요즘처럼 시크(chic)하고 세련돼 보이고 싶다면 블랙이나 네이비 트렌치코트도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필자는 이 세 가지를 이미 다 가지고 있을 정도로 트렌치 마니아인데, 남성으로서 여름철에 트렌치코트가 없다면 겨울에 울 코트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지금 당장 자신의 옷장을 열어 체크해 보도록 하자.
기능성 재킷(Utility Jacket) 장마철의 후텁지근한 날씨는 많은 땀을 배출한다. 일상생활은 물론이거니와 운동을 하고 레저 활동이 잦아지는 여름에는 특히 땀의 양이 배가된다.
이때 발생된 땀을 빨리 증발시키지 않으면 불쾌감을 줄 뿐만 아니라 더울 때는 체온을 계속 상승시키고 추울 때는 체온을 하강시켜 건강에 좋지 않을 수도 있다.
최근에는 수많은 기능성 섬유들이 개발되고 있어 피부로부터 나온 땀을 빠른 속도로 흡수, 증발시켜 당신의 체온을 항상 일정하게 유지해 준다.
대표적인 예로 쿨맥스(Coolmax) 소재가 있는데, 섬유 자체가 부드러워 착용감도 좋을 뿐만 아니라 호흡성과 수분 관리 기능이 뛰어나 많은 브랜드가 이를 사용해 옷을 제작하고 있다.
이런 섬유로 만들어진 옷들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색상을 많이 사용하는데 방수도 잘되고 비에 젖어도 부담 없는 장마철에 딱 좋은 캐주얼 옷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 기능성 옷을 생각하면 일반적으로 등산복이나 운동복 느낌의 아이템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러한 기능성 제품들은 패션 트렌드와 거리가 멀다. 기능성 옷을 입고 싶다고 저녁 모임 자리에서 나 혼자만 등산복 스타일의 옷을 입고 왕따가 된 것처럼 앉아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씨피 컴퍼니 (CP Company)’나 ‘스톤 아일랜드(Stone Island)’에는 기능과 패션이 결합된 점퍼나 윈드브레이커(windbreaker)들이 많아 일석이조의 효과를 준다.
장화(Rain boots)
비를 사랑하는 필자가 비가 싫어지는 딱 하나의 이유는 바로 구두다. 필자의 칼럼을 꾸준히 읽은 독자들이라면 필자가 다양한 스타일의 구두를 즐겨 신는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고급 구두일수록 그 밑창은 ‘홍창’이라고 불리는 가죽 재질로 되어 있어 비는 그야말로 고급 구두와 상극이다. 즐겨 신는 캔버스 소재의 운동화 역시 다각도에서 내리는 빗줄기 사이에서 폭삭 젖어 버려 말리고 난 다음에도 냄새가 진동하고 형태도 뒤틀리기 일쑤다.
비가 심하게 오는 날 그래서 필자는 아끼는 모든 신발을 집에 고이 모셔둔 채 고무장화를 선택한다. “헐, 갑자기 웬 장화? 사람들이 죄다 나만 쳐다보면 어쩌지?”라고 생각하는 당신은 분명 공장이나 수산시장에서나 신을 듯한 검정색 혹은 노란색의 투박한 장화만을 장화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장화라고 불리는 이 신발도 사실 멋진 이름이 있다. 바로 ‘웰링턴 부츠(Wellington boots)’다. 19세기 ‘웰링턴’ 공작이 신기 시작해 그 시대의 상류사회에 하나의 대유행을 일으킨 것이 바로 이번 주 필자가 한국 남성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아이템이다.
이런 고풍스러운 역사를 가진 웰링턴 부츠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이 진흙탕 속에서 발을 보호하기 위해 신으면서 다시 한 번 유명해졌는데, 그러고 보면 고급스럽고 무척 남성스러운 아이템인 것이다.
특히 이번 시즌 ‘버버리’의 룩이 그 진가를 발휘하는데, 시원한 피케셔츠에 살짝 통 있는 면바지를 돌려 말아 ‘버버리’ 특유의 체크 디자인이 있는 레인 부츠에 넣은 이 레인 룩은 분명 난해하기보다 한국 남성들도 한번쯤은 비를 즐겁게 생각할 여유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스타일이라고 생각된다.
만일 당신이 올여름 비가 가장 심하게 올 때를 대비해 ‘헌터 레인 부츠(10만 원대)’나 ‘버버리 레인 부츠(40만 원대)’를 장만해 놓는다면 당신은 이미 용기 있는 트렌드세터(trendsetter)가 분명하다.
향수(Perfume)
습한 기운으로 가득한 장마철에는 그 무엇보다 체취가 중요하다. 이상하게도 비 오는 날, 후각은 더 예민해지고 평소에 무심코 지나가던 냄새에도 뒤를 돌아보게 한다.
내리는 비는 다양한 냄새 분자들과 결합하게 되고 그래서 우리는 평소에는 무심코 지나쳐 버리는 흙냄새까지도 맡게 되는 것이다. 부정적인 냄새가 나는 당신은 ‘절친’과의 우정을 지키게 될 수 없을지도 모르며 사랑하는 여인의 마음을 멀리 도망가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당신의 좋은 냄새는 누군가의 기억 속에 더 효과적으로 오래오래 남을 수도 있는 계절이 바로 또 이 장마 기간이기도 하다. 필자가 비 오는 날 뿌리고 싶은 향수는 언제나 머스크 향 계열의 향수들이다. 머스크는 사향노루 생식샘에서 채취한 향인데 관능적이고 신비한 향으로 옛날부터 세계 곳곳에서 사랑 받아 왔다.
올여름 추천하고 싶은 제품으로는 키엘의 ‘오리지널 머스크 블렌드 No.1(6만 원대)’. 키엘의 이 향수는 상큼한 오렌지 꽃 향을 시작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은은한 머스크 잔향이 남는다. 내리는 빗속에 은은한 머스크 향은 맡으면 누구라도 당장 이게 무슨 향수인지 질문하게 될 것이다.
또 하나는 우디 프레시 계열의 향으로 공기처럼 가벼운 듯하지만 섬세한 향을 내는 에르메스의 ‘보야지(10만 원대)’다. 이 계절에 어울리는 최적의 향수를 뿌리는 일은 분명 괜찮은 연애 전략이 될 것이다.
비만큼 남성을 서정적으로 만드는 것이 또 있을까. 흐릿한 하늘과 심장박동 소리 같은 빗소리는 분명 우리 남성들조차 감성적으로 만드는 묘한 힘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 기분에 너무 오래 취해 있을 수만 없는 게 또 바쁜 남성의 삶일 것이다.
결국 우리를 조금씩 무기력하게 만드는 저 비의 영향권에서 긍정적으로 벗어나기 위해서는 앞날을 위해 어디론가 쉼 없이 발걸음을 옮겨야만 한다. 그래서 그 여정을 조금이나마 덜 지치게 하기 위해 장마 아이템들을 몇 가지 알아봤다.
자, 이제 저마다의 방법으로 비와 어울릴 만한 멋진 아이템들을 고민해 트위터로 그 정보를 비 오는 날 실시간으로 공유해 보면 어떨까. 필자도 독자들의 멋진 정보를 트위터를 통해 한번쯤은 직접 들어보고 싶은 여름이다(필자의 트위터 주소는 ‘@officeh’ 이다).
약력 : 1994년 호주 매쿼리대 졸업. 95~96년 닥터마틴 스톰 마케팅. 2001년 홍보 대행사 오피스에이치 설립. 각종 패션지 보그, 바자, 엘르, 지큐, 아레나 등에 칼럼 기고. 저서에 샴페인 에세이 ‘250,000,000 버블 by 샴페인맨’ ‘행복한 마이너’가 있음.
황의건 오피스에이치 대표이사 h@office-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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