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 날씨와의 ‘전쟁’ 앞둔 기상청

일기예보는 종종 경기 예측과 비교된다. 정확한 미래 예측을 목표로 삼지만 번번이 빗나가 실망을 안겨준다는 공통점 때문이다. 학계에는 ‘신이 경제학자를 창조한 까닭은 일기예보관을 격려하기 위해서’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하지만 최근 기상예보의 눈부신 발전은 경제학자들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하다. 아직도 일기예보가 틀릴 때면 많은 사람들이 ‘기상청이 아니라 기상오보청’이라고 분통을 터뜨리지만 한국의 기상예보 역량은 이미 선진국 수준에 올라서 있다.

“2008년 여름 6주 연속 주말 예보가 빗나갈 때는 정말 곤혹스러웠죠. 언론에서 틀린 횟수를 카운트하기도 했어요. 지금은 거의 실시간으로 예보를 평가받아요. 구름의 양이 많아질지 적어질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할 수밖에요.”
[Business Focus] 초단기 예보 도입…기상재해 ‘제로’ 도전
실시간으로 예보 결과 평가받아

지난 6월 30일 서울 신대방동 기상청 2층 국가기상센터에서 만난 정상훈 예보관의 표정에선 팽팽한 긴장감이 묻어났다. 여름 장마철은 예보관들의 아드레날린 분출이 최고조에 달하는 예민한 시기다. 언제 어디서 게릴라성 집중호우가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장마철 한반도는 언제든 ‘물 폭탄’이 터질 수 있는 지뢰밭과 같다.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는 기상 요인들 중 한두 개만 달라져도 비를 부르는 ‘트리거(trigger)’ 작용을 한다.

정 예보관은 “기분이 잔뜩 찌푸려있는데 누가 옆에 와서 결정적인 한마디를 던지는 격”이라고 말했다. 여름철 우기에는 구름이 품고 있는 물방울의 양도 많아진다. 이 때문에 겨울에는 빗줄기로 끝날 것도 여름에는 집중호우로 돌변한다.

예보 결과를 실시간으로 평가받는다는 정 예보관의 말은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다. 본청 총괄예보관실에 있는 예보관들과 전국 40여 개 기상대에 근무하는 184명의 ‘동네 예보관’들은 3시간마다 내놓는 각자의 예보 내용을 그때그때 평가받는다.

기온의 경우 오차가 2도 이내면 적중한 것으로 보고, 2~4도면 노란색 삼각형이 자동으로 표시된다. 이 범위를 벗어나면 오보로 빨간색이다. 이렇게 누적된 평가 결과는 연말 성과급과 승진, 연봉에 그대로 반영된다. 정 예보관은 “강수는 배점이 더 크다”며 “여름에 점수를 많이 까먹는다”고 말했다.
[Business Focus] 초단기 예보 도입…기상재해 ‘제로’ 도전
국가기상센터는 국내 기상예보의 총본산이다. 전국에 산재한 기상관측소와 기상레이더의 관측 데이터들이 이곳으로 모아진다. 최근 발사에 성공한 기상위성 ‘천리안’을 통제하는 국가위성센터(충북 진천)나 올 초 3호기 도입과 함께 문을 연 국가기상슈퍼컴퓨터센터(충북 오창)도 초고속통신망으로 연결돼 있다.

모든 지원 인프라는 예보관을 중심으로 짜여 있다. 예보관이 좀더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가능한 한 모든 데이터를 제공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슈퍼컴퓨터가 계산해 내는 수치 예보 모델이다.

현재 가동되는 슈퍼컴퓨터는 2004년 도입된 2호기와 작년 말 들여온 3호기 두 대다. 올 연말까지의 병행 운영이 끝나면 연산 속도가 37배 이상 빠른 3호기가 2호기를 대체하게 된다.

수치 예보 모델은 전 지구를 가로·세로·높이 40km인 셀로 나눠 기온·습도·바람 같은 기상요소의 시간 변화와 날씨 현상을 물리방정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슈퍼컴퓨터는 이러한 수치 예보 모델을 통해 수시간에서 수백 년까지 미래의 대기 상태를 예측해 낸다.

이를 위해 각종 국내 데이터는 물론 하루 2번 전 세계에서 동시에 이뤄지는 광범위한 관측 자료가 세계기상통신망(GTS)을 통해 공급된다. 전 세계 기상청은 세계기상기구(WMO)의 주도로 기상관측 자료를 공유하고 있다. 이는 북한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가 안방에서 매일 북한 지역의 일기예보를 볼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불규칙하게 움직이는 대기 현상을 100% 정확하게 모형화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꿈이지만 이러한 수치 모델에도 우열은 있다. 현재 세계적으로 활용되는 11개 모델 가운데 최고의 정확성을 자랑하는 것은 유럽연합(EU)이 운영하는 유럽중기예보센터(ECMWF)의 수치 모델이며 그 다음이 영국의 통합 모델(UM)이다.

기상청은 1993년 수치 예보를 시작한 후 써 온 일본 모델을 지난해 영국의 UM으로 교체했다. 박훈 기상청 수치자료응용팀 기상사무관은 “계절풍 지역인 한국의 특성을 고려한 모델 수정 작업과 시험 운영을 거쳐 지난 6월 중순부터 새 모델 결과가 공식적으로 예보관들에게 제공되고 있다”며 “이번 여름철 예보의 신뢰도도 훨씬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슈퍼컴퓨터와 수치 모델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일기예보의 정확성을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것은 예보관의 역량이다. 슈퍼컴퓨터는 주어진 방정식을 재빨리 계산해낼 뿐이다. 또한 정교한 수치 모델이 진가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현재보다 훨씬 촘촘하고 품질이 높은 관측 데이터가 확보돼야만 한다. 현재로서는 파편적인 정보들을 통합하고 해석하는 일은 여전히 경험 많은 예보관의 몫이다.

국가기상센터에는 32명의 예보관이 8명씩 4개조로 근무한다. 대부분이 기상학을 전공한 석·박사급 인재들이다. 올해 경력 22년째인 정상훈 예보관이 근무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전 근무자들의 예보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다. 정 예보관이 보여준 화면에는 3개의 서로 다른 강수 지역 분포도가 떠 있다.

첫 번째는 전임 근무자인 총괄예보관이 작성한 분포도다. 국가기상센터 총괄예보관은 슈퍼컴퓨터가 산출한 ‘수치 모델’, 각 지역 기상대의 예보관들이 작성한 ‘동네 예보’를 분석해 총괄 분포도를 작성한다.

재미있는 것은 수치 모델과 최종 총괄 분포도가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다. 정 예보관은 “수치 모델이 항상 정확하지는 않기 때문에 실제 상황을 고려한 조정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1시간 단위 초단기 예보에 도전
[Business Focus] 초단기 예보 도입…기상재해 ‘제로’ 도전
의문이 들면 각 예보관의 판단 근거를 꼼꼼히 살펴보고, 과거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 추적 조사를 벌이기도 한다. 때로는 역사적 통계 자료도 적절히 활용한다. 정 예보관은 “기상 변화를 이해하려면 지상보다 1.5km나 5km 상공의 일기 흐름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지상에 나타나는 기상 상태가 ‘얼굴’이라면 상공은 그걸 가능하게 한 ‘심상’이다. 심상을 잘 알아야 표정의 변화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최근 기상청의 일기예보는 한층 정교해졌다. 지난 6월 15일부터 1시간 단위의 초단기 예보를 새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는 3시간 단위인 기존 동네 예보보다 훨씬 고난도의 기술이 필요한 분야다.

초단기 예보는 현재부터 3시간 앞까지 1시간 간격으로 기온·강수량·강수형태·풍향·풍속·하늘상태·습도 등 7개 기상 실황 요소와 강수량·강수형태·하늘상태 등 3개 기상예보 요소를 서비스하는 것이다.

정 예보관은 “초단기 예보는 돌발적인 기상 상황을 즉각 반영해야 하기 때문에 상당히 까다로운 분야”라고 말했다. 초단기 예보의 정확성은 거의 즉각적으로 판가름 난다.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