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처 24시

최근 몇 달 사이 나온 경제지표들은 한국 경제가 경기 회복 국면을 넘어 ‘과열’로 치닫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다. 1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경제성장률)은 전년 동기 대비 8.1%다.

7년 3개월 만에 최고였고 5월 취업자 수는 전년 동월보다 58만6000명 늘어 8년 1개월 만에 최대 증가 폭을 기록했다. 정부는 2분기 성장률도 6.3%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면서 연간 성장률은 5.8%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정부의 작년 연말 전망치 5.0%보다 0.8%포인트 상향 조정된 것이다.

하지만 국민들이 체감하는 경기는 지표로 나타나는 것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기획재정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 6월 7일부터 5일간 교수·기업인·연구원 등 전문가 333명과 일반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전문가들과 일반인들의 경기 인식에 큰 차이가 있었다.

6개월 전과 비교해 경기가 어떠냐는 질문에 전문가들은 65.2%가 ‘약간 좋아졌다(58.0%)’거나 ‘매우 좋아졌다(7.2%)’고 답한 반면 일반인들은 절반 가까이가 ‘약간 나빠졌다(37.1%)’거나 ‘매우 나빠졌다(9.6%)’고 답했다.
성장률·고용 다 좋은데 뭐가 문제일까
일반인들 중 경기가 좋아졌다고 답한 비율은 ‘약간 좋아졌다(15.2%)’, ‘매우 좋아졌다(0.5%)’를 합쳐 15.7%에 불과했다. 직업상 경기지표와 통계를 주된 근거로 삼는 전문가들의 판단과 달리 실제 국민들이 생활 현장에서 느끼는 경기는 별로 좋아지지 않았다는 해석이 가능한 설문 결과다.

정부도 이 같은 지표경기와 체감경기 간의 차이를 인식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6월 24일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경제가 지표상으로는 분명하게 좋아지고 있지만 많은 국민, 특히 서민들은 여전히 회복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표경기의 개선을 서민 생활 안정으로 연결하는 일에 하반기 경제정책의 중점을 두겠다”는 말을 최근 자주 하고 있다.

일반인들 ‘경기 나빠졌다’ 47% 달해

지표경기와 체감경기에 차이가 나는 것은 그 자체로 비정상적이거나 부자연스러운 일은 아니다. 예를 들어 전자 제품 제조업체가 TV를 생산하면 GDP는 TV를 생산하는 시점에 증가하지만 전자 제품을 판매하는 소매업자는 소비자가 TV를 사 가는 시점에서야 경기 회복을 실감할 수 있다.

기업 실적 개선이 근로자들의 임금 증가로 연결되고 임금 증가가 소비 증가로 이어지기까지도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표경기와 체감경기의 차이는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의 경기지표 호조는 기저효과에 힘입은 바가 크다는 점에서 지표경기와 체감경기의 차이는 단순한 시차 문제 이상일 수 있다. 지난해 경기가 워낙 좋지 않았던 탓에 올해 실적이 좋게 나오는 것일 뿐 실제로 국민들의 살림살이가 크게 나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정부가 예상하는 5.8%의 성장률도 지난 2년간의 성장률이 각각 2.3%와 0.2%에 그쳤던 것을 생각하면 그리 높은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정부의 전망대로 한국 경제가 올해 5.8% 성장한다고 하더라도 2008년부터 2010년까지 3년간의 연평균 성장률은 2.7%밖에 안 된다. 2006년(5.2%)과 2007년(5.1%) 성장률의 절반 수준이다.

고용 사정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올해 취업자 수가 작년보다 30만 명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정부 예상대로 된다고 해도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연평균 취업자 수 증가 폭은 12만4300명에 그친다.

2008년 취업자 수가 14만4000명밖에 늘어나지 않았고 지난해에는 7만1000명이 감소한 탓이다. 글로벌 금융 위기 전까지 취업자 수는 매년 30만~40만 명씩 증가해 왔다. 지난 2년간 직장을 잃었거나 노동시장을 이탈한 사람까지 흡수하기에는 30만 명은 턱없이 부족한 규모다.

더 큰 문제는 경기 회복의 온기가 서민층에 퍼져나가기 전에 회복세 자체가 꺾일 수 있다는 점이다. 유럽 국가들의 재정 위기가 좀체 해결되지 않는 가운데 글로벌 금융 위기 속에서도 고도성장을 지속해 왔던 중국마저 경기가 둔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세계경제가 잠시 회복되다가 재차 침체되는 ‘더블 딥(double dip)’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표경기의 상승세가 언제쯤 체감경기로 확산돼 나갈지 서민들이 받는 고통만큼 정부도 애를 태우고 있다.

유승호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