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오른 양안 협력 시대

지난해 4월 대만을 찾았을 때 만난 주타이베이 한국대표부의 최영준 대표보는 “대만 정부 보고서엔 한국의 자유무역협정(FTA)에 대응하기 위해 중국과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을 추진해야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리고 1년여가 흐른 지난 6월 29일 대만과 중국은 충칭에서 5차 양안(兩岸:대만과 중국)회담을 열고 ECFA에 최종 서명했다.

국민당과 공산당 간의 ‘3차 국공(國共)합작’이라는 평가를 받는 ECFA에 한국이 긴장하고 있다. 대만과 한국의 대중국 주력 수출 품목이 겹친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에 뒤졌다는 위기의식으로 무장한 대만의 행보가 중국과의 경제동맹을 타고 빨라지는 분위기다.

◇ 양안 경제동맹 탄력 = 양안 ECFA는 내년 1월부터 즉시 또는 2년 내 단계적으로 무관세를 이루는 ‘조기 수확 대상’에 대만산을 539개, 중국산을 267개 포함시켰다. 대만 언론들은 ECFA 체결로 대만이 매년 260억 대만 달러(약 9620억 원)의 이득을 챙길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대만은 특히 중국이 일부 대만산 농산물에 대해 무관세를 적용하기로 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농산물 시장을 개방하지 않고 중국인 노동자의 취업도 계속 금지하기로 했다.
<YONHAP PHOTO-0922> Chen Yunlin (R), Chairman of China's Association for Relations Across the Taiwan Straits (ARATS), shakes hands with Taiwan's Straits Exchange Foundation (SEF) Chairman P.K. Chiang during a cross strait meeting for the economic cooperation framework agreement (ECFA), in Chongqing June 29, 2010. Taiwan and China will formally sign a free trade-style agreement on June 29, the most significant between the two former political foes in 60 years and one that opens the way for a major boost to their around $100 billion in annual two-way trade. REUTERS/Jason Lee (CHINA - Tags: BUSINESS IMAGES OF THE DAY POLITICS)/2010-06-29 10:54:42/
<저작권자 ⓒ 1980-2010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Chen Yunlin (R), Chairman of China's Association for Relations Across the Taiwan Straits (ARATS), shakes hands with Taiwan's Straits Exchange Foundation (SEF) Chairman P.K. Chiang during a cross strait meeting for the economic cooperation framework agreement (ECFA), in Chongqing June 29, 2010. Taiwan and China will formally sign a free trade-style agreement on June 29, the most significant between the two former political foes in 60 years and one that opens the way for a major boost to their around $100 billion in annual two-way trade. REUTERS/Jason Lee (CHINA - Tags: BUSINESS IMAGES OF THE DAY POLITICS)/2010-06-29 10:54:42/ <저작권자 ⓒ 1980-2010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서비스 분야에서도 중국은 은행·증권·영화·연구개발 등 11개 부문을, 대만은 은행·영화·엔터테인먼트 등 9개 부문을 먼저 개방하기로 했다.

“중국은 대만의 형제이기 때문에 ECFA 협상에서 양보할 것(원자바오 총리)”이라는 약속이 지켜졌다는 지적이다. 중국이 ‘통 큰 양보’를 한 것은 이번 ECFA 목적을 당장의 경제적 실리 추구보다 장기적으로 홍콩이나 마카오처럼 ‘1국 2체제’로 가기 위한 정치적 통합의 포석으로 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대만과 중국은 ECFA와 함께 지식재산권 보호 협정도 함께 체결했다. 이로써 양측은 마잉주 대만 총통(대통령)이 취임한 2008년 5월 이후 모두 5차례에 걸친 양안회담을 통해 14건의 협정을 맺었다. 지난해 금융 협력 협정을 체결하고 통항(通航)·통우(通郵)·통상(通商) 등 ‘3통’을 전면 실현한 게 대표적이다.

◇ 대만의 신성장 전략 = 대만은 ECFA를 계기로 중국 비즈니스 관문으로서의 매력을 높여 ‘아시아 허브’가 되겠다는 비전을 숨기지 않고 있다. 실제 폭스바겐은 대만에 자동차 완성차 공장 설립을 추진 중이다.

ECFA가 발효되면 중국에서 가져오는 자동차 부품에 관세가 붙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가 갖는 부정적인 인식을 덜 수 있는 데다 대만의 전자 산업이 발달돼 있어 자동차의 전자 제품을 조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폭스바겐을 대만으로 끌어들였다는 분석이다.
[China] ECFA로 무관세 혜택…한국 등 직격탄
전복 세계시장 1위 업체인 싱가포르의 오셔너스가 대만을 중국 진출의 전진기지로 삼기로 하고 타이베이에 법인을 설립하기로 한 것도 ECFA에 따른 밴드 왜건 효과(band wagon effect:편승효과)를 겨냥한 행보다.

중국 국영 치루이자동차도 대만에 공장 설립을 추진하는 등 중국 기업들의 대만 투자도 늘어날 전망이다. 대만이 최근 20년간 중국에 투자한 자금은 830억 달러에 달한다.

대부분 제조업으로 이번 ECFA를 계기로 액정표시장치(LCD) 첨단 제조업으로 투자 영역이 크게 확대되는 한편 서비스산업 투자도 물꼬가 트일 전망이다.

하지만 마잉주 총통은 “ECFA는 대만 기업에 강장제(비타민)일뿐 만병통치약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이 때문에 “대만은 산업 발전을 위한 환경 조성을 위해 혁신적인 조치를 계속 취해야 한다”는 게 마 총통의 인식이다.

대만이 7월 1일 △전통 산업의 업그레이드 △신흥 산업 육성 △ECFA 피해 업종 대책 등을 골자로 한 새로운 성장 전략을 내놓은 이유다.

◇ 한국 맹추격 발판 = 양안 간 ECFA가 체결되자 대만은 한국을 겨냥한 말들을 쏟아내고 있다. “드디어 한국을 추격할 발판을 마련했다(황츠펑 대만해외무역위원회 이사)”, “한국과 전면전을 벌여 중국에서 한국 기업을 누르게 될 것이다(천톈즈 대만대 경제학과 교수).”

한국과의 무역에서 1991년 이후 매년 적자를 내온 대만은 ECFA 체결을 계기로 잃어버린 10년을 만회하겠다는 각오다.

후중잉 대만경제회 부위원장은 “ECFA 체결로 대만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을 따라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은 오래전부터 중국을 ‘제2의 소비 시장’으로 규정하고 물건을 파는 데 주력해 왔지만 대만은 중국을 공장으로만 생각해 왔다”며 “두 나라는 10년간 다른 위치에서 경쟁했기 때문에 대만이 한국에 질 수밖에 없었다”고 분석했다. 후 부위원장은 “ECFA 체결로 한국은 대만을 ‘질투’하게 될 것”이라고 큰소리쳤다.

◇ 한국의 영향은 = 지난해 중국 수입 시장에서 한국과 대만은 각각 10.2%와 8.5%를 차지했다(대만 경제부). 특히 한국의 대중국 상위 수출 품목 20개 가운데 대만과 경합을 벌이는 품목은 14개. 이들 14개 품목의 대중국 수출은 대중국 수출의 60%를 차지한다. 양안 ECFA가 이 판도를 어떻게 바꿀지 주목된다.

지만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중국팀장은 “석유화학 제품은 관세율이 평균 5~6%인데 대만산 제품에 대해서는 관세가 없어지기 때문에 국내 업체가 타격을 많이 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공작기계도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반도체 및 LCD 등의 전자·전기 분야와 자동차 산업은 단기적으로는 제한적인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반도체는 오래전부터 무관세가 적용돼 왔고 LCD는 이번 조기 수확 대상에서 빠졌기 때문이다.

------------------------------------------------------------------------------------

인터뷰천융춰 주한 대만대표부 대표

“대만 우회한 중국 진출 전략 유망”
[China] ECFA로 무관세 혜택…한국 등 직격탄
“대만과 중국의 경제협력기본협정(ECFA) 체결은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과 한국 등 다른 국가들 및 해외시장에서 동등하게 경쟁하기 위한 출발점입니다.”

양안 간 ECFA가 체결된 지난 6월 29일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빌딩에 있는 주한 대만대표부에서 만난 천융춰(65) 대표는 “아시아에 국가 간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자유무역지대가 형성되고 있지만 이 흐름에 소외된 곳은 대만과 북한 뿐”이라며 “중국과 ECFA를 체결하지 못했다면 주변국으로 전락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천 대표는 아시아 주요국의 FTA 상황을 줄줄이 꿰고 있다. 아세안 10개국이 올해 중국·인도·호주·뉴질랜드 등과 FTA를 발효했거나 발효할 예정이라며 구체적인 피해 사례를 들기도 했다.

올 초 아세안과 중국의 FTA 발효로 아세안이 수출하는 석유화학 제품은 면세 혜택을 받지만 같은 제품을 대만에서 중국으로 보낼 때는 8~9%의 관세를 물고 있었는데 이번 ECFA 체결로 이 같은 ‘불평등 경쟁’을 해소할 수 있게 됐다는 것.

하지만 그는 아직 갈 길이 멀다며 대만의 FTA 체결 상황을 한국 및 일본과 비교하기도 했다. 대만이 FTA를 체결한 곳은 파나마·엘살바도르 등 중남미 지역 5개국이다. 이들이 대만의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도 채 안 된다.

천 대표는 이번 ECFA 체결로 관세 감면 혜택을 받는 품목은 대만 전체 수출의 4.9%에 불과하다며 한국이나 일본이 다른 나라와의 FTA를 통해 누리는 혜택에 비할 바가 못된다고 강조했다.

“한국 기업에는 이번 ECFA가 도전이 될 수 있지만 대만에 연구개발센터와 지주회사 등을 두고 중국 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천 대표는 “한국이 중국과 FTA를 추진하고 있지만 실제 실현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기 때문에 대만을 우회해 중국에 진출하는 전략을 쓸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일본·아세안 등과 FTA를 체결하길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대만 외교부 주임비서(차관보)를 지낸 뒤 2006년 6월 한국에 부임한 천 대표는 7월 중순 귀임한다.

오광진 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