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생생토크
‘세종시 수정안’이 지난 6월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되면서 정가에선 정치적 함의를 놓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세종시를 놓고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벌인 충돌에 대한 우려 섞인 전망들이 적지 않다.이 대통령은 수정안을 끝까지 밀어붙였고 박 전 대표는 본회의 반대 토론에 직접 나서 수정안 통과 저지의 최일선에 섰다. 결과는 ‘부결’로 매듭지어졌고 두 사람의 관계는 한층 더 껄끄러워졌다.
이를 두고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그것이 권력의 속성”이라고 말했다. 현재 권력은 언젠가 기울게 마련이고 미래 권력은 현재 권력을 딛고 올라서려고 한다는 것이다. 세종시 수정안 부결은 앞으로 두 사람이 벌여나갈 치열한 현재·미래 권력에 대한 갈등의 전초전일지도 모른다. 역대 정부에서도 대통령과 2인자들이 그랬다.
◇ 1인자와 2인자의 역사 = 2인자들은 결국 대통령과 차별화를 시도했다. 반면 대통령은 끝까지 이를 피하고 싶어 했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양쪽 입장을 모두 경험했다. 1990년 1월 3당 합당 후 거대 여당의 2인자가 된 그는 노태우 대통령에게 끊임없이 차기 대통령은 자신이란 점을 주지시켰다.
그해 10월 합당 당시 맺은 내각제 합의 각서가 언론에 보도되자 대표로서의 당무를 거부하고 나흘간 마산으로 낙향하기도 했다.
그 무렵 노태우 대통령·김종필(JP) 최고위원 등과 함께한 자리에서 YS가 “당신들이 한 일을 나는 알고 있다”고 항의했다가 ‘당신’이란 말에 노 대통령이 화가 나 자리를 박찬 일화도 있다. 그런 YS도 대통령 시절엔 2인자였던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 때문에 마음이 상했다.
임기 말 YS가 “독불장군 미래 없다”고 경고했지만 이 총재는 “비민주적 정당에는 미래가 없다”고 맞받았다. 김대중(DJ) 정부 시절 DJ와 함께 공동 정부를 꾸린 JP도, 노무현 정부 시절에 ‘차기’로 불린 정동영 민주당 의원도 끝내 대통령과 갈라섰다. 대부분 집권 중반기를 넘어갔을 때의 일이다. ◇ 이명박·박근혜 루비콘강 건넜다는데… =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충돌은 과거와는 사뭇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과거엔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했을 때 주로 충돌이 일어났다. 하지만 지금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50%를 넘나든다.
또 과거엔 충돌이 공개적이지도 노골적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은밀하고도 비공개적이었다. 공식적인 발언으로 확인되는 건 사실상 결별에 이르렀을 때다.
정동영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해 “시시비비를 가리겠다”고 말한 것이나 고건 전 총리가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실패한 인사’로 지목된 것은 모두 불화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된 뒤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2인자인 박 전 대표가 공세의 전면에 섰다.
예전엔 측근들이 나섰고 대통령과 2인자는 한두 마디 던지는 식이었다. 이번의 경우 충돌 상황이 오래 지속되고 있다는 점도 과거와의 차이다. 대선이 임박한 시기가 아니라면 대통령과 2인자들은 한두 사건을 두고 충돌한 뒤 갈등을 봉합하는 모습을 취했다. 그러나 이번엔 세종시 문제를 놓고 10개월째 첨예하게 맞섰다.
여당의 한 관계자는 “지난 대선 당시 BBK 사건을 두고 양측의 공방이 워낙 치열하다 보니 두 사람 모두 감정적인 해소를 이뤄내지 못했다”는 분석도 내놨다. 최근 만난 여의도 정가의 한 소식통은 “MB는 박 전 대표로부터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를 듣고 싶어 했던 것 같다”며 “하지만 박 전 대표도 MB 정권 2년 5개월 동안 제대로 된 2인자 대접을 못 받았다는 서운함이 있어 그만큼 정서적 간격이 크다”고 말했다.
이준혁 한국경제 정치부 기자 rainbo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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