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놀이’, ‘자폭인터뷰’도 마다하지 않는다!

[Special ReportⅠ] ‘소통 경영’에 나선 삼성의 CEO들
흔히 ‘삼성’을 ‘관리의 삼성’이라고 한다. 글로벌 시장은 ‘아차’하면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살얼음판이다. 삼성그룹의 임직원 수는 20여만 명. 한국 축구가 그렇듯, 한국 기업의 강점도 스피드와 일사불란한 조직력이다.

스피드와 조직력을 극대화하는 데 ‘관리의 힘’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16강, 8강을 넘어 4강, 결승까지 오르기 위해서는 ‘창조적 플레이’가 더 요구된다.

더구나 ‘관리’라고 하면 왠지 일방주의와 획일주의의 뉘앙스도 없지 않다. 그래서일까. 삼성 CEO들이 대대적으로 ‘소통 경영’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 생생한 내용을 담았다.

윤부근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사장은 삼성 내부에서 ‘스타 CEO 블로거’로 통한다. ‘푸근월드’라는 이름부터 재미있다. 지난 6월 개설한 새내기지만 웬만한 글에는 댓글이 40~50개가 달릴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댓글 릴레이’가 인기 비결이다. 윤 사장은 시간이 날 때마다 직접 댓글을 다는 것은 물론 친한 임원 후배와는 ‘댓글놀이’까지 펼쳐 후배 사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

‘댓글놀이’ 하는 CEO

윤 사장이 블로그에 올린 ‘청춘, 사무엘 울만’이라는 글이다. “안녕하세요? 블로그를 개설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많은 분들이 방문하고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요즘 사원 여러분과 소통을 하면서 느낀 것 중 하나가 여러 사람들이 ‘사장님도 이러이러 하세요?’라면서 놀람과 공감을 표한다는 것입니다. 사장도 사람입니다. 오늘은 사장이 아닌, 인생 선배로서 후배님들께 제가 평소에 애독하는 시 하나 추천해 드립니다.”

시를 소개한 뒤 윤 사장의 ‘끼’가 발동했다. “어떻습니까? 사무엘 울만은 78세에 이 시를 지었다고 합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합니다.

늦었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언제나 열정을 갖고 도전하십시오. 일과 삶과 사랑과 여러분 스스로에게. 용기 있는 자만이 미인을 얻습니다. 저처럼요^ ^ ….”

이러니 당연히 임직원들의 댓글이 붙을 수밖에 없다. “블로그를 통해 소통을 하시다니! 유부근 사장님 최곱니다~. 싱글 검색창의 사장님 모습, 제가 기억하는 푸근한 미소 짓는 모습이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제가 찍는 영광을 주시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습니다^^)

‘윤부근’을 ‘유부근’으로 쓴 댓글 오타에 윤 사장이 가만있을 리 없다. “한 번 꼭 찍어주세요. 그러나 성은 바꾸지 말아요.” 깜짝 놀란 직원이 ‘죄송합니다. 어떻게ㅡㅜ’라며 또다시 댓글을 달았다. 윤 사장은 “나는 Digital Stress족이라 가끔 실수를 해요. 타법이 시원찮아서…”라고 답해 ‘푸근’ 윤 사장다운 면모를 보였다는 직원들의 평가가 쏟아졌다. 이렇게 댓글이 오가면서 ‘불통의 벽’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장원기 삼성전자 LCD사업부 사장은 ‘초보 블로거’지만 ‘귀엽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얼마 전엔 삼성의 블로거들에게 ‘큰 웃음’을 줬다. 장 사장의 ‘방명록을 발견하고…’라는 ‘귀여운’ 포스팅 제목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BLOG 주인으로서 사과 말씀 올립니다’로 시작하는 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얼마 전 ‘디지털 이민자’로 블로그를 만들긴 했는데, 사용법을 아직 다 파악하지 못했고, 게다가 방명록이 있는지 오늘 우연히 발견했고, 방문객들의 글을 보았다”는 것.

“첫 글을 올린 것이 6월 2일 선거 전날이니 벌써 한 달이 지나가는데 아직 6월이 지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광고입니다. 늦었지만 방명록에 모두 제 나름대로의 댓글을 달아뒀으니 다들 읽어보시고 사업부장의 무식함을 반면교사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여사원들과 ‘불닭 파티’를 하고 난 뒤의 후기도 화제를 모았다. 블로그에 따르면 6월 초 두 명의 여사원으로부터 10분 간격으로 비슷한 내용의 메일이 왔다는 것.

가까운 부서 라인에서 근무하는 친한 선후배 3명의 여사원이 블로그에서 50기 신입 사원들의 집들이 내용을 보고 장 사장에게 그간 불닭을 사먹으면서 모은 쿠폰으로 불닭을 살 테니 시간을 내달라는 내용이었다.

여사원들과 불닭을 먹은 뒤 후기는 이랬다. “이제 속도와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상사들의 생각과 판단의 기준과 행동이 많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PS : 그런데 혹시 임원, 간부 여러분들은 불닭이 무엇인지, 또 어떻게 먹는지 아십니까? 불닭을 먹기 위해서 위생장갑이 필요하다는 거 아십니까? 기숙사 스낵 집으로 가보십시오. 갈 때에 기숙사 사원들을 불러내 함께 가 보십시오.”
[Special ReportⅠ] ‘소통 경영’에 나선 삼성의 CEO들
소탈한 인터뷰로 ‘스타’ 대접받아

지성하 삼성물산 사장의 ‘세상인(世商人)’은 CEO 블로그 중 가장 오래됐다. 지 사장의 블로그에는 가족 이야기가 많다. 가족은 가장 사(私)적이고, 진심어린 대상이다. 그만큼 인간적인 대화를 나누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아버지’라는 글을 보면 2007년 간암과 뼈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촉촉이 담겨 있다. 지 사장은 “어린 시절 한때 엄하셨던 아버지를 보며 ‘커서는 우리 아버지 같은 사람은 안 될거야’라고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그렇지만 “나이를 먹고 아이를 낳으면서 아버지를 이해하게 됐고, 어느새 노인이 된 아버지를 존경하게 되면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간절해졌다”고 털어놓았다.

‘나의 삶, 나의 인생’이라는 글에서는 어린 시절 꿈 이야기가 담겨 있다. 지 사장은 “초등학교 6학년 시절 ‘신실하고 헌금을 많이 내는 교회 장로가 되는 것’과 ‘무역회사 사장이 되는 것’이라는 꿈을 적어 냈던 이야기를 꺼내면서 “실제 삼성물산의 사장이 된 지금, 말이라는 것이 참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고 적었다.

황백 제일모직 사장의 ‘공감(共感)’은 재미있는 사진 올리기로 유명하다. 후배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는 것을 즐기는 황 사장은 후배 사원들과 어울리는 자리가 많고, 그때마다 사진을 찍어 블로그에 올린다.

월드컵 기간에는 붉은 악마 뿔을 달고 응원했던 모습의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공감편지’라는 월례 편지를 통해 매달 이벤트를 블로그에 걸고, 재미있거나 의미 있는 메시지를 댓글로 단 후배들과 팀에는 피자와 야식, 각종 음악회 티켓 등 다양한 선물을 주는 것도 황 사장의 블로그가 인기를 끄는 이유 중 하나다.

곽상용 삼성생명 부사장의 블로그(그대를 사랑합니다)는 소소하고 즐거운 일상을 공유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경영진으로는 처음으로 사내 파워 블로거들과 ‘봄소풍’을 가서 직접 만든 요리를 선보이는 등 ‘소통’에 열의를 보이고 있다.

삼성의 CEO들은 언론과 인터뷰를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보수적인 분위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옛말이 돼 가고 있다. ‘미디어 삼성’이라는 사내 매체에 릴레이로 등장하고 있다.

첫 번째 인터뷰에 나선 최치훈 삼성SDI 사장의 기사가 나간 후 무려 94개의 댓글이 달리며 ‘직접 만나고 싶다’, ‘멘토가 되어 달라’, ‘이런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관계사 사장님들 좀더 알게 됐다’는 등 응원이 이어졌다.

그간 숨겨졌던 일화가 댓글로 달리기도 했다. 최 사장은 평소에도 일명 ‘엄침남(엄마 친구 남편)’으로 불릴 정도로 후배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소통으로 창조 경영 기반 마련
[Special ReportⅠ] ‘소통 경영’에 나선 삼성의 CEO들
최 사장의 지목을 받은 윤부근 삼성전자 사장이 두 번째 인터뷰에 나섰다. 밀어붙이는 업무 스타일로 알려졌던 윤 사장은 인터뷰 내내 소탈한 모습을 보여줬다는 평이다.

“업무 하실 때 굉장히 무섭다고 들었다”는 기자의 말에 “마케팅·인사 빼고 모든 부서에서 일해 봤기 때문에 목표를 높게 잡아요.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이지만, 사실 저도 알고 보면 푸근한 사람입니다”라고 답해 ‘윤푸근’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윤 사장은 또 자신이 고안했다는 LED주도 소개했다. “우리 TV 두께가 29.9mm 거든요. 그 두께에서 아이디어를 낸 건데, 먼저 0.9mm의 소주를 따릅니다.

그리고 29mm의 맥주를 따르는 게 LED주입니다. 중요한 것은 맥주 양은 오차가 있어도 되는데, 소주가 0.9mm를 넘으면 무거운 벌칙을 감수해야 합니다.”

삼성의 CEO들이 직접 블로그와 인터뷰를 통해 진솔한 모습을 보이는 등 소통에 적극 나서면서 그룹 분위기가 크게 달라지고 있다는 게 삼성 직원들의 전언이다.

삼성의 CEO들이 이처럼 소통에 적극적인 이유는 뭘까. 삼성에선 이전과 달라진 세대를 우선 꼽는다. 최홍섭 그룹 커뮤니케이션팀 상무는 “대리와 사원 등의 세대는 1990년대 말 인터넷 바람이 불면서 폭발적 인기를 끌었던 아이러브스쿨·싸이월드·블로그 등을 통해 소통해 오던 세대”라며 “당연히 대응하는 방식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룹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창조 경영의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의도가 담겨져 있다. 최 상무는 “획일화된 기업 문화, 일방적인 지시 형태의 수직 문화를 갖고서는 ‘창조 경영’은 불가능하다”며 “소통 경영은 ‘창조 경영’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삼성그룹 임직원들이 하루 업무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싱글’이라는 인트라넷 시스템에 들어가 로그인해야 한다. 이는 CEO도 마찬가지다. 인트라넷의 초기 화면은 매일 바뀌는데, 기존에는 계열사 광고가 실렸지만 최근엔 소녀시대와 카라 등 걸 그룹의 사진이 올라온다. CEO들이 걸 그룹의 사진을 보면서 하루를 시작하는 셈이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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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보기사내 방송이 ‘통하는 미디어’로 변신

드라마 시트콤 형식으로 재미 유도

‘오늘 방송도 명품이네요. 실제로도 이런 효율적이고 창조적인 조직 문화가 정착되길 기대해 봅니다.’‘아…. 감동이 쓰나미로 몰려오네요. 날로 좋아지는 사내 방송입니다.’‘정말 공감 백배네요. 마지막은 소름 돋듯 감동입니다.’

삼성 사내 인트라넷 ‘미디어 삼성’에 최근 올라온 사내 방송(SBC)에 대한 삼성 임직원들의 댓글들이다. 삼성의 사내 방송이 ‘소통’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기존의 사내 방송이 다소 딱딱하고 보수적이었다면 새롭고 재미있으면서 정보가 될 수 있는 방송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우선 방송 형식이 다양해졌다.

작년부터 시작한 드라마와 시트콤 등이 자리를 잡았다. 사내 방송은 보통 12분 안팎의 짧은 시간 안에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호흡이 긴 드라마와 시트콤 형식을 피해왔다.

하지만 사내 방송 관계자는 “자칫 무거울 수 있는 메시지를 소프트하고 재미있게 전달할 수 있는 강점이 있기 때문에 연작 형태의 시리즈물로 제작해 방송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체인지(Change)’, ‘추소(追疎:소통을 쫓다)’ 등의 프로그램은 상사와 직원이 서로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고 ‘존중’과 ‘배려’를 통해 수직적인 소통 문화에서 벗어나자는 취지였다. 얼마 전 ‘보고서’를 주제로 한 방송은 미드(미국 드라마) 형식을 빌려 ‘보고서 문화’의 문제점을 다루기도 했다.

임직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도 유도하고 있다. 퀴즈쇼·토크쇼·릴레이인터뷰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서다. 최근 ‘잔특근’을 주제로 적극 다룬 적이 있다. 토크쇼 형식으로 진행된 이 프로그램은 불필요한 잔특근의 원인을 찾아보고 건강한 회사 생활의 방향을 모색해 보자는 차원이었다.

삼성 커뮤니케이션팀 관계자는 “직원들이 상사나 동료의 눈치를 보지 않고 과감하고 솔직하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며 “새로운 소통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자랑했다.

권오준 기자 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