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비즈니스·MASOK 공동기획④ - 심정훈 월트디즈니컴패니코리아 상무

현상과 본질의 차이는 뭘까. 답은 간단할 수 있다. 눈에 보이느냐, 보이지 않느냐다. 하지만 보이는 현상을 통해 보이지 않는 본질을 찾아내는 일은 쉽지 않다. 소비자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눈에 보이는 소비자의 보이지 않는 마음을 읽는 것은 무척 까다롭다. 마케터는 이처럼 보이지 않는 소비자의 마음을 읽고 그들의 요구를 채워주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심정훈 월트디즈니컴패니코리아 상무는 유니레버·존슨앤드존슨 등에서 20년 동안 마케터로 일했다. 심 상무는 가장 기억에 남는 브랜드로 유니레버의 ‘도브’를 꼽았다. ‘도브’는 그에게 성공의 기쁨과 실패의 아픔을 동시에 느끼게 해준 브랜드였다.

그가 유니레버를 맡은 것은 1993년. 당시만 해도 ‘도브’는 연간 매출액이 수십억 원에 불과한 그저 그런 브랜드였다. 하지만 그가 ‘도브’의 책임자가 되면서 한때 1000억 원대로 성장했다. 비누로 시작해 샴푸·화장품 등으로 분야를 확장했고 그때마다 성공의 축포를 쏘아 올렸다.
[마케팅 고수의 비밀노트] “보이지 않는 소비자 마음 읽을 줄 알아야”
‘도브’ 브랜드 성공의 주역

그가 말하는 성공 요인은 두 가지다. 브랜드 철학을 지켰다는 것, 그리고 좋은 제품이었다는 것이다. 그는‘소비자의 잠재된 여성성을 일깨워 준다’는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부드러운 촉감, 유선형 포장, 강하지 않은 컬러 등을 고집했다. 가격도 경쟁 제품보다 높게 책정했다.

그러나 10년간 성공 가도를 달리던 브랜드가 한순간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는 그가 2002년 ‘도브’와 이별하는 계기가 됐다. 문제는 당시 새로 부임한 최고경영자(CEO)가 단기 성과에 집착했다는 것이다. 매출 증가율을 급하게 끌어올리기 위해 프로모션에 집중하면서 프리미엄 이미지가 무너졌다.

실망한 그는 경영진을 설득했지만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만다. 그는 “오만과 탐욕의 비참한 결말을 경험했다”고 했다.

존슨앤드존슨메디컬로 자리를 옮긴 그는 혈당 측정기 사업부를 책임졌다. 그는 한껏 고무됐다. 당뇨 환자들이 체계적으로 관리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데서 보람을 찾았다.

존슨앤드존슨의 혈당 측정기는 가정에서 손쉽게 혈당을 측정할 수 있는 제품이었다. 차별화된 효용성이 있는 데다 당뇨 환자가 많기 때문에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기대대로 초기 성과는 상당했다. 전국 의원 600여 곳과 약국 4500여 곳에 입점시켰다. 얼마 되지 않아 재구매 요청도 들어왔다. 하지만 “어느 순간 시장의 움직임이 거의 멈췄다”고 했다. 재고가 창고에 차곡차곡 쌓여 갔다.

실패의 원인은 이랬다. 일반 소비자들은 당뇨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낮았고 일반 의원은 혈당 측정기를 사용하면 환자들이 병원을 찾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약국에서도 고가의 혈당 측정기를 경미한 환자에게 파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는 “애초 겨냥했던 초기 환자가 아닌 어느 정도 진행된 환자들에게만 노출됐다”고 실패담을 풀어놓았다.

하지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는 혈당 측정기에서 실패한 후 꼭 지키는 원칙을 만들었다. “리드하되 다른 사람들도 결론을 도출하는 데 충분히 참여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것이다. 그는 “반대 의견이 있는 게 전혀 없는 것보다 백 배 천 배 더 안전하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생각은 “똑같은 케이스는 단 하나도 없다. 따라서 정답도 없다”는 그만의 ‘마케팅 론’에서 기인했다. 정답이 없는 문제에 대해 모든 사람이 똑같은 해결책을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독단적으로 내린 결론의 위험은 상상외로 크다”며 “많은 사람이 스스로 참여해 결론을 내리면 실행에서 참여도가 높아져 오히려 일의 속도와 효율이 높아진다”고 덧붙였다.

이상과 현실의 조화 추구해야


이상과 현실은 늘 충돌한다. 이상만을 좇는 것도, 그렇다고 현실에만 급급해서도 곤란하다. 브랜드 관리도 마찬가지다. 장기 전망만을 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단기 이익만 추구해서도 안 된다.

그 또한 “이상과 현실의 조화”를 특별히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부단한 학습과 겸손이 필요하다고 도움말을 줬다. 물론 자기 분야만 공부해서는 곤란하다. 다양한 분야에서 박학다식해야 한다. 그래야만 조화로운 사고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더구나 “마케팅은 마케팅 부서만의 영역이 아니라 회사 전체가 나서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렇게 하려면 영업·개발·생산 등 모든 부서를 앞에서 주도해야 하는데, 그들의 협조가 반드시 따라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의 영역에 대한 이해와 전문 지식 없이 그들을 설득할 수는 없다. 그는 “재무제표를 읽지 못하면 학원이라도 다녀야 한다”며 “부지런히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더불어 그는 “겸손하게 그들을 만나야 한다”며 “겸손은 친구를 만드는 강력한 무기”라고 했다.

그가 몸담고 있는 월트디즈니는 미키마우스 캐릭터와 디즈니랜드로 유명한 글로벌 기업이다. 그가 하는 일은 소비재 상품의 라이선스 업무다. 월트디즈니의 캐릭터를 활용하기 위한 기업들과 제휴하고 그들의 마케팅을 돕는다. 물론 로열티가 주 수입원이다.

분야는 다양하다. 의류와 액세서리뿐만 아니라 출판·식품 등 거의 모든 소비재가 월트디즈니의 사업 영역이다. 월트디즈니의 철학은 ‘아이가 있는 가족의 꿈과 즐거움’이다. 만화의 경우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내용의 만화와는 계약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고 한다.

식품도 아이들 몸에 해로운 정크푸드는 배제한다. 그는 월트디즈니가 100년 동안 장수해 온 비결을 여기서 찾는다. 향후 그는 “좀더 체계적인 공부를 통해 마케터로서의 부족한면을 채우고 싶다”며 “보이지 않는 소비자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마케터로 남고 싶다”고 말했다.
[마케팅 고수의 비밀노트] “보이지 않는 소비자 마음 읽을 줄 알아야”
심정훈 상무는…

1962년생. 87년 서강대 사회학과 졸업. 87년 한국리서치 입사. 93~2002년 유니레버 근무(마케팅 이사). 2002년 존슨앤드존슨메디컬 상무. 2005년 하나로텔레콤(현 SK브로드밴드) 마케팅전략실장(상무). 2006년 월트디즈니컴패니코리아 상무(현).

권오준 기자 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