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의 전쟁 벌이고 있는 러시아
“보드카는 생활필수품이 아니다. 결코 쌀 필요가 없는 품목이다(러시아 정부 관계자).”성인 남성의 절반 가까이가 알코올 중독으로 추정되는 러시아에서 대대적인 술과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세계보건기구(WHO) 추정 1인당 연간 18리터의 알코올을 소비하는 세계 최대의 음주 대국 러시아에선 음주로 인한 피해가 상상을 초월한다. 매년 50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알코올 중독이나 술로 인한 각종 질병으로 사망하는 것으로 추정될 정도인 상황이다. 각종 술로 인한 사회 범죄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러시아 정부는 각종 강력한 음주 축소 정책을 들고 나왔다. 최근 밤 11시부터 아침 7시까지 소매점에서 술 판매를 금지한 데 이어 술 판매 금지 시간을 오후 9시로 앞당기는 방안을 추진하고 나섰다.
주요 국제 행사장에서도 술이 자취를 감췄고, 공항과 기차역 등 공공장소에서 술 판매를 허용하는 문제가 심각한 사회적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러시아 정부가 충격요법과 주류 가격 상승을 병행하면서 러시아인들의 보드카 사랑을 끝내려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 최근 러시아 리아노보스치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보건 당국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음주 감소’ 캠페인의 일환으로 오후 9시 이후 소매점 술 판매 금지를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6월 6일 오후 11시 이후 주류 판매를 막았지만 실효성이 적다는 판단에서다. 러시아 보건 당국은 “사람들이 잠든 시간에 술 판매를 금지하는 것으로는 큰 효과를 보기 어렵다”며 “술을 특별히 허가받은 상점에서만 파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밤 11시 이후 주류 판매가 금지됐지만 러시아 사회 곳곳에선 암암리에 술 거래가 계속되고 있어 정책 실효성이 의심받고 있는 상황이다.
콤소몰스카야프라브다는 “술 판매 금지 조치에도 불구하고 툴레지역 같은 곳에선 밤 11시 이후에도 어렵지 않게 술을 살 수 있다”고 지적했고, 노보스치블라디보스토카도 “극동 프리모르이 지역 같은 경우에는 자체적으로 밤 10시부터 오전 9시까지 주류 판매를 금지하고 있지만 실효성은 낮은 편”이라고 언급했다.
러시아 남성 15%는 두주불사형
일반 소매점뿐만 아니라 주요 국제 행사장에서도 의전용 술마저 찾기 힘들어지고 있다. 최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국제 경제 콘퍼런스’에선 술과의 전쟁을 진두지휘 중인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기조연설을 하는 것을 감안, 보드카를 행사장 반입 금지 품목에 올렸다. 스타니슬라프 보스크레젠스키 러시아 재무차관은 “약한 와인보다 알코올 도수가 센 모든 음료가 행사장에 들어오지 못했다”고 말했다.
올 초 500㎖ 보드카 최저가격을 89루블(약 3400원)로 책정, 지난해보다 최저 가격을 두 배나 올렸던 러시아 정부는 주류세를 계속 인상해 국민들의 술 소비를 줄인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 2013년까지 보드카 최저가격은 150루블, 215루블, 280루블 식으로 껑충 뛸 예정이다.
여기에 공항과 기차역 등에서 높은 알코올 도수 술 판매를 금지하는 정책을 놓고 대법원에서 논쟁이 벌어지는 등 러시아 전역이 술과의 전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한편 이 같은 러시아 정부의 전방위적 ‘술과의 전쟁’에 대한 러시아 국민들의 저항과 변함없는 술 사랑도 만만치 않다. 여론조사 기관 로미르의 최신 조사 결과에 따르면 러시아 국민의 55%가 여전히 한 달에 최소 한 병의 보드카를 구입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성인 남성의 40%가량은 한 달에 2∼3회 이상 만취 상태를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음주를 가장 많이 하는 연령은 46∼55세. 이 연령대 남성 15%는 매주 보드카를 인사불성이 될 때까지 마시는 두주불사형으로 분류됐다.
여기에 급격한 가격 인상으로 생계에 위협을 받게 된 보드카 업체들의 반발도 적지 않다. 중소 보드카 제조업체들은 “정부의 가격 인상 정책은 간신히 수지를 맞추는 상태인 소규모 업체들이 망하고 몇몇 소수의 대형 업체로 통합되는 결과만 가져올 것”이라며 “주세가 급격하게 인상되면 불법 밀주가 급증하고 세수 감소의 부작용만 팽배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선 러시아 주류 업체의 로비력을 감안할 때, 정부가 계획 중인 보드카 가격 인상안이 계획대로 시행되지 못할 것이란 전망도 적지 않다.
김동욱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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