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처 24시

공공요금 원가 정보 공개, 건강보험 비급여 비용 정보 공개, 가격 담합에 대한 감시 강화…. 정부가 지난 5월 24일 발표한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은 ‘물가 안정 정책 방향’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서민 생활 개선을 하반기 경제정책의 주요 목표로 설정한 정부는 물가 상승을 억제하기 위한 정책을 대거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경기 회복의 과실이 서민층에까지 가기 위해서는 물가 안정을 통해 서민들의 생활비 부담을 줄이는 것이 시급하다고 본 것이다.
남대문시장
/강은구기자  egkang@  2008.08.26
남대문시장 /강은구기자 egkang@ 2008.08.26
정부가 밝힌 계획에는 전에 볼 수 없던 다양한 정책들이 포함됐다. 우선 공공요금부터 붙들어 맨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서민 생활과 밀접한 주요 공공요금의 원가 정보를 7월 중 공개하기로 했다.

원가를 공개함으로써 공공 기관들이 원가에 비해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요금 인상을 추진할 수 없도록 하겠다는 의도다.

전기·가스·상수도·고속도로통행료·철도·우편 등 6가지 공공요금이 1차 원가 공개 대상이다. 이와 함께 공공 기관의 생산성 제고 및 비용 절감 노력을 전제로 일정 기간 적용될 가격 상한을 설정, 그 이상으로는 가격을 올리지 못하도록 하는 중기 요금협의제를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민간 부문이라고 해서 물가 상승을 최소화하려는 정부의 예봉을 피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국가 건강 정보 포털(health.mw.go.kr)에 건강보험 비급여 비용 정보를 게시해 병·의원 간에 가격 경쟁을 유도하기로 했다. 예를 들면 쌍꺼풀 수술에 드는 비용이 ‘A병원은 얼마, B병원은 얼마’ 하는 식으로 인터넷에 띄워 소비자들이 비교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얘기다.

기업들도 골치가 아프게 생겼다. 정부는 휴대전화 초당 요금제를 확대할 방침이다. 현재 이동통신사 중에서 SK텔레콤만이 10초 단위가 아닌 1초 단위로 요금을 부과하고 있는데 KT와 LG유플러스에 대해서도 연내 1초 단위 요금제를 시행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휴대전화 초단위 요금제 확대

정부는 또 서민 생활과 밀접한 품목에 대해 업체 간 가격 담합 등 불공정 행위가 이뤄지지 않는지 집중 감시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생필품 가격 정보 공개 대상을 확대하고 서민들의 지출 비중이 높은 30개 품목을 선정, 국내외 가격 차이까지 공개하겠다는 게 정부의 방침이다.

정부는 업체 간 가격 담합만 근절해도 물가상승률이 크게 낮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윤종원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은 “한국은 선진국에 비해 기업 간 가격 담합이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다”며 “이 때문에 구조적으로 물가상승률이 선진국보다 1%포인트 정도 높다”고 말했다.

정부가 이처럼 물가 상승을 억제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마련한 것은 기본적으로 하반기에는 상반기보다 물가를 자극할 수 있는 요인이 많다고 보기 때문이다.

경기 회복과 함께 수요가 늘어나고 있고 국제 유가 등 원자재 가격도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요인들을 적절히 통제하지 못하면 자칫 경기 회복의 온기가 서민층에 채 도달하기도 전에 물가가 서민 가계를 옥죌 수 있다.

문제는 물가 안정에 치중한 나머지 한국 경제의 성장 기반을 강화하고 경제 체질을 개선할 수 있는 과제들이 뒤로 밀렸다는 점이다. 정부는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에서 그간 중요하게 다뤄왔던 서비스산업 선진화와 공공 기관 선진화 등에 대해서는 방점을 찍지 않았다.

지난해 말 2010년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할 때만 해도 중요하게 취급했던 투자 개방형 의료 법인(영리 의료법인) 도입 계획은 하반기 정책 방향에서는 아예 제외됐다.

이처럼 정부 정책 방향의 무게중심이 서민 생활 안정 쪽으로 크게 기운 것은 역시 6·2 지방선거 패배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단기적으로는 국민들에게 고통을 주더라도 장기적으로는 국가 경제의 경쟁력 강화와 체질 개선에 도움이 되는 정책들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현시점에서 대통령과 정부가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포퓰리즘(대중 영합주의)”이라며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국민들의 반대가 있더라도 추진력 있게 밀고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유승호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