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도주의 필요충분조건

주식시장의 역사를 뒤돌아보면 상승 국면에는 반드시 그 상승장을 이끌고 견인해 가는 대장 주식들이 있는데, 이를 시장 주도주(leading stocks)라고 부른다. 시장 주도주의 탄생은 당시의 경기 상황, 증시 환경(금리·환율·유동성 등), 정부 정책, 기업 실적, 수급, 심리 등이 어우러져 탄생한다.

1970년대 중동 건설 붐에 힘입은 건설주, 1980년대 후반 3저 호황기의 ‘트로이카(증권·건설·무역)’ 장세, 1992년 말 증시 개방으로 외국인 투자가 시작되면서 생겨난 저 PER주 장세, 1994년 블루칩 장세, 1999년 정부의 정보통신 육성 정책에 기인한 정보통신, 인터넷 기업 등 성장주 장세(일명 닷컴 랠리), 이들의 거품이 꺼지면서 그 반작용으로 시작된 2001년의 가치주 장세(롯데칠성·농심·태평양·신세계), 그리고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조선업 호황을 반영한 중공업 장세(조선·조선기자재)가 있다.

또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위기 이후 글로벌 경쟁력이 부각된 한국의 정보기술(IT) 및 자동차 주식들이 최근 화려하게 주도주의 바통을 이어가고 있다.

필자가 지켜본 시장 주도주의 특성은 시세의 연속성이 강하고 거래량과 주가의 움직임 면에서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상승장을 지탱하고 견인한다는 점이다.

실적이나 가치가 검증되지 않은 채 투기적으로 움직이는 테마주가 일시적으로 시세는 화려할 수 있어도 바람이 끝나면 원위치하는 것과 대조적인 모습인 것이다.
[최남철의 투자 X파일] IT·자동차 더 간다…‘꿈’이 있으니까
시장은 주도주가 이끌어

금년 들어 업황이 호조를 보이는 IT·자동차 및 부품주의 질주가 눈부시다. 일부에서는 저점 대비 몇 배가 올랐느니, 실적 대비 주가의 상승 속도가 너무 가파르니 하면서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그래서 이들 주식에서 차익을 실현하고 주가가 바닥권에 있는 낙폭 과대 주식들에 관심을 보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 주가에 대한 예측은 대개의 경우 지나 보아야만 그 정답을 알 수 있지만 주식시장의 역사는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과거의 경험을 통해 미래에 대한 선견지명을 얻기도 한다.

필자가 지켜본 바에 따르면 시대별로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급신장하는 기업들이 주도주로 부각된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5년부터 2007년에 걸쳐 화려하게 전개된 조선주 랠리다.

중국 경기의 호황과 글로벌 선박 교체 수요가 맞물리면서 선박 수주가 급증, 현대중공업·현대미포조선·태웅·현진소재 등 조선 및 조선기자재 주식들의 주가가 3년 동안 평균 18배나 급등한 바 있다.

필자도 펀드를 운용하면서 이들 주식이 너무 올랐다고 판단해 중간에 팔았는데 팔고 난 뒤에도 몇 배나 더 오르는 황당함을 겪어 보았다.

그래서 일단 주도주에 올라탔다면 갈 때까지 가보는 것이 현명하다. 가장 힘센 말을 탔다면 그 말이 힘이 소진될 때까지 가보자. 필자도 숱하게 경험해 보았지만 중간에 파는 족족 후회하게 되는 것이 주도주다.

더욱 속이 상한 것은 잘나가는 주도주를 팔아 바닥을 기고 있는 안전(?)해 보이는 주식을 샀는데 주도주는 더욱 오르고 안전해 보이는 주식은 더 빠지는 상황이다. 이중으로 손해가 나니 화병이 날 법도 하다.

일시적으로 빠지는 듯하다가 다시 고개를 들고 신고가를 내면서 달리는 주식들이 주도주다. 탁월한 실적에 시장의 수급과 심리가 쏠리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주도주가 굳건하게 버티고 있는 주식시장은 전형적인 상승장이고 강세장이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주도주의 체력이 다 소진되고 나면 그 강세장도 종언을 고하는 경우가 많다.

그 무렵 개별 주식들의 마지막 ‘이삭줍기’가 진행되곤 하는데 이는 주식시장의 가을걷이(추수)가 다 끝나고 겨울이 임박했다는 것을 예고하는 불길한 조짐이다.

모든 주식이 다 그렇듯이 주도주도 상승 사이클이 마무리되면 빠지게 되어 있다. ‘달도 차면 기울듯’ 무한 질주를 계속하는 주식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잘나가는 시장 주도주에서 언제쯤 하차해야 현명할까.

몇 가지 예고 지표가 있다. 첫째, 주도주군의 실적 특히 영업이익이 언제 정점(Peacked Out)에 달하는지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분기별·연도별 실적을 면밀히 살펴 영업이익의 크기는 물론 그 증가율(모멘텀)이 언제 정점을 치고 하강하는지 눈여겨봐야 한다. ‘꿈의 기울기’가 하강으로 기울면 재미없는 주식이 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실적과 가치 대비 주가가 얼마나 올랐는지(밸류에이션)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 시장 주도주의 경우 마지막에 가면 군중심리의 쏠림 현상에 의해 적정 가치 대비 주가가 훨씬 더 올라 오버슈팅하는 경우가 많다.

차분하고 냉철하게 주가가 수익이나 자산 가치 대비 적정한지, 역사적으로 형성된 밸류에이션 범위를 이탈하고 있는지 파악해 보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시장의 상승 여력과 체력이 얼마나 남았는지도 가늠해 보아야 한다.

만일 주도주의 밸류에이션이 과도하게 높아져 있고 향후 실적도 증가세를 멈추고 하강이 예상되는 국면이라면 과감히 주도주와 이별을 고해야 한다.

다만 밸류에이션이 다소 높아도 향후 1, 2년 이익의 증가세를 감안한 밸류에이션이 부담스럽지 않다면 겁먹을 필요는 없다. ‘꿈’이 뒷받침되고 있어 상승 흐름이 좀더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이익의 증가세가 다소 주춤해도 밸류에이션이 시장 대비 현저히 낮다면 버블이 붕괴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조급하게 매도할 필요는 없다.

5년 전의 조선주 장세를 돌이켜 보자. 당시 조선주들의 실적 피크는 2008년이었는데 주가는 2007년 11월에 ‘대상투’를 찍고 하락으로 전환했다.

당시 현대중공업의 주가수익률(PER)은 20배였고 선박용 단조 회사인 태웅은 30배에 거래되고 있었다. 이듬해의 실적이 역사적 정점인데 주가는 겁도 없이 너무 높이 올라 있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2008년 한 해 동안 양사의 주식 모두 3분의 1토막이 되어 뒤늦게 매수한 투자자들에게 크나큰 고통을 안겨 주었다. 주도주의 투자 시점을 오판한 데서 빚어진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삼성전자 영업익 2012년까지 계속 늘어

혹자는 한국의 IT·자동차의 주가가 너무 올라 조만간 주도주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다행히도 IT·자동차 주식들의 밸류에이션이 아직은 부담스러운 수준이 아니다.

삼성전자의 내년도 예상 PER가 7.9배 수준이고 하이닉스는 4배 수준이다. 삼성전기와 삼성SDI는 15배 수준이다. 게다가 하이닉스를 제외한 이들 주식들의 이익은 완만하게나마 2012년 까지는 증가하는 것으로 기대된다.

현대차와 기아차의 내년도 PER는 각각 6.3배, 5.4배 수준이다. 두 회사 모두 내년에도 이익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주가 수준은 턱없이 낮게 형성돼 있다. 이 상황에서 주가가 단순히 많이 올랐다는 이유만으로 주도주의 교체나 이탈을 언급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물론 제 아무리 주도주라고 해도 중간 중간 반락을 거치며 과열을 식히면서 상승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주변 주식들이 골 메우기를 하면서 순환 상승을 하고 그 과정이 일단락되고 나면 다시 주도주들이 힘차게 내달린다. 그런데 이 중간 반락기를 마치 주도주 변화로 착각해 주도주에서 하차해 버리면 조만간 ‘주도주 버스’는 더 멀리 달아나 버리고 만다.

주도주를 자꾸 매매하다 보면 수량은 수량대로 줄어들고 단가만 높아지는 경험을 필자도 많이 해 보았다. 따라서 핵심 주도주는 주식시장의 상승 사이클이 다할 때까지 뚝심 있게 들고 가는 전략이 유효하다. 더구나 최근 스마트폰과 스마트 TV, 태블릿 PC를 놓고 애플·구글·삼성 간의 무한 경쟁이 시작되고 있다.

그 모든 제품의 핵심 부품을 삼성과 LG그룹이 만들고 있다. 사상 유례 없는 한국 IT 산업의 호황 사이클이 시작되고 있다. 근시안적 사고로 큰 것을 놓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5년 전의 조선주 장세가 ‘돌이 뜨고 나뭇잎이 가라앉는’ 역설적인 시장이었다면 지금은 자연의 순리대로 ‘나뭇잎은 뜨고 돌은 가라앉는’ 순리적 시장임을 명심하고 대응해야 한다.

약력 : ‘꿈의 기울기에 투자하라’의 저자. 1988년 국민투자신탁 펀드매니저를 시작으로 푸르덴셜자산운용, 마이애셋자산운용 거쳐 현재 새로다시투자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

최남철 증권 칼럼니스트 serodas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