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싱글’이면 경영도 ‘싱글’일까?

골프를 잘하면 경영도 잘하는 것일까. 미국의 골프 전문 잡지 골프다이제스트는 2년마다 포천 선정 500대 기업과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선정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CEO들의 골프 핸디캡’을 조사해 발표한다.

조사 결과를 보면 최고경영자(CEO)들이 골프를 하는 것은 비즈니스에 도움이 되고 경영에서도 좋은 실적을 낸다는 식으로 마무리된다. 그 사례로 골프를 즐기지 않는 CEO들이 있는 회사들의 주식 가치가 떨어졌다는 구체적인 사실까지 증거로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 미국의 경제 위기 이후 골프를 잘하는 CEO들이 과연 경영에서도 ‘싱글’ 실력을 발휘하는지에 대해 의문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그동안 골프 핸디캡으로 상위권을 유지해 왔던 CEO들의 실적이 좋지 않다. 예를 들어 모기지 보험 업계의 거물인 MGIC(Mortgage Guaranty Insurance Corporate) 인베스트먼트의 커트 컬버 회장 겸 CEO는 골프 핸디캡이 2.4로 지난 2004년 조사에서 랭킹 1위를 달렸던 인물이다.

조사 때마다 랭킹 1, 2위를 다투던 컬버 회장의 MGIC 인베스트먼트는 미국을 경제 위기로 몰아넣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회사다. 모기지 상품 자체가 부도덕해 서민들에게 큰 피해를 입힌 데다 회사 가치마저 급락시켜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손실을 입혔다.

컬버 회장은 위스콘신과 네브래스카·플로리다 주에 각각 골프장 회원권을 보유하고 있으며 CEO로 재직하는 동안 자신의 핸디캡을 더 낮출 정도로 열심히 골프를 즐긴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또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의 스콧 맥닐리 CEO는 CEO 중에서 골프 실력으로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를 연상시킨다. 그의 핸디캡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1982년 썬을 창업한 맥닐리 CEO는 한때 자바를 개발하는 등 실리콘 밸리의 대표 주자 격이었지만 2006년 실적 부진으로 교체되는 불명예를 안았고 회사는 2009년 오라클에 인수됐다.

맥닐리 CEO는 골프 외에 아마추어 하키 팀에서도 열심히 활동했다고 한다. 취미 활동으로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긴 사례라고 할 수 있다.
Tiger Woods hits a chip shot on the practice green during practice for The Memorial golf tournament at Muirfield Village Golf Club Tuesday, June 1, 2010, in Dublin, Ohio. (AP Photo/Jay LaPrete)
Tiger Woods hits a chip shot on the practice green during practice for The Memorial golf tournament at Muirfield Village Golf Club Tuesday, June 1, 2010, in Dublin, Ohio. (AP Photo/Jay LaPrete)
좀 더 창조적인 시간 활용 필요

미국남자프로골프협회(PGA) 투어 2부투어의 타이틀 스폰서를 맡고 있는 네이션와이드(Nationwide) 보험사의 윌리엄 위르겐슨 CEO는 2001년 CEO에 오른 뒤인 2002년에 3.8이던 핸디캡을 1점대로 줄이기도 했다.

2부투어를 후원하면서 날고 긴다는 프로들과 빈번한 라운드를 한 덕이라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 CEO직에서 물러났다.

경제 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평균 5시간 이상 소요되는 라운드 시간은 CEO들에게 적합한 운동이라고 하기 어렵다. 국내 라운드 시간은 골프장 이동 시간과 라운드 후 식사 시간까지 포함하면 족히 10∼12시간은 소요된다.

특히 핸디캡을 ‘싱글’의 기준인 10 이하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평균 주 2∼3회 라운드를 해야 한다. 경영과 골프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또 대다수 골퍼들이 90∼100타를 넘나드는 초보들이기 때문에 너무 골프를 잘하면 오히려 비즈니스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골프 실력이 출중하면 초보자들을 피하게 되고 비슷한 실력자를 만나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비즈니스와 별로 관계없는 사람들과 라운드를 하는 경향이 많다.

최근 잘나가고 있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 회장이나 구글의 공동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유튜브의 CEO이자 설립자인 채드 헐리, 트위터 창립자 비즈 스톤 등이 골프를 즐겨 한다는 기사를 거의 본 적이 없다.

투자자의 귀재로 꼽히는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은 핸디캡의 20 정도로 평범한 ‘주말 골퍼’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도 24 안팎에 불과하다. ‘골프를 잘하면 경영도 잘한다’는 말은 더 이상 적합한 표현이라고 할 수 없다. 그 반대로 골프 실력은 ‘100돌이(18홀 기준으로 100타 안팎을 치는 실력을 빗댄 속어)’에 불과하지만 경영은 ‘싱글’을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골프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CEO는 문제가 있다. 방만한 취미 활동보다 좀더 창조적인 시간 활용이 요구된다. 골프는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기르는 데 도움을 주는 활력소 정도로 가볍게 접근해야 한다.

마이애미(미 플로리다 주)= 한은구 한국경제 문화부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