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처 24시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계절적 요인으로 건설업 고용이 늘어난 것 같습니다. 건설업 경기가 좋다고 보기는 어렵고….”은순현 통계청 고용통계과장은 지난 6월 9일 있었던 5월 고용 동향 브리핑에서 미분양 아파트가 늘어나는 등 건설 경기가 좋지 않은데 건설 업종의 취업자 수가 늘어난 이유가 무엇이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답하던 중 말끝을 흐렸다.
금융 당국이 건설사 구조조정을 추진 중인 것이나 미분양 아파트가 좀체 줄지 않는 것을 보면 건설 경기가 좋지 않은 게 분명한데 5월 한 달 동안 건설업 부문의 고용이 전년 동월 대비 4만6000명이나 늘어난 현상을 설명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이와 같은 일은 통계청이 각종 통계를 발표할 때 종종 벌어진다. 고용이 늘었으면 늘어난 이유가, 줄었으면 줄어든 이유가 궁금하지만 통계청이 모든 궁금증에 대해 명쾌한 설명을 내놓지는 못한다.
다음 달에는 어떻게 되겠느냐는 등의 전망과 관련해서는 거의 ‘노코멘트’에 가까운 대답을 내놓는다. 이번 달의 흐름이 계속되겠지만 변수가 있기 때문에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다는 식이다.
통계청이 이처럼 경제 동향에 대해 유보적이거나 분명하지 않은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통계청은 객관적인 자료를 제시하는 역할에 치중하고 통계에 대한 해석은 최소화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장기간의 시계열을 분석하다 보면 앞으로의 흐름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지만 단정적인 언급은 하지 않는다.
통계청의 상급 기관으로서 정책을 직접 수립하고 집행하는 기획재정부는 통계에 대한 해석을 어느 정도 내놓는다. 하지만 그것도 이번 달에 잘 됐으니 다음 달에도 잘 될 것이라는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 통계로 나타날 때도 있다. 해석하지 않으려고 해서가 아니라 해석 자체가 힘든 경우다. 건설 경기가 부진한데 건설 부문 고용이 늘어난 것도 그런 경우에 가깝다. 물론 왜 그런지 이유를 밝히겠다고 따지고 들면 못 밝힐 건 없다. 문제는 숫자 하나하나에 대해 명확한 해석을 달기에는 정부와 현장의 거리가 너무 멀다는 점이다.
6·2 지방선거 결과도 한 사례
이런 사정을 보면 정부 정책이 ‘탁상공론(卓上空論)’이라는 비판을 받곤 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국민 개개인보다 국가 전체를 보고 정책을 펼쳐야 하는 정부 입장에서는 전체적인 흐름과 평균값을 정책의 근거로 삼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현장의 구체적인 상황보다 통계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평균치를 바탕으로 나오는 정책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 크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 작지만 그렇다고 모든 국민에게 맞춤옷을 만들어 주기도 어려운 게 정부의 입장이다.
정부가 유념해야 할 것은 평균치에 맞는 옷을 만들었다고 해서 할 일이 끝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5월 고용 동향을 살펴보면 취업자 수가 전년 동월보다 58만6000명 증가해 2002년 4월 이후 최대 증가 폭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 수치만 보고 고용 시장에 문제가 없다거나 더 이상 일자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식으로 해석해서는 곤란하다.
전체적인 취업자 수 증가에도 불구하고 20대 취업자는 5만2000명이 줄었다. 청년층은 여전히 일자리를 잡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얘기다. 통계상 실업자로 분류되지 않지만 구직 단념자와 취업 준비자가 1년 전보다 늘어난 점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대목이다.
6·2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크게 패한 것도 평균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경제지표를 놓고 봤을 때 이번 선거는 여당이 매우 유리한 가운데 진행됐다. 1분기 경제성장률은 7년여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고용 사정도 꾸준히 개선됐다.
경기가 빠르게 회복되는 가운데서도 물가상승률은 연 2%대로 안정돼 있었다. 유권자들이 경제만 보고 투표하는 것은 아니지만 경제 성적표가 좋다는 건 분명 여당에 유리한 조건이다.
정부와 여당 입장에서는 경제지표가 좋은데 민심이 돌아선 것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수치는 어디까지나 ‘평균치’일 뿐 국민 개개인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정책을 세울 때도, 정책의 효과를 평가할 때도 통계만 보고 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유승호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us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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