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스포츠 종목도 경쟁 시대

최근 미국의 골프 업계는 충격적인 자료를 접했다. ‘내셔널 골프 연맹’에 따르면 6∼17세 골퍼의 수가 지난 2005년 380만 명에서 2008년 290만 명으로 24%가 줄어들었다.

골프 업계는 이 기간 동안 어린 골퍼들을 육성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 운영에 심혈을 기울여 온 터라 조사 결과에 대한 실망은 극에 달했다.

반면 테니스를 치는 청소년들은 지난 2003년 680만 명에서 2009년 950만 명으로 늘어났다. 골프 업계는 골프의 복잡한 룰과 용어, 오랜 라운드 시간 등이 팬들의 외면을 초래해 골프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프로스포츠 종목에서 인기의 부침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신생 스포츠인 ‘K-1 격투기’가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스케이트보드·서핑·스노보드·BMX(자전거 장애물 경주) 등이 젊은 층들을 대상으로 인기를 넓혀가고 있다. 한마디로 기존 스포츠 종목들이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언제라도 도태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YONHAP PHOTO-0046> MOBILE, AL - MAY 16: Se Ri Pak of South Korea hits her drive from the fourth tee during final round play in the Bell Micro LPGA Classic at the Magnolia Grove Golf Course on May 16, 2010 in Mobile, Alabama.   Dave Martin/Getty Images/AFP
== FOR NEWSPAPERS, INTERNET, TELCOS & TELEVISION USE ONLY ==
/2010-05-17 00:44:48/
<저작권자 ⓒ 1980-2010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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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인기가 높은 여자프로골프는 미국에서 사실상 존재감을 잃어버렸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투어를 사실상 점령하고 있는 한국 선수들의 탓이 가장 크다.

미국 골프계와 언론이 한국 선수들을 비난하는 대표적인 이유는 도무지 팬들과 접촉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 선수들이 우승을 휩쓸며 투어를 이끌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투어를 죽이는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 선수들이 팬들과 접촉하지 않는 데는 의사소통의 어려움 때문이지만 언어의 문제로만 모든 것을 치부할 수는 없다. 국내에서 뛰고 있는 20대 초반의 여자 프로 선수들의 모습은 흡사 ‘스윙 머신’을 보는 듯하다.

부모의 엄격한 지도 아래 앞만 보고 달려온 그들의 모습에는 팬과 스폰서들을 위한 배려나 노력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들은 오직 이번 대회 상금이 얼마인지에만 관심이 쏠려 있다.

우승 상금이 억대를 넘나드는 대회를 한 시즌에 20개 정도 치르는 프로골퍼들은 지나친 호사를 누리고 있다. 이들은 국내 최고 인기 종목이라는 프로야구의 비슷한 연배 선수들이 받는 연봉의 배 이상을 벌고 있다. 이러한 기형적인 프로골프의 인기가 오랫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는 이는 드물다.

팬과 지속적 유대 관계 형성해야

남아공 월드컵을 SBS가 단독으로 중계한 사건은 향후 중계권료를 폭등시킬 소지를 안고 있는 데다 방송사 간의 신의를 저버렸다는 도덕적인 문제로 비난을 받고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변화를 간파해야 한다.

중계권 분쟁은 방송사들이 예전처럼 ‘갑’의 입장에서 스포츠 콘텐츠를 좌지우지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줬다.

스포츠 중계가 가능한 미디어들이 늘어나면서 중계권이 어디로 갈지 예측불허가 됐다. 기존 방송사들은 적극적으로 중계권을 찾거나 방어하지 않으면 중계 시장에서 위치를 잃어버릴 수 있다. 대회 주최 측이나 프로 리그 관계자가 방송사로 찾아와 중계를 부탁하던 시절은 사실상 끝난 셈이다.

프로야구와 프로축구 등 인기 종목들은 생존경쟁에서 한발 물러서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스포츠는 이제 국내 경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유명 프로리그와도 경쟁을 요구하고 있다. 팬들은 실시간으로 영국의 프리미어리그, 미국의 메이저리그 등을 접하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경기를 보는 팬들은 국내 경기에 등을 돌릴 수 있는 여지가 높다.

프로스포츠는 팬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면 언제라도 ‘마이너 리그’로 내몰릴 수 있는 상황이다. 정치인들이 민심을 우습게 봤다가 큰코다치듯이 스포츠 종목도 팬들의 마음을 겸허하게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스포츠 종목의 중심에는 이제 팬이 자리 잡아야 한다. 팬을 행복하게 해 주지 않으면 그 종목은 도태된다. 언제까지 팬들이 자기 돈과 시간, 열정을 들여가며 지켜봐 줄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금물이다.

‘여자는 갈대’라고 표현하는 남자는 절대로 원하는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다. ‘팬들은 갈대다’라는 표현은 다분히 스포츠 구단의 입장에서 보는 관점이다. 이기면 좋아라 하고 지면 비난한다는 식으로 팬들을 인식하는 구단은 영원히 팬들을 갈대로 만들어 버린다.

단순히 게임에서 승리하는 것으로 구단의 임무를 다하는 것이 아니라 팬들과의 지속적인 유대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마이애미(미 플로리다 주)= 한은구 한국경제 문화부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