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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가 그렇듯 유럽사도 전쟁과 갈등의 역사다. 페르시아 지역 등 유럽 바깥과의 싸움도 적지 않았지만 유럽 내부의 전쟁이 더 많았다. 고대 로마가 팽창했을 때부터 근·중세의 투르크족의 왕성기에까지 이민족의 침략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더 잦은 것은 유럽 내부의 갈등이었다. 프랑스만 하더라도 중세 프랑크 왕국 때부터 수없이 싸웠고 영국도 대륙과 스코틀랜드와 전쟁을 해 왔다. 북유럽은 끊임없이 러시아와 갈등해 왔고 동유럽도 그러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그 연장선상이었고 독일이 도발한 제2차 세계대전도 전쟁의 역사로 본 유럽이란 측면에서 보면 이상할 게 없다.
<YONHAP PHOTO-0115> (100518) -- BRUSSELS, May 18, 2010 (Xinhua) -- EU's Commissioner for Economic and Monetary Affairs Olli Rehn, EU rotating presidency Spanish Finance Minister Elena Salgado and EU's Commissioner for Internal Market and Services Michel  Barnier (L to R) attend a press conference after EU's financial ministers' meeting in Brussels, capital of Belgium, 18 may 2010. EU financial ministers approved a draft law to regulate hedge funds in the face of objections from the U.K.
(Xinhua/Wu Wei) (yy)/2010-05-19 01:58:19/
<저작권자 ⓒ 1980-2010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100518) -- BRUSSELS, May 18, 2010 (Xinhua) -- EU's Commissioner for Economic and Monetary Affairs Olli Rehn, EU rotating presidency Spanish Finance Minister Elena Salgado and EU's Commissioner for Internal Market and Services Michel Barnier (L to R) attend a press conference after EU's financial ministers' meeting in Brussels, capital of Belgium, 18 may 2010. EU financial ministers approved a draft law to regulate hedge funds in the face of objections from the U.K. (Xinhua/Wu Wei) (yy)/2010-05-19 01:58:19/ <저작권자 ⓒ 1980-2010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그런 역사 때문일까. 현대 유럽인들은 통합을 모색해 왔다. 항구적인 평화를 유지하는 것, 그럼으로써 발전과 번영을 오랫동안 구가하는 것, 그것은 유럽인의 꿈이기도 했다.

해법은 ‘하나의 유럽’이었다. 전쟁만큼 모든 것을 폐허로 만들고 인간 존재의 근본을 뒤흔드는 것도 없다. 유럽인들은 세대를 이어가며 온몸으로 체험했을 것이다.

더구나 두 차례 세계전쟁처럼 과학기술이 발전할수록 전쟁의 파괴력은 커지고 있다. 힘의 우열만 가르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모든 것을 파괴하려는 것이 현대의 전쟁이다. 설사 이겨도 상처는 극복하기 힘들 수 있다.‘싸우지 않기 위해서라도 하나가 되자.’ 유럽인들은 이렇게 통합을 지향해 왔다.

철강 공동 생산으로 시작한 지 반세기 만에 하나의 나라로 통합에 합의했다. 때는 20세기가 저물어 가던 시점이었다. 유럽이 단일 나라로 통합하면 미국도 이겨내고, 아시아는 감히 넘볼 수 없을 것이다. ‘먼저 경제부터 통일하고 정치적으로도 통합하자.’ 궁극적으로는 국경을 없애는 것이다.

분위기는 좋았다. 유럽의 통합 중앙은행(ECB)이 생겼고 같은 돈이 어디서나 통용됐다. 먼저 의회가 구성된 뒤 최근 유럽의 대통령까지 새로 뽑았다. 유럽통합사는 인류 역사의 새로운 장(章)이었다. 중상주의와 제국주의 사조가 생기고 사라졌듯, 공산주의와 신자유주의 이념이 흥하고 망했던 것처럼 인류 문명사의 큰 획이었다.

외모·성격 다른 이민족이 한가족으로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체급이 다른 선수가 같은 조건으로 한 가족이 된 것이다. 외모가 다른 것은 물론이고 성격도 다른 이민족이 한집 식구가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경제력 격차도 차이지만 경제와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이 달랐다. 경제가 어려워지자 이 문제는 더욱 크게 불거졌다.

구조적인 한계점이기도 했다. 가령 이런 식의 갈등과 고민이 생겼다. 20대 후반의 젊은 독일 직장인 위르겐 슈미트는 자신의 봉급에서 떼이는 세금이 불어나는 것에, 앞으로 더 많이 떼일 것이라는 전망에 요즘 몹시 화가 나 있다. 독일인들 입장에서 볼 때 2류 국민쯤으로 여겨지는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를 지원해야 한다는 점이 특히 불만이다.

반면 50대 후반의 그리스인 게오르그 스테파노풀러스는 연금 때문에 어렵게 결정한 퇴직이 불안하다. 유럽 곳곳에서, 특히 그리스 밖에서 연금 구조를 바꾸라는 요구에 불만이 높아져만 간다. 이렇게 괄시당할 바에야 유로존에서 탈퇴하고 싶은 게 그의 심정이다. 탈퇴해서 고환율 정책으로 가면 재정 위기는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본다.

새내기 직장인 슈미트에겐 유럽 통합이라는 거대한 유럽의 이상이 눈에 들어올 리 없다. 통합하지 않는다고 당장 전쟁이 일어나는 것도 아닐 테고 ‘혼자서도 잘 사는’ 독일이 게으른 국가들을 위해 얼마나 희생해야 할까 하는 점은 아무리 생각해도 난센스다.

이들의 중간에 있는 70대의 은퇴한 프랑스 지식인 샤를르 몽테뉴는 유럽의 장래 자체가 걱정이다. 불만도 있고 나라마다 제각각 손익도 다르다지만 전쟁을 피할 길이 있다면 그것을 최선이라고 믿고 택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언어와 종교도 다른 유럽이 불과 10년여 만에 이 정도 통합한 것만 해도 괜찮은 성과 아니냐는 게 그의 판단이다.

4명의 손자손녀 장래를 생각하면 더 그렇다. 각국이 조금 더 이해하고 한발 더 양보하면서 ‘역사의 진보’가 될 통합의 큰 길로 계속 갔으면 하는 바람이 강하다. 미국의 패권이 여전한 데다 최근 중국은 글로벌 강자로 떠오른다.

중동의 향방도 알 수 없다. 이런 데도 통합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싶은 게 그의 생각이다. 유럽의 장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세대 간, 지역 간, 계급 간, 국가 간 갈등과 경쟁을 과연 극복해낼까.

허원순 한국경제 국제부장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