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콘 연쇄 자살 사건 왜?

지난 5월 23일 저녁 중국 CCTV는 ‘폭스콘, 10회 연속 투신의 수수께끼’를 30분 동안 집중 보도했다. 주간 경제지 경제관찰보 최신호(5월 24일자)의 1면 머리기사 제목도 ‘10회 연속 투신의 비극’이다.

중국에선 요즘 대만 기업 폭스콘의 중국 공장에서 올 들어서만 12번의 자살 시도(5월 27일 기준)가 있었고 이 가운데 10명의 직원이 사망한 사건 소식이 연일 언론의 주요 소식으로 다뤄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와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AWSJ)은 5월 27일자 1면 톱으로 일제히 폭스콘으로부터 스마트폰과 PC 등을 납품받는 애플·휴렛팩커드·델 등이 조사에 나섰다는 소식을 전했다.
<YONHAP PHOTO-2336> Employees work on the assembly line at Hon Hai Group's Foxconn plant in Shenzhen, Guangdong province, China, on Wednesday, May 26, 2010. Terry Gou, founder and chairman of Hon Hai Group, said nine of the 11 company workers who either committed suicide or attempted to had worked at the company less than a year, and six had been employed for less than a half-year. Photographer: Qilai Shen/Bloomberg

/2010-05-26 22:47:11/
<저작권자 ⓒ 1980-2010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Employees work on the assembly line at Hon Hai Group's Foxconn plant in Shenzhen, Guangdong province, China, on Wednesday, May 26, 2010. Terry Gou, founder and chairman of Hon Hai Group, said nine of the 11 company workers who either committed suicide or attempted to had worked at the company less than a year, and six had been employed for less than a half-year. Photographer: Qilai Shen/Bloomberg /2010-05-26 22:47:11/ <저작권자 ⓒ 1980-2010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중국은 물론 세계에서 이미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는 일련의 사건이 발생한 곳은 폭스콘의 선전 공장이다. 직원 수가 42만 명에 이르는 대규모 공장 단지다. 폭스콘 중국 공장 직원 수의 절반이 이곳에서 일한다. 폭스콘을 세계 최대 전자 제품 위탁 생산(EMS) 업체, 중국 내 최대 수출 기업으로 키운 ‘일등 공신’이다.

그런 선전 공장이 노동자를 착취한 공장이란 오명을 뒤집어쓴 채 추락하고 있다. 그 이유는 뭘까. 그 해답을 찾다보면 이번 사건이 한 회사의 문제를 넘어섰다는 것을 알게 된다. 중국의 고성장 모델이 한계점에 이르렀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얘기다. 중국을 ‘세계 공장’으로 활용해 온 다국적기업들에도 던지는 메시지가 적지 않다는 지적도 그래서 나온다.

◇ 제동 걸린 폭스콘 ‘속도 경영’ = “폭스콘 직원 수입의 절반은 초과근무 수당(CCTV)”이고 “직원들이 기계처럼 일하고 토요일에도 초과근무하기 때문(FT)”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등 열악한 노동조건이 이번 사건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하루 2교대 12시간 근무하는 고강도 근무가 문제였다는 지적이다.

홍콩의 노동자 단체는 폭스콘 선전 공장의 근로자들이 월평균 100시간을 초과근무했다고 주장했다. 중국의 노동 규정이 정한 월 초과근무 상한선 36시간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이들에게 책정된 급여는 한 달에 900위안에서 1050위안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한 푼이라도 돈을 더 벌기 위해 거의 매일같이 잔업을 하고 있다.
<YONHAP PHOTO-1138> Protestors from SACOM (Students and Scholars Against Corporate Misbehaviour) burn effigies of Apple products during a demonstration near the offices of Foxconn in Hong Kong on May 25, 2010. The founder of Taiwan's Foxconn Group on Monday broke his silence over a string of suicides by its employees in China, denying the deaths were related to conditions at the technology giant's factories.       AFP PHOTO/MIKE CLARKE

/2010-05-25 14:5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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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testors from SACOM (Students and Scholars Against Corporate Misbehaviour) burn effigies of Apple products during a demonstration near the offices of Foxconn in Hong Kong on May 25, 2010. The founder of Taiwan's Foxconn Group on Monday broke his silence over a string of suicides by its employees in China, denying the deaths were related to conditions at the technology giant's factories. AFP PHOTO/MIKE CLARKE /2010-05-25 14:57:49/ <저작권자 ⓒ 1980-2010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근로자의 잔업은 폭스콘의 ‘속도 경영’을 떠받치고 있다. 폭스콘 직원들의 손에 들려 있는 수첩에 적힌 창업자 궈타이밍(테리 궈) 폭스콘 회장의 어록은 ‘속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궈 회장은 다른 회사에서 1주일 걸려야 만들 수 있는 것을 폭스콘에서는 24시간이면 된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해 왔다.

폭스콘은 중국의 자살률이 10만 명당 14명인 점을 들어 자살률이 높지 않다고 주장하지만 좌불안석이다. △불교 고승들을 불러 영혼 천도재를 지내고 △24시간 핫라인(78585: 중국어 발음은 ‘저를 도와주세요’를 의미하는 말과 비슷)을 운영하는가 하면 △문제가 있는 동료 신고 시 30달러 포상 제도 △투신 방지 철조망 설치 △공장 라인에 음악 틀기 △심리치료 전문가 2000명 모집 등 다양한 대책을 내놓는 데서 위기감을 엿보게 된다. 심지어 최근엔 기숙사에 상사의 얼굴이 그려진 샌드백까지 설치했다. 스트레스를 풀라는 배려다.

궈 회장은 급기야 지난 5월 26일 200여 명의 국내외 보도진과 함께 선전 공장을 방문, 수영장을 비롯한 각종 여가 시설을 보여줬다. 폭스콘이 근로자들의 복지를 위해 애쓰고 있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공장 단지는 우체국·은행·빵가게 등 하나의 소도시를 이룰 만큼 대부분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올림픽 경기장에 못지않은 시설을 갖춘 실외 수영장은 근로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여가 시간이 부족해 수영장을 찾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광시좡족 자치구 출신의 한 여성 근로자는 궈 회장과 함께 선전 공장을 방문한 홍콩의 한 기자에게 “점심식사 시간이 30분밖에 되지 않는다”며 “어떻게 수영할 시간이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공장에서 식당까지 다녀오는 시간을 포함해 30분이어서 실제 식사할 수 있는 시간은 10분밖에 안 되는 것. 그녀는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삼키는 수준”이라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폭스콘은 아침 1.5위안, 점심 4.5위안, 저녁 5위안짜리 등 하루 총 11위안(약 2000원)에 상당하는 식사를 종업원들에게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이 공장의 근로자들은 모처럼 쉬는 휴일에도 잠을 자는 것 이외에는 다른 여가 활동을 할 여력이 없다.

군대식의 과도한 규율도 문제로 꼽힌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의 기자는 “폭스콘의 근로자들은 감시 카메라와 감독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로봇처럼 손을 놀리고 있었다”고 전했다.

작업 도중 옆 사람과 대화하는 것이 철저하게 금지돼 있는 등 규율이 매우 엄격하다고 근로자들은 전했다. 허난성 출신의 한 근로자는 “감독관을 의식해 작업대에 앉으면 말을 하지 않는다”면서 “3년 동안 거의 말을 하지 않고 생활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콩에 있는 중국 노동자 단체의 제오프레이 크로톨은 “회사가 보안에 집착한 탓에 공장이 마치 감옥과 같다”고 지적했다.

◇ 중국 성장 모델의 한계 = 펑카이핑 칭화대 교수는 “폭스콘 연쇄 자살 사건은 근로자들의 인권을 무시하고 값싼 노동력에 기댄 과거의 발전 방식으로는 중국이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는 중요한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궈위화 칭화대 교수를 비롯한 9명의 중국 학자들도 최근 폭스콘에 보낸 공개 편지에서 기본적인 인권을 무시하는 기업 문화 때문에 근로자들의 투신 자살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세계의 공장’ 중국의 미래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은 개혁개방 30년 동안 근로자의 권익보다 외자 유치에 올인해 왔다. 1980년대 초 노동3권 중 단체행동권을 삭제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지난 2008년 퇴직금 제도를 첫 도입한 노동계약법을 시행하는 등 친노동자 쪽으로 급선회하기 시작했다. 빈부 격차 확대와 농민공(농촌 출신 도시 노동자) 2세대의 등장으로 과거 성장 모델이 사회불안을 키울 수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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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콘 사건은 황혼에 접어든 중국의 위탁 생산 시대와 농민공 2세대와의 충돌(경제관찰보)”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폭스콘이 1988년 선전에 공장을 세울 당시만 하더라도 먹을 것을 주고 기숙사까지 제공하는 일자리는 낙원으로 통했다.

하지만 “농민공 2세대는 즐거움(FUN)도 원하지만 폭스콘 직원들은 초과근무로 즐기지 못하고 있다(FT).” 폭스콘 선전 공장 근로자 가운데 85%는 1980년대와 1990년대에 태어난 농민공들이다. 더욱이 중국의 고성장이 만들어낸 부(富)는 이들의 박탈감을 키웠다.

더욱이 폭스콘 사건은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선전 공장에 위탁 생산해 온 애플의 책임론으로까지 불거질 수 있다. 열악한 근로조건의 공장에 일감을 맡긴 데 대한 비판의 화살이 스티브 잡스 애플 회장을 향할 수 있다는 얘기다.

애플은 매년 ‘공급자 책임 백서’를 통해 위탁 생산을 맡긴 공장들의 작업 환경을 조사 발표하고 있다. 지난 2월 백서에서 구체적인 장소를 지목하지 않았지만 애플의 규정(주당 60시간)을 초과한 공장들이 절반에 이르고 미성년자를 고용한 곳이 있다고 인정했다.

폭스콘 선전 공장으로부터 PC 등을 납품 받는 휴렛팩커드(HP)와 델 등도 책임론과 딜레마에 빠지기는 마찬가지다. 애플과 HP 델 등 미국 정보기술(IT) 업체들이 일제히 조사에 들어가겠다고 밝힌 것도 책임론에 따른 불똥이 튀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다. 애플은 자체 조사단을 보내 폭스콘의 자살 사고 대응책 조사에 들어갔다.

폭스콘에 TV를 위탁 생산하는 삼성전자도 폭스콘 사태의 영향권에 있다는 지적이다. 중국을 공급망으로 활용하는 한국 기업들도 하청 공장을 고를 때 노동 전문가들을 투입해야 할 상황이 된 것이다. 폭스콘 사태는 중국 진출 다국적기업들에 노동 리스크에 대처해야 할 때가 됐다는 것을 경고하는 메시지가 되고 있다.

오광진 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