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통신
2005년 8월 미국 뉴저지 앞바다에 정박해 있던 ‘로열 참’호 앞에 턱시도 차림의 건장한 사내들이 리무진을 타고 속속 도착했다. 그 배에서 조직원 딸의 결혼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조직원과 딸은 모두 미국 연방수사국(FBI) 요원이었다.FBI가 오랫동안 요원을 조직원으로 잠입시켜 함정수사를 벌여왔고 이날이 하이라이트였다. 가짜 결혼식을 가진 것이다. 결혼식이 시작되자 식장 곳곳에 하객으로 위장해 있던 FBI 요원들이 작전을 시작해 조직원들을 일망타진했다.
이게 바로 ‘로열 참 작전’이었다. 로스앤젤레스에서도 비슷한 작전이 벌어졌다. 이른바 ‘스모킹 드래건 작전’이었다. 불법 자금을 거래한 은행을 조준했다. 마카오의 2개 은행이 걸렸다. 그중 한 곳이 바로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이었다.
가짜 조직원인 FBI 요원은 하객으로부터 위폐를 구입했는데 그 대금이 마카오에 있는 BDA에 입금된 게 확인됐다. FBI는 BDA를 내사했고 북한이 불법 자금을 세탁한 사실을 밝혀냈다.
이후 미국 정부는 BDA 대북 금융 제재를 시작했다. 북한 계좌 50개, 2500만 달러가 동결됐다. 그중 20개는 국영은행 것이었고 11개는 무역회사, 9개는 개인 명의였다.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은 이후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전 차관보에게 “(금융 제재로) 피가 마르는 듯했다”고 실토한 바 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비자금이 포함됐다는 설들이 파다했다.
대북 금융 제재는 군사적 공격 못지않게 북한에 심대한 타격을 줄 수 있는 방안이다. 우리 정부와 미국 등이 천안함 침몰과 관련해 북한 응징책으로 쏟아 놓는 것도 결국은 북한에 대한 돈줄 죄기로 귀결된다.
특히 미국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비자금까지 건드린다는 방침을 흘려 주목된다. 미국은 김 위원장의 통치 자금을 조달하는 노동당 39호실의 수족인 회사와 은행에 대한 단속을 재개했다.
북한이 상당히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안도 북한의 자금 루트를 차단하는 게 궁극적인 목표다.
김 위원장 비자금 조달하는 노동당 39호실
북한 선박은 남한 영해 운항 금지에 따라 공해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북한 동·서해안 운항 시간이 보통 4~5일 걸리던 게 하루 정도 더 소요된다. 에너지 난을 겪고 있는 북한으로선 큰 부담이다.
대북 경협 스톱은 북한에 보다 직접적이고 가장 큰 손실을 준다. 개성공단을 제외하더라도 북한은 한 해에 약 3억 달러 이상의 달러 유입이 줄어든다. 개성공단을 통한 남북교역이 중단되면 북한은 연간 3억7000만 달러의 손실을 보고 북측 근로자 4만 명이 일자리를 잃는다.
근로자 임금 및 사회보험료로 1년에 약 5000만 달러가 제공된다. 북한에서 모래를 채취해 들여오는 대가로 지불하는 돈은 연간 1억 달러에 달하는데 군부의 자금줄이다. 남북 경협이 중단되면 북한은 국내 총생산의 10% 정도가 줄어드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북한은 3중고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북한은 지난해 곡물 생산이 부진한데다 국제사회의 지원이 줄어들면서 극심한 식량난을 겪고 있다. 더군다나 화폐개혁 실패로 내부 혼란이 극심하다. 이런 상황에서 외부 돈줄이 마르면 정상적인 국가 운영과 통치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자칫 북한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대두되는 이유다. 그렇게 되면 이른바 코리아 리스크로 인해 시장이 동요될 수 있다. 우리 정부의 고민이 바로 여기에 있다. 너무 조이면 북한이 군사적 도발을 감행하면서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이를 피하면서도 가장 큰 압박을 줄 수 있는 제재 수위 지점을 찾는 게 관건이다.
그렇지만 일단 이명박 대통령은 다소간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각오다. 46명의 고귀한 목숨을 앗아간 마당에 단호한 대응으로 이참에 북한의 대변화를 유도하자는 것이다. 정부는 다만 단기간에 북한이 두 손을 들고 나올 것이라고는 보지 않고 있다.
이 대통령은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을 면담하면서 “시간적 여유를 갖고 상황에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제사회의 제재가 단시간에 결정되기 힘들고 북한의 반발도 길게 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긴 호흡으로 대처하자는 얘기다. 우리 정부도 코리아 리스크와 대북 압박책 사이에서 외줄 타기를 한동안 계속해야 할 것 같다.
홍영식 한국경제 정치부 기자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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