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고수들의 실전 레슨
마케터는 무엇으로 살까. 신제품이나 서비스의 대성공에서 오는 희열일까. 아니면 기존의 강자를 넘어설 수 있다는 승부욕일까. 기업 마케팅 임원과 경영진의 모임인 한국마케터협회(MASOK)는 지난 5월 26일 자신들의 실패와 성공을 담은 책 ‘마케터분투기(리더스북)’ 출간 기념으로 ‘2010 살아있는 마케팅’ 세미나를 개최했다.MASOK 회장을 맡고 있는 조원익 에스콰이아 사장은 “‘살아있는 마케팅’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마케터들의 고민과 열정, 그리고 노하우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노익상 한국리서치 사장, 위규성 CJ 라이온 사장, 권오휴 닐슨미디어리서치 고문, 구교식 한샘 마케팅부 이사 등 4인의 마케터가 후배 마케터를 위한 실전 레슨에 나섰다.
리서치는 마케팅의 필수 요소다. 통계 없는 마케팅은 손전등 없이 밤길을 걷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면 리서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뭘까. “돈 3만8000원과 사원 1명으로 시작”한 한국리서치를 내로라하는 다국적 회사들과 선두를 다투는 회사로 키운 노익상 사장은 “체험”이라고 단호한 어투로 말했다.
노 사장은 ‘체험’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경험했다고 고백한다. 언젠가 국내 대기업이 추진하는 신규 백화점 입지의 타당성 조사를 의뢰받은 적이 있었다. 상권의 구조, 타깃 고객의 특성, 상품 구색 등의 조사 결과를 설명하고 기업 임원들과 토론을 벌였다. 토론이 끝나고 나서 그 기업 사장이 넌지시 물었다. “백화점 지을 자리에 가보셨습니까?” 노 사장은 그 순간 아찔했다고 한다. 가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후 클라이언트를 잃었지만 대신 큰 교훈을 얻었다. 기업 전반에 대한 이해 높여야
노 사장은 “마케터는 다뤄야 할 것이 눈에 보이는 제품이든, 보이지 않는 서비스든 간에 자신이 직접 사용해 보지 않고서는 제대로 알 수 없다”며 “직접 보고 냄새를 맡고 만져보지 않고서는 그 무엇도 시작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노 사장은 “지식은 지식에 불과하다”고 잘라 말했다. 체험한 사람과 체험하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체험한 사람들 간 차이보다 몇 배는 더 크다는 것이다.
위규성 CJ 라이온 사장은 “소비재 마케터의 어려움이 점점 가중되고 있다”며 “스스로 변해야 살아남는다”고 못 박았다. 위 사장은 1984년 CJ제일제당에 입사해 마케팅 상무를 지냈으며 ‘게토레이’와 ‘라이스데이비누’ 등의 히트 상품 개발에 참여했고 ‘식물나라’와 ‘비트’ 브랜드를 성공시킨 주역이다. CJ 라이온은 생활용품 전문 기업이다.
위 사장이 ‘마케터의 위기’를 대형 마트의 힘이 커지면서 마케터의 고민이 브랜드 관리 같은 전통적인 마케팅이 아닌 거래 쪽으로 많이 쏠리고 있다는 데서 찾았다.
따라서 위 사장은 마케터들이 나아갈 길을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기업의 ‘밸류 체인(Value Chain)’을 완전히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위 사장은 “엔지니어링·구매·제조·재무·회계 등 기업 전반에 관한 이해도를 높여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둘째, 마케터에서 전략가로서의 변신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전략적 사고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환경 변화를 예측해 사업 구조의 틀을 변경하고 외부와의 전략적 제휴를 적극 모색하는 한편 4p 픽스(product, promotion, place, price)보다 전체 가치를 높이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전사적 마케팅을 선도해야 한다고 했다. 마케팅을 마케팅 부서에 맡겨서는 원하는 성과를 100% 내기가 어렵기 때문에 전사적 시스템을 갖추는 데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넷째, 논리적인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키워야 한다고 부탁했다. 위 사장은 “데이터를 엮어서 볼 수 있는 ‘가설적 사고’를 익히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고 했다.
다섯째,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타 부서를 경험해야 한다는 팁도 내놨다.
여섯째, 여성 마케터들은 ‘알파걸’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밤샘·워크숍 등을 겁내지 말고 그 기업 문화에 자신을 맞추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다.
기업 마케터들은 리서치나 광고 에이전시를 활용한다. 좋은 에이전시를 고르는 방법은 뭘까. 신문기자 출신으로 오리콤·한컴·선연 등의 광고 회사를 거쳐 1997년부터 2007년까지 한국닐슨의 대표를 역임한 권오휴 닐슨미디어리서치 고문은 ‘좋은 에이전시를 고르는 법’으로 6가지를 들었다.
첫째, 능력(Capability)이 있는가. 둘째, 창조성(Creativity)이 있는가. 셋째, 진실성(Integrity)이 있는가. 넷째, 열정(Passion)이 있는가. 다섯째, “노(No)”라고 말할 용기를 가졌는가. 여섯째, 우리 회사 분량이 그 회사 총수입의 4분의 1을 넘지 않는가.
특히 권 고문은 “그 회사 총수입의 4분의 1을 넘을 경우 아부하기 쉽고 자기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며 “이런 에이전시는 배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권 고문은 ‘좋은 에이전시를 잘 쓰는 방법’도 함께 제시했다. 우선 에이전시를 비즈니스 파트너로 대해야지 단순한 조력자로 여겨서는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갑을’ 의식에서 벗어나라”는 것이다. 아울러 “가능하다면 많은 정보와 지식을 공유하고 늘 칭찬하라”고 덧붙였다.
구교식 한샘 마케팅부 이사는 올웨이즈-온(always-on: 항상 접속 가능한) 라인 롱테일 마케팅의 효과와 실전 전략을 소개했다. 롱테일은 80% ‘꼬리’ 상품이 20% ‘머리’ 상품보다 높은 가치를 창출한다는 이론이다.
닷컴·트위터·블로그 등 소셜 미디어를 적극 공략하라는 것이 구 이사의 지침이다. 광고 클릭의 60% 이상이 대형 사이트가 아닌 ‘롱테일’이라고 불리는 사이트에서 일어난다는 조사 결과도 곁들였다.
구 이사는 “정보를 올리는 사람이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정보를 구하는 사람도 쉽게 찾을 수 있는 편집 역량을 갖춰야 한다”고 도움말을 줬다. 구 이사는 “방송국을 보유하고 있다”고 여기고 “편집국 역량을 길러서 롱테일을 대상으로 마이크로 마케팅을 전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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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보기│한국마케터협회(MASOK)는…
쟁쟁한 마케터 ‘즐비’…월 1회 조찬 미팅 한국마케터협회(Marketers Society Of Korea, 이하 MASOK)는 1999년 국내 대기업 마케팅 임원과 경영진이 결성한 단체다. 2004년 비영리 사단법인 형태로 전환, 현재 26명의 쟁쟁한 마케터가 모여 있다. MASOK는 월 1회 조찬 미팅을 갖고 있다. 2003년부터 ‘살아있는 마케팅’이라는 테마로 연 1회 공개 세미나를 열고 있다.
지난해 230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루는 등 국내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는 마케터 모임으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지난 5월 회원 중 19명이 필진으로 참여한 ‘한국 최고의 마케터들이 전하는 시장과 자신을 이기는 지혜-마케터분투기(리더스북)’를 출간해 국내 마케터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 책에서 회원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성공과 실패 사례를 공개하고 마케터로서 가져야 할 자세는 물론 자신만의 노하우를 생생하게 기록했다.
MASOK는 회원 간의 관계가 돈독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노익상 한국리서치 사장은 “한 번 회원은 영원히 회원”이라며 “업계에서 부러움을 많이 받고 있다”고 자랑했다. 향후에는 대외 활동에도 적극 나설 계획이다. 회장을 맡고 있는 조원익 에스콰이아 사장은 “활동 외연을 넓혀 대외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다”며 “해외 단체와의 교류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권오준 기자 j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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