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지 펀드들 유럽 피해 아시아로 이동

아시아가 세계경제의 중심으로 떠오르면서 홍콩과 싱가포르 등으로 옮기는 헤지 펀드들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 재정 위기를 겪고 있는 유럽이 헤지 펀드에 대해 대대적인 반격에 나선 것도 이런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

지금은 세계 헤지 펀드의 7%만이 아시아에서 둥지를 틀고 있지만 유럽의 제재가 본격화되면 이 비중은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홍콩과 싱가포르로 회사를 옮기거나 이 지역을 기반으로 아시아 시장에 투자하려는 헤지 펀드들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미국의 헤지 펀드인 포트레스인베스트먼트는 최근 싱가포르로 본사를 옮기기로 했다.

또 소로스펀드매니지먼트는 홍콩에 아시아 지사를 개설할 계획이고 영국의 알게브리스인베스트먼트·프라나캐피털 등도 싱가포르에 지사 설립을 추진 중이다. 차터캐피털어드바이저는 최근 아시아 지역 기업들을 대상으로 인수·합병(M&A)과 구조조정에 주로 투자하는 펀드 운용을 시작했다. 팔콘캐피털은 아시아 주식시장에서 롱숏 전략을 구사하는 1500만 달러 규모의 범아시아 헤지 펀드를 만들었다.
홍콩·싱가포르 ‘주목’…성장세에 군침
이처럼 헤지 펀드가 홍콩과 싱가포르 등 아시아 지역으로 몰리는 것은 이곳의 경제가 급속히 성장하면서 돈이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의 헤지 펀드 운용사인 만인베스트먼트의 팀 레인스포드 아시아퍼시픽담당 이사는 “헤지 펀드의 움직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세계 자금의 흐름”이라며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점이 헤지 펀드들의 아시아 진출에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중국과 인도 등의 자본시장이 급속히 성장하면서 헤지 펀드들이 수익을 낼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되고 있다.

최근 이 지역에서 M&A 기업이나 구조조정 대상 기업 등에 투자하는 이벤트 참여형(Event-Driven) 헤지 펀드가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 이를 말해준다. 현재 홍콩과 싱가포르에서 운용되는 헤지 펀드의 절반이 전통적인 롱숏 전략(주식에 대해 매수와 매도 포지션을 동시에 취해 수익을 내는 전략)에 의존하고 있다.

자본시장의 발전 수준이 상대적으로 떨어져 다양한 투자 전략을 구사하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 지역 내의 기업들이 급성장하면서 이벤트 참여형 헤지 펀드가 올해 가장 유망한 투자 전략으로 꼽히고 있다.

적용되는 세율도 유럽 비해 유리

헤지 펀드들의 비즈니스 환경도 아시아가 나쁘지 않다. 규모가 큰 헤지 펀드에 대해 적용되는 세율은 홍콩이 17%, 싱가포르가 20%인데 반해 유럽 헤지 펀드의 허브로 알려진 영국은 40%나 된다. 영국은 최근 이 세율을 50%로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헤지 펀드 컨설팅 업체인 유레카헤지에 따르면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지역에서 운용되는 헤지 펀드 자금은 지난 2009년 말 현재 1050억 달러다. 세계 헤지 펀드 규모 1조5000억 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그러나 앞으로 2년 동안 이 금액은 1820억 달러로 70%나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반면 세계 헤지 펀드의 4분의 1이 둥지를 틀고 있는 유럽은 헤지 펀드와의 전쟁을 시작했다. 유럽연합(EU) 재무장관들은 최근 월례 경제·재무장관 회의에서 헤지 펀드 및 사모 펀드에 대한 규제·감독을 강화하는 입법안에 대해 합의했다.

이번에 합의된 입법안은 △펀드와 펀드 운용사의 소재지가 제3국이더라도 EU 내에서 투자하려면 개별 회원국에 등록할 것 △펀드 운용과 관련한 보고 기준 강화 △레버리지 비율 제한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EU가 헤지 펀드 규제에 나선 것은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발생 이후부터다. 그러나 최근 그리스 재정 위기가 부각되는 상황에서 많은 헤지 펀드들이 유로화 약세와 그리스 부도에 베팅하자 강력한 규제책을 도입하기로 한 것이다.

EU의 헤지 펀드 규제는 독일이 이끌고 있다. 독일은 이미 자국 내의 일부 주식과 채권, 크레디트디폴트스와프(CDS) 등에 대한 공매도를 금지하는 등 투기 세력과의 전면전을 선포한 상태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시장은 스스로 실수를 바로잡지 못한다”며 “6월 캐나다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회의에서 세계 경제 강국들이 더 엄격한 금융시장 규제에 합의함으로써 시장에 ‘강력한 신호’를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태완 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tw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