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냐 투자냐, 그것이 문제로다

[최남철의 투자 X파일]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이겨내라
필자가 펀드매니저 시절의 일기와 기록을 바탕으로 쓴 책‘꿈의 기울기에 투자하라(현문미디어)’가 출간된 뒤 많은 독자들로부터 감사의 편지를 받았다. “이제 비로소 투자가 무엇인지 깨달았다”는 내용에서부터 “이제 편안한 마음으로 단말기 앞을 떠날 수 있다”, “투자에서 얻은 과실을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에게 베풀고 살아야겠다”는 마음의 변화를 겪은 독자들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가슴 따뜻한 이야기들이 많다.

특히 천호동에서 부동산을 하는 한 독자로부터 받은 감사의 편지는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그동안 투자를 하면서 수익을 얻으면 공돈인 양 자기 자신만을 위해 쓰고 살아왔는데 ‘꿈의 기울기에 투자하라’의 제1부에 나오는 ‘벽안의 전설, 칼 밀러와의 만남’편을 읽고 주체할 수 없이 울고 또 울었다고 한다.

그분은 그 장의 마지막 구절을 줄줄 외우고 있었다. “전설적인 투자자였던 칼 밀러가 투자를 통해 얻은 이익금으로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평생 도왔듯이 자신도 그 나눔의 정신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고 한다. 그는 실제로 투자 수익금 가운데 일부를 가난한 학생에게 장학금으로 주었다. 필자는 큰 감동과 함께 마음으로 전해오는 어떤 큰 공명을 느낄 수 있었다.

최근 강연회에서 일반 투자자들을 자주 만나는데, 강연회 때마다 질문을 던지곤 한다. “주식 투자를 10년, 20년, 30년 이상 해 보신 분 있으면 손들어 보세요”라고 말이다.

이렇게 말하면 간혹 손을 드는 분들이 있다. 그러면 다시 “그 기간 동안 누적으로 이익을 내신 분 있으면 손들어 보세요”라고 하면 결국엔 100명 중 한 명 정도가 손을 든다.

아연실색할 따름이다. 코스피지수가 도입된 1980년 1월 4일을 기준으로 어언 30년이 지났다. 지난 30년 동안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7배 가까이 성장했다. 같은 기간 ‘주식회사 한국(Corporate Korea)’의 주가인 코스피지수는 17배나 올랐다.

30년간 삼성전자 주가는 207배 올라

우량주 가운데 대표 주자인 삼성전자의 주가는 207배, SKT(한국이동통신)의 주가는 94배, 포스코의 주가는 58배나 올랐다. 이 밖에 핵심 우량주 10개의 주가는 평균 15배에서 20배 이상 올랐다. 이 가운데 돌을 던져 맞는 주식에 아무렇게 투자했더라도 우리 모두는 부자가 되어 있어야 한다. 정말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같은 기간 한국에 투자한 외국인들이 거두어 간 수백조 원의 투자 수익과 너무 대조가 된다. 물론 외국인 투자자들의 직간접 투자 자금의 유입으로 우리 주식시장이 발전하고 주가가 오른 측면을 부인하고 싶지 않지만 너무나 큰 국부가 외국에 유출됐다.

문제는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 경제의 성장 과실을 고스란히 향유해 왔는데 국내의 투자자, 특히 일반 투자자들은 그 혜택에서 철저히 소외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비단 국부 유출의 문제만이 아니라 개인 투자자들과 그 가계의 삶의 질에도 크게 영향을 미치는 중차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외국의 투자자들은 한국 경제가 그간 일궈 온 성장의 축제를 마음껏 즐기고 그 과실을 향유하는데 비해 왜 국내의 개인 투자자들은 여기에서 소외돼 어두운 뒷골목을 배회하며 쓰디쓴 실패담을 만들어 내고 있을까. 왜 많은 가정들이 잘못된 주식 투자로 붕괴되고 그 어두운 그늘이 죄 없는 2세들에게까지 영향을 주고 있을까. 참으로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이제 변해야 한다. 그리고 누군가가 나서서 변화시켜야 한다. 산업 현장에서 피땀 흘려 일구어낸 자랑스러운 발전의 성과가 외국인들의 손으로 다 넘어가도록 해서는 안 된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되놈이 받는다”는 속담이 있다.

이 모든 문제는 잘못된 투자 문화와 마인드에서 빚어졌다고 생각된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투자를 가장한 투기를 일삼아 온 것이 아닌지 심각하게 자성해 보아야 한다.

무늬만 투자자이지 실상은 한탕에 목마른 투기꾼들이 아니었는지 말이다. 필자도 여기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 천민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천민 투자자들의 슬픈 자화상이다.

왜 우량한 기업, 장래가 기대되는 기업에 주주로 남아 그 성장의 과실에 동참하기를 두려워할까. 무엇이 그리도 급하고 두려워 짧은 시간에 한탕 하고 튈 생각만 할까. 왜 기업의 가치를 보려는 노력 대신 거래량과 차트에만 매달릴까. 결국 차트도 기업의 실적과 가치가 만들어 내는 후행적인 결과물인데 말이다.

또한 컴퓨터 단말기 앞에서 잠시만 떨어져도 마음이 불안해지며 하루에 수차례 주식을 사고팔아 주당 몇백 원을 남기는 잔재주를 자랑하고 있을까. 왜 우량한 고가주를 피하고 싸구려 ‘잡주’ 주변을 맴돌다가 낭패를 당할까.

왜 일부 기관투자가들의 매매 회전율이 1000%를 넘나드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고 있을까. 왜 장기 투자를 지향해야 하는 연기금조차 6개월, 1년 수익률에 몰두하도록 사회적인 분위기를 몰아가고 있을까.

인삼 농사도 5~6년은 기다린다

이런 사실은 어느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에 앞서 우리 사회 전체의 의식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조급증과 진득하지 못한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자성해야 한다. 농사를 지어도 기본은 6개월에서 1년은 기다린다. 인삼 농사의 경우 5~6년을 인내해야 튼실한 뿌리를 얻을 수 있다.

우리 사회, 특히 투자 사회가 가지고 있는 조급증과 불안 심리의 정체를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외세의 끊임없는 침탈과 격변의 소용돌이를 헤치며 살아온 경험, 그리고 일본의 강점과 6·25전쟁, 빈번하게 발생한 군사 쿠데타와 민주화의 소용돌이, 그 짧은 기간 내에 이룩한 놀라운 산업화의 과정 등 대 변혁기를 수없이 겪어 온 경험 철학과 생존 본능이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

그 잠재의식의 기저에는 ‘불확실성’과 ‘상호 불신’, 그리고 ‘일확천금’의 환상이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남보다 빨리 한탕 하고 튀려는 ‘조급증’이 강박관념으로 굳어져 있는 것이다. 부동산만 해도 그렇다.

6·25전쟁 때 한강을 넘기 위해 사투를 벌였던 악몽 때문에 내 집만은 한강 이남에 사 두려는 심리가 부동산의 ‘강남 신화’를 가져왔다. 그렇다. 우리가 겪어 온 그 혼란과 격변의 시기를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보다 눈치 빠르고 날래고 치고 빠지는 스타일의 투기가 현명한 재테크 수단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방식으로 성공한 무용담이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이제 한국의 경제와 사회는 그 규모와 위상, 시스템 면에서 성숙되고 안정돼 있다. 이제는 변화된 투자 환경에 맞는 투자 스타일과 패러다임이 통할 뿐이다. 격변기와 혼란기에 흔하게 만날 수 있었던 횡재의 기회가 많지 않다. 오직 로또복권과 경마·카지노 등 사행산업이 그 향수를 달래줄 뿐이다.

주식시장도 합리적으로 움직이고 선진화됐다. 감시 시스템과 제도의 강화로 사악한 작전 세력과 투기 세력의 준동도 더 이상 활보할 수 없는 투자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사회적 공금리의 기준이 5% 아래에 머무르고 있는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고 있는데 아직도 많은 투자자들이 과거의 습성과 눈높이에서 주식 투자를 하기 때문에 헛발질을 하고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펀드매니저 시절의 시행착오와 뼈저린 깨달음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에 올바른 투자 마인드를 일깨워야 한다는 사명감에서 책 ‘꿈의 기울기에 투자하라’에서 못다 한 투자 이야기를 연재할 예정이다. 독자 여러분께 큰 축복의 메시지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간절한 바람이다.

[최남철의 투자 X파일]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이겨내라
최남철 고문


1988년 국민투자신탁에서 펀드매니저를 시작한 한국의 1세대 펀드매니저다. 이후 푸르덴셜자산운용,마이애셋자산운용을 거쳐 벤처기업 제뉴사이언스 고문을 맡고 있다.

최남철 제뉴사이언스 고문 ancichoi@naver.com